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33년 전 타임머신을 타고 보니
[기고]33년 전 타임머신을 타고 보니
  • 이미정
  • 승인 2007.05.25 1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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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전인 1974년, 입춘이 들던 화창한 주말에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 케케묵은 짐을 정리하던 아내가 버리려고 내 놓은 물건 중에 재미있는 종이뭉치가 눈에 띄었다. 풀어보니 비행기 탑승권과 함께 들어 있는 각종 신혼여행 영수증이다.

 

 예식장 영수증, 비행기 국내스케줄, 제주의 호텔 영수증, 제주내의 각종 관광지 입장권 등이 들어 있었다. 그 때를 회상하며 보고 있자니 마음은 어느새 타임머신을 타고 33년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국내선 비행기시간표는 A4 용지 1장이 전부다. 서울-제주간은 매일 7번 왕복한다. 비행시간은 1시간 30분. 제주-부산은 6편. 제주-광주는 1편이다. 서울-제주간 편도 요금은 8800원, 제주-부산은 5400원이다. 서울을 떠나 제주로 가는 비행기는 제트기여서 하늘로 비상하는 기분은 최고였다. 그러나 제주-부산간 비행기는 프로펠러기여서 급강하와 급상승을 반복해 가슴을 졸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제주관광호텔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일어나 하얗게 쌓인 눈을 바라보았던 기억은 어제일 같은데 벌써 회갑의 나이다. 객실요금 3600원, 이 호텔내의 불고기는 1인분이 800원, 맥주 1병에 400원, 커피는 고작 200원이었다. 바다 건너간다는 기분을 내라고 일부러 그랬는지, 비행기와 호텔의 모든 영수증이 영어로 써 있다. 불고기정식도 ‘Bul koki dinner’다. 왜 영어를 고집했을까. 고상해 보이기 위해서 


만장굴의 관람료가 100원이었다. 쌍룡굴, 김녕굴, 협재굴은 50원씩이다. 입장권은 모두 천연색 사진이 들어 있어서 지금 사용해도 낯설지 않겠다. 폭포입장권 뒷면에는 제주도 특유방언이 소개돼 있다.

 

‘상키-채소, 곱데산이-마늘, 남삐-무, 양지-얼굴, 구뚱배기-뺨, 꽝-뼈, 잠저패기-볼, 뚜럼-바보, 고장-꽃, xx 있수과 -xx 있읍니까 , xx있수다-xx있읍니다. 아니우꽈-아닙니까, 기우다-그렇습니다…’


비원 앞의 신혼예식장은 이용료가 1만3200원었고, 컬러사진 한 판 2매 기준으로 8000원, 흑백은 1판 3매에 3500원인데 ‘외부 사진기 지참을 일체 금한다’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꽃값은 3000원, 폐백실은 4000원을 냈다. 모두 합쳐서 예식장 비용으로 3만3000원을 썼다.


당시 허례허식을 없애자고 가정의례준칙까지 시행해 음식접대는 물론 선물도 금지하던 시대였다. 요즘과 비교하면 결혼식은 1000배 뛰었고, 비행기 요금은 꼭 10배 올랐다. 당시 사진 한판 값이 제주 가는 비행기 값과 같으니 꽤 비쌌다.


그 때의 나는 행복했었고 마음은 희망으로 꽉 차 있었다. 그 때의 영수증을 33년이나 고이 간직해둔 아내의 정성이 아름답고 고마울 뿐이다. 이 영수증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33년으로 돌아가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언제라도 이 뭉치를 풀면 33년 전의 청년으로 돌아 갈 것이다.

김달호 서울 서초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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