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귀찮게 생각하면 나라 망해… 잘 모시는 나라가 건강한 국가”
“노인 귀찮게 생각하면 나라 망해… 잘 모시는 나라가 건강한 국가”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5.08.14 09:28
  • 호수 4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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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호 앵커’ 봉두완

‘뉴스전망대’ 등 시청률 40% 기록… 3선 개헌 반대하다 암살 위협 당하기도
여든 나이에 충무아트홀 후원회장, 북한대학원 석좌교수 등 사회 활동 여전

‘대한민국 1호 앵커’로 불리는 봉두완(80·한미클럽 회장)씨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뉴스전망대’ ‘안녕하십니까 봉두완입니다’ 등 방송 프로에서 귀에 익은 어눌한 말투, 친근감이 느껴지는 꺼벙한(?) 표정 등 그의 트레이드마크는 여전했다. 최근 충무아트홀 후원회장에 선임되고, 북한대학원 석좌교수에 임명되는 등 잇따른 사회활동 소식이 전해져 만나자고 했다. 서울 명동대성당 부근 커피숍에 십자가가 그려진 빨간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꽤 오래 동안 쓴 모자 같다.
“제가 1953년 1회 청소년적십자단원이었고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도 지냈어요. 손녀가 ‘할아버지는 적십자맨’이라며 10여년 전 사준 모자에요. 어딜 가나 쓰고 다닙니다.”

-그 나이에도 여기저기서 찾는 건 반가운 현상이다.
“충무아트홀 이종덕 사장이 저와 함께 수십년 봉사활동을 한 인연으로 후원회장을 맡게 됐고, 국회 외무위원장 지낸데다 2011년 ‘통일TV방송’을 개국한 일 등으로 석좌교수직을 맡게 된 것 같아요.”

-천주교와 인연이 깊은가 보다.
“전에 성모병원이었던 가톨릭회관 503호를 ‘천주교한민족돕기회’ 사무실로 쓰고 있어요. 김수환 추기경님 이름으로 20만 자루의 초를 조용히 북한에 보냈고, 경기도 탄현 201부대 부근에 ‘기도의 집’을 짓고 10여년 미사를 봉헌했어요.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성라자로마을’을 돕는 일도 45년째 해오고 있고요.”

봉두완씨는 천주교한민족돕기회 회장이기도 하다. 1958년 세례명 ‘다윗’을 받은 봉씨는 스마트폰을 열어 사진 한 장을 보여준다. 성대한 잔치 상 앞에서 봉씨가 두 노인의 어깨에 양손을 얹고 환하게 웃는 사진이다. 봉씨는 “성라자로마을에서 최근 팔순·구순 합동잔치를 열었다”며 “자식 있는 집도 이렇게 (풍성하게) 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환자들은 일찍 사망하는 줄 알았다.
“전에는 그랬지만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먹고 잘 입는다고 말할 정도에요. 평생 나환자를 위해 헌신해온 이경재 신부님(1926~1998)은 이들을 임금님처럼 잘 살게 하자고 늘 말했어요.”

-노인이 신앙을 가지면 좋은 건가.
“가장 친한 이들이 중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이에요. 이 친구들하고는 여자얘기도 하고 가족들에게 못할 말도 주고받는 사이에요. 그렇지만 나중에는 다 죽어요. 골프도 같이 못 쳐요. 그 다음으로 허물없는 이가 누구냐, 하느님이에요. 우리를 만들어준 분이지요. 그분을 믿으면 그분이 내려주시는 은총이 있어요. 제가 이 나이까지 살아 있는 건 제 실력으로는 안돼요. 어떤 은총이 있어서 그런 거지요. 날 보면 예수 믿어도 돼요. 제가 기자 출신이에요. 대개 기자들은 이거(돈) 챙기고 이거(여자) 좋아하고 그러잖아요. 전 그걸 아주 조심했어요. 암살 계획에서도, 이북에서 넘어올 때 기관총 막 쏘아대는 위험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것도 하늘이 도운 거예요.”

-암살 계획이라니.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정치와 3선 개헌에 반대하니까 차지철 경호실장이 절 죽이려고 했어요.”

황해도 수안 출신의 봉두완씨는 해방 직후 가족을 따라 38선을 넘어 남한에 정착했다. 연세대 영문과를 나와 1959년 동화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첫발을 내디딘 후 한국일보 주미특파원,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동양방송 앵커로 활동했다. 그가 진행한 TBC 라디오 프로그램 ‘뉴스전망대’(1970~1980)와 ‘시사토론 동서남북’ 등은 시청률 40%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였다. 1981년 언론통폐합으로 방송을 그만두고 11대 때 민주정의당 공천을 받아 서울 마포에서 출마해 전국 최다득표로 당선됐다. 12대 국회의원을 거쳐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를 역임했다. 주미특파원을 지낸 언론인들의 모임 ‘한미클럽’의 회장이다.

-방송에서 항상 누군가를 야단치곤 했다.
“한국일보 주미특파원을 마치고 귀국한지 얼마 안 됐을 때 방송 프로그램을 맡아 ‘민주주의 한다고 헌법 3번, 4번씩 바꾸면 어떻게 하냐’고 했어요. 그냥하면 잡혀가니까 ‘깊은 뜻이 담겨있겠지, 난 잘 모르겠다, 잘 먹고 살아라’라고 했더니 난리가 났어요. 3개월 동안… 제가 그 다음날 방송 하느냐, 안 하느냐로 내기를 하는 일까지 벌어졌지요.”

