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택배로 용돈 벌고 경로당 활성화 ‘일석이조’
실버 택배로 용돈 벌고 경로당 활성화 ‘일석이조’
  • 정찬필 기자
  • 승인 2015.08.14 09:33
  • 호수 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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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상계동 주공14단지 경로당
▲ 상계 주공14단지 경로당은 실버택배를 통해 일자리와 경로당 활성화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리고 있다. 사진은 택배 화물을 분류중인 경로당 어르신들. 사진=조준우 기자

회원 20명 아파트 단지내 택배… 1인당 월 60만원 소득 올려
친근함으로 주민들도 좋아해… 회원간 친목 활동도 활발해져

“14단지 아파트로 온 것은 왼쪽에 쌓아주시고요. 떨어트리지 않게 주의해 주세요. 얼마 안되니 후딱 끝내고 밥 먹으러 갑시다.”
8월 4일 오전 11시. 물건을 실은 트럭이 경로당 앞에 들어오자 어르신들이 바빠졌다. 이곳 경로당 회원 20명이 참여하고 있는 ‘실버 택배’ 때문이다. 택배원으로 변신한 어르신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택배 상자를 내렸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 주공14단지 경로당(회장 이승희)이 성공적인 일자리 사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2009년부터 시작한 ‘실버 택배’사업은 회원들에게 일자리와 수익을 선사하고 주민 편의를 돕자는 차원에서 시작됐다.
이승희 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회원들을 위한 일자리 사업을 계획했다. 사회에 공헌하고 생산적인 활동을 통해 일하는 노인의 모습을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대한노인회 노원구지회의 추천으로 업체와 계약을 맺고 ‘실버 택배’를 시작했다 경험은 없었지만 사업가 출신인 이승희 회장의 노력과 노원구지회의 지원이 큰 힘이 됐다.
6년간 사업을 진행하면서 부침도 겪었지만 순조롭게 성장했다. 6명으로 시작한 택배원 수도 20명으로 늘어났다. 지금은 4군데 택배업체와 계약을 맺고 아파트 12∼14단지(약 5000세대)의 택배 배송을 대행하고 있다. 매일 200∼300개의 화물이 이들의 손을 거쳐 각 가정에 전달된다.
택배회사 입장에서는 물건을 일일이 집 앞까지 들고 가는 수고를 덜고, 주민들도 택배를 부치기 쉽기 때문에 좋다. 실제로 주민이 경로당으로 전화를 하면 어르신들이 수시로 방문해 택배를 받아온다. 또 어르신들이 각 동을 전담해 계속 책임지기 때문에 친근함은 물론 신용도 쌓았다. 이날 택배 물품을 수령한 주민 김은혜(47·여)씨는 “아파트 복도에 낯선 택배원들이 돌아다니면 괜히 불안했는데, 매일 보는 동네 어르신들이 물건을 갖다 주니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어르신들의 뿌듯함도 그만큼 크다. 조남길(76) 어르신은 “매달 수입도 생기지만 무엇보다 주민들이 고마워해 기쁘다”며 “내가 사는 지역에 약소하지만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좋다”고 말했다.
택배 한 건당 640원의 수수료를 받으면 500원을 어르신들의 인건비로 지급하고 나머지 140원은 운영비로 사용한다. 사무실의 각종 비품을 구입하거나 택배 운송에 사용되는 리어카 및 손수레 수리비로 지출한다. 운영비는 늘 부족하지만 회원들 스스로가 아끼고 절약하는 분위기여서 큰 어려움은 없다. 최근에는 택배회사로부터 화물칸이 장착된 전동 자전거를 지원받았다. 무거운 짐을 싣고 이동하거나 경사로를 오를 때 전기 모터를 이용할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된다.
20명의 어르신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하며 한 달 평균 60만원의 소득을 올린다. 대부분이 75세 이상의 어르신들이다. 80대도 여럿이다. 택배회사 차가 들어오면 물건을 내리고 주민들이 부치는 택배를 싣는다. 그 후 택배 분류작업을 거쳐 담당하는 단지에 배송하는 일로 하루 일과를 보낸다.
여름철은 비수기에 해당한다. 성수기인 가을·겨울은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추석과 김장철이 있는 데다 연말·설날의 배송 물량이 많다. 택배 물품은 20kg이하로 정해졌지만 이 시기에는 무겁고 부피가 큰 화물도 몰린다. 요즘은 오후 4시면 업무가 끝나지만 성수기엔 오후 6시까지 일할 때도 많다.
분주히 작업중이던 이은호 (75)어르신은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건강한 기운을 준다. 운반과 배송 일은 처음이지만 나이와 환경이 비슷한 동료들과 함께 일하니까 동질감도 느끼고 의지가 많이 된다”고 말했다. 어르신들이 워낙 적극적이기에 이직률은 낮다. 5년간 일하신 분도 많고 3년 이상의 경력자가 대부분이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호흡이 척척 맞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자기일을 알아서 한다. 지시하거나 감독할 일도 거의 없다.
물론 신경써야 할 부분도 많다. 분실과 파손을 방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과상자만한 물건부터 담배갑 크기까지 다양한 화물을 다루기 때문에 배송 사고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단지가 넓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저층 아파트도 많아 힘이 부칠 때도 있다. 무거운 짐을 들다가 다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늘 긴장하고 조심해야 한다.
어르신들은 일만 하는 게 아니라 경로당 활동도 즐긴다. 매월 한번 씩 월례회를 통해 점심식사를 같이하고 일 년에 두 번씩 야유회를 떠난다. 2300여 세대가 사는 주공 14단지는 68세 이상 노인들이 많이 산다. 택배 작업을 하는 20명을 포함해 총 90명의 회원이 등록돼 있다. 회원 수는 많지만 늘 활기차고 돈독한 유대관계를 자랑한다. 몸이 불편한 회원을 다른 회원들이 보살펴 주거나, 경로당 일에 너나 할 것 없이 앞 다퉈 나선다.
택배 사업 이후로 경로당은 매일 웃음 가득한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 회장은 사업을 시작하며 동료와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 결과 함께 일한 5년 동안 회원들의 마음은 하나가 됐다. 늘 가까이 지내고 대화하면서 자녀가 무슨 일을 하는지, 걱정거리는 무엇인지 줄줄이 꿰고 있다.
이 회장은 택배 사업의 성공으로 경로당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말하며 회원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고맙다고 말했다. 일자리를 통한 보람과 즐거움이 경로당의 분위기를 바꾼 셈이다. 그는 “실버 택배 사업을 통해 용돈도 벌고 경로당 활성화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뒀다”며 “땀흘려 일하고 퇴근 후 동료들과 막걸리 한잔하는 맛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라 말했다.
정찬필 기자 jcp@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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