“야스쿠니신사를 ‘점잖은 신사’로 착각하는 청소년 일깨우려 역사 만화 보급”
“야스쿠니신사를 ‘점잖은 신사’로 착각하는 청소년 일깨우려 역사 만화 보급”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5.07.31 13:21
  • 호수 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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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청 (사)국민경제과학만화운동본부 이사장
▲ 사진제공=조선일보 성형주 기자

암 전문가이지만 64세에 간암·폐암 걸려… “암과 친해지니까 극복 되더라”
교수 퇴임 후 과학·역사만화 제작에 헌신… 30여종 300여만권 무상보급

대한노인회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역사의식과 충효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내·올리(효) 교육’, ‘1·3세대 나라사랑원정대’ 등의 사업을 펼치고 있다. 비슷한 일을 하는 단체가 (사)국민경제과학만화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이다. 독지가, 기업·금융계의 후원을 받아 과학과 역사 분야를 만화로 제작해 전국 초중고에 무상으로 배포해오고 있다.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30여종 300여만권을 제작했다. 이 일을 진두지휘하는 이가 서울대병원장(1993~1995)을 지낸 한만청(81) 이사장이다.
한 이사장은 암 전문가이다. 평생을 서울대병원에서 암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방사선과 의사로 지냈다. 그런 그가 64세 때 몸속의 암세포를 발견했다. 자신이 주도해 만든 건강검진센터를 방문했다가 주변에서 검사를 권유해 초음파 검사를 했다. 이때 발견된 암은 크기가 1.5cm였다. 처음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방사선 치료로 암세포를 제거한 후 지속적으로 3개월마다 추적검사를 했다. 재발을 막기 위해서였다. 1년 6개월까지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한번은 출장 때문에 한 달 여 늦게 검사를 하게 됐다. 그런데 작은 종양조차 보이지 않았던 간에 무려 14cm 크기의 암이 보였다. 엄청 큰 충격이었다.
“간암 4기였다. 앞으로 6개월 아니 3개월이나 살 수 있을까, 이제 정말 끝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자 가족들이 눈앞에 어른거려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간암은 불현듯 찾아온 건 아니었다. 한 이사장이 미국 하버드대 연수 시절 매일 하던 일이 혈관촬영시술이었다. 환자들의 피를 만지다 간염 보균자였던 환자에게 전염됐다. 연수 기간 내내 간염이 더 큰 질병이 되지 않도록 건강에 유의했다. 이후 별 증상은 없었다. 미국에서 돌아와 서울대병원 교수로 재직하며 새 병원 신축위원장, 영상의학과 재건 등 모든 일에 앞장섰다. 여기에 진료부원장을 거쳐 병원장까지 맡아하느라 몸을 돌보지 못했다.
한 이사장은 암에 걸린 원인에 대해 “스트레스와 과중한 업무 때문”이라며 “바쁜 생활로 즐겨 찾는 인스턴트와 캔 음식 등 신선하지 않은 음식이 우리 몸을 노린다”고 말했다.
방법은 빠른 수술이었다. 한 이사장은 간의 3분의 1 이상을 잘라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정신과 몸이 쇠약해진 상태여서 수술 두 달 만에 폐까지 암이 전이됐다. 이때도 충격이 컸지만 희망을 놓고 싶지 않았다. 명색이 의사인데 최신 의학을 믿고 최선을 다해보자는 사명감 같은 것도 있었다. 한 이사장은 전적으로 주치의를 믿고 따랐다. 항암치료도 열심히 받았다. 다행히 항암제 효과가 최대한 발휘됐다. 그러나 구토와 음식 거부에는 대책이 없었다. 여자가 임신했을 때보다 더 했다. 수술과 항암치료 결과 몸이 67kg에서 52kg가 됐다. 이 때 느낀 게 바로 암과 친해져야 한다는 자각이었다.
“암이 나를 죽이려고 덤벼들고 있으니 우선 달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몸이 음식을 거부하면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먹었다. 물조차 먹기 힘들었던 몸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한 이사장은 우선 양배추를 먹기 시작했다. 그리곤 물김치·나박김치·배추김치 등 김치를 중심으로 싱겁게 간을 해서 먹었다. 나물은 물론 고기도 먹었다. 영양의 밸런스를 맞춰 골고루 먹으려고 노력했다. 운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벽을 붙잡고 몇 걸음 걷는 게 전부였는데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시간을 재면서 꾸준히 운동을 하자 살도 붙고 건강도 회복했다. 요즘도 6개월마다 암 재발 여부 검진을 받는다. 그는 “암을 이겨낸 지 20년 다되지만 여전히 검진 날짜가 다가오면 두려움을 느낀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수밖에 없다”며 웃었다.