-요즘은 누구에게 그렇게 하고 싶은가.
“특정인을 말할 수는 없고…. 야당 정치인들 귀싸대기 때려주고 싶어요.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180달러에서 2만 7000달러로 바뀌었는데 정치인들만 안 바뀌었어요. 국가발전의 저해요인이 바로 국회의원이에요. 자기들끼리만 하니까 여의도에 탁류가 흐르는 겁니다. 저는 ‘외판사원’(국회 외무위원회 소속을 뜻함)만 했어요.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물건 들고 밖에 나가 팔았어요. 당시는 애국정신으로 정치를 했어요. 지금도 그런 정신을 갖고 하는 분도 있겠지만 정치판 물을 갈아야 해요.”

-지난번 국회법개정안 사태로 물러난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어떤가.
“연로한 이들이나 기득권층은 (유승민을) 싫어해요. YS(김영삼 전 대통령) 비서하던 이가 책을 냈어요. 다 맞는 소리지만 사람들은 YS 욕 안하고 그 사람을 욕해요. 다 해먹고 뒤로 돌아서 욕한다고. 유승민이 아무리 잘해도 노인이 보기엔 싸가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제가 박근혜 대통령 출신고인 성심여고의 이사 겸 발전위원장이에요. 대선 때 주변 사람들에게 박 대통령 찍으라고 했다가 요즘 만나는 이들한테서 혼나고 있어요. 국가를 잘 이끌지 못한다고 해서지요. 그렇지만 전 칭찬하고 싶어요. 노무현·박근혜 두 대통령이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통령이에요. 왜냐, 돈을 안 먹는다는 그 한 가지 사실 때문이에요. 지난 대선 때 제가 옆에서 봤어요. 누가 돈을 준다고 하면 공식적으로 나오는 돈으로 충분하다며 받지 않았어요. 저도 돈 배달 안했고요.”

-골 깊은 사회 갈등 어떻게 풀어야 하나.
“정치권부터 바뀌어야 해요. 쇄신해야 합니다. 법무·내무장관을 지낸 조재천(1912~1970·4선 의원)이라고 전라도 광양 사람이 대구에서 당선됐어요. 그런 분이 또 나와야 해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계층 간 화합·소통을 잘 하고 있어요. 제가 ‘동서남북’ 사회 볼 때 그이 아버지(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1985년 작고)를 모셔다 경제 코멘트 듣고 그랬어요.”

-한·미·중 3국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현 정부는 중국과 친하게 지내지만 역시 중국은 공산국가에요. 미국은 우리를 점령하지 않고 우리를 독립시킨 나라에요. 무상원조해준 나라지요. 민주국가로 성장하는데 도움 준 미국과 이제는 대등한 위치에 섰어요. 일부에선 우리나라를 여전히 시골에 처박혀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밖에서 보면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에요. 소갈머리 좁게 행동하면 안돼요.”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당시 에피소드를 소개해 달라.
“160명의 남측 이산가족을 이끌고 평양에 가서 남북가족상봉을 했어요. 강원도 원주에 사는 구십 넘은 할머니가 북에 사는 아들을 만나는 순간 정신이 확 살아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버스 안에서 계속 머리를 흔들던 이가 아들을 만나는 순간 정신이 돌아온 겁니다. 얼마나 고향이 그리웠고 아들이 보고 싶었으면 그랬겠어요. 우리 이북서 온 사람들은 고향을 늘 그리워하지요. 어휴!”

-노인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보인 글을 쓴 적이 있다.
“노인이 전철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꾸중하자 중학생이 뒤따라 내려 승강장 계단에서 밀어 사망했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너무 화가 나 가톨릭신문에 기고한 적이 있어요.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요. 노인들에게 잘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8·15, 6·25 다 겪고 이 나라를 이만큼 세우는데 앞장 선 분들이에요. 노인을 귀찮게 생각하면 나라 망해요. 노인을 잘 모시는 나라가 건강한 나라입니다.”

-현실은 노인 공경이 잘 안 되고 있다.
“하와이가 노인들이 살기 좋은 도시라고 하지만 그보다 호주의 바닷가 근처 도시에 갔을 때 정말 천국이 따로 없다는 걸 느꼈어요. 휠체어를 탄 노인이 버스를 타기까지 모든 사람들은 기다립니다. 그 전에 버스 타면 불법이라고 해요. 우리는 휠체어를 밀쳐내고 먼저 타려고 하잖아요. 노인을 제일 공경하는 종교가 가톨릭입니다.”

-건강관리는.
“헬스클럽도 나가고 기회만 되면 걷는 겁니다. 명동에 사무실이 있지만 차를 롯데백화점 지하주차장에 놓고 사무실까지 걸어서 다녀요. 웬만하면 걸으려고 해요.”

-인생의 좌우명이라면.
“그런 건 없지만 자식들(2남1녀)에게는 절약하고 검소하라고 얘기해요. 제가 이병철 전 삼성회장과 같이 ‘장미라사’에서 맞춘 신사복을 지금까지도 입고 다닙니다.” 글·사진=오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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