한 이사장은 언론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월봉 한기악(1898~1941) 선생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큰형 고 한만춘씨는 연세대 초대 이공대학장을 지냈고, 작은 형 고 한만년씨는 출판사 ‘일조각’ 대표로 대한출판문화협회장을 지냈다. 한 이사장은 “우리 집안은 창씨개명을 하지 않고 끝까지 버텼다”고 기억했다. 집안은 명가였지만 가난했다. 그가 일곱 살 때 아버지가 패혈증으로 사망했고, 6·25 전쟁이 터졌을 때 어머니가 간경변으로 숨졌다.
그는 형들의 손에 컸다. 아버지가 동아일보 경제부장으로 재직한 인연으로 가족들은 인촌 김성수 선생의 도움을 받아 서울중앙중학교 관사에서 지냈다. 한 이사장은 원래 과학자가 되길 원했으나 형의 권유로 의사를 택했다. 혼란한 시기에 경제적 안정을 찾고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의대에 진학했지만 공학 쪽에 미련이 남았다. 다행히 영상의학과라는 걸 알게 됐다. 방사선이 몸에 해롭다는 인식에다가 그런 일이 의사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전공하려는 이가 없었다. 교수가 된 이후 후임이 들어오기까지 12년이나 걸렸다.”
국내에서 영상의학은 미개척 분야인 만큼 할 일이 많았다. 그는 혈관에 조영제를 넣은 후 엑스레이를 이용해 병을 진단하는 혈관조영술의 권위자가 됐고, 간암화학색전술 등 스탠트로 최소침습(수술시 몸에 상처를 가장 적게 내는 것) 시술을 하는 인터벤션 영상의학의 선구자가 됐다. 그가 선후배들과 집필한 ‘인체단면해부학’이란 책은 국내외에서 히트를 치기도 했다. 한 이사장은 “학문적으로는 좋은 논문 쓴 게 없다. 그러나 국내에 영상의학 분야를 소개하고 병원 발전을 위해 힘썼다”고 말했다.
한 이사장은 서울대병원 교수 퇴임 이후 2001년 황선우 산학연종합센터 센터장의 제의로 산학연정책과정 원장을 맡았다. 현재는 센터 회장이다. 산학연종합센터는 산업체·교육기관·연구기관이 힘을 합쳐 기술개발과 인재육성 등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강화하자는 취지로 설립된 민간단체이다. 이 센터와 운동본부가 서울 성북동의 한 건물에 있다. 운동본부는 2003년 청소년을 대상으로 과학 이야기를 만화로 풀어 과학에 대한 관심을 끌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나 2010년부터 우리 역사로 범위를 넓혔다.
한 이사장의 사무실 서가에는 의서 대신 만화가 가득하다. 그는 “6·25 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남침인지 북침인지도 모르는 등 우리 역사에 대해 무지한 청소년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며 “청소년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만화를 통해 역사의식을 일깨우고 싶어 역사만화를 보급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1·4후퇴 때 류머티즘으로 거동이 불편한 큰형수와 세 살 조카를 리어카에 태우고 얼어붙은 한강을 건넜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음 세대를 책임질 젊은이들에게 연평해전이나 천안함 사태의 의미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라도 6·25 전쟁의 아픈 기억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이사장이 펴낸 만화로는 ‘야드바셈 6·25’, ‘대한민국 영토 독도’, ‘8·15 광복절’, ‘3·1절 대한독립만세’ 등이 있다. 야드바셈은 상처를 기억하라는 뜻의 히브리어로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잊지 않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세워진 기념관 이름이기도 하다. 과거를 기억 못하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역사 만화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지는 주제는 독도, 한일 관계와 관련된 것들이다.
한만청 이사장은 “일본의 전범이 안치된 야스쿠니 신사를 점잖은 신사로 착각하는 청소년도 있다. 일본의 독도영유권 시비와 역사 왜곡이 심각해지는 상황을 반영해 독립 운동가들의 항일투쟁과 만세운동 등을 많이 다루었다. 뿌리를 알자는 뜻”이라고 말했다.
한 이사장은 인터뷰 말미에 “한번에 20만권을 발간해 학교와 도서관에 무료로 배포하니 비용이 만만치 않다”며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라면 동참을 권한다”고 부탁했다.
오현주 기자 fatboyoh@100ssd.co.kr


약력
•1934년 생
•서울대 의대 의학과(의학사)
•서울대 대학원(의학박사)
•미국 하버드대 의대 부속병원 방사선과 연구
•대한방사선의학회 회장
•아태 심혈관 및 중재적방사선과 학회 회장
•서울대학교병원 원장
•산학연종합센터 회장
•세계방사선의학회 종신명예회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영상의학교실 명예교수

수상
•보사부장관 표창
•대한방사선의학회 학술상
•분쉬의학상(대한의학회·한국베링거인겔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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