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모임은 사회자본의 한 축
동창모임은 사회자본의 한 축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 승인 2015.08.21 13:19
  • 호수 48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그동안 학교에 일이 많다는 핑계로 잘 나가지 않던 고등학교와 대학교 동창모임에 자주 나가게 됐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지만 만나자마자 이놈 저놈 하니 참 편하고 좋다. 옛날 철없던 시절로 돌아가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면 서너 시간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 버린다. 한 잔 걸친 친구는 좌중을 휘어잡으며 좌충우돌하지만 그래도 그런 녀석이 있어야 모임이 활기를 띤다. 다음 분기에 또 만날 것을 기약하며 헤어진다. 다음 분기에 모여 또 옛날 얘기를 하다가 이번엔 어디 아파서 어느 유명한 의사에게 갔었다는 얘기를 중심으로 화제를 돌리다 그 다음 분기에 만날 것을 기약하고 헤어진다.
친구들 만나는 것이 즐겁고 시간 잘 보내는 방법이긴 하지만 이렇게 시간을 죽이는 일이 반복되면 꼭 이렇게 만나야 하나 하고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작년에 회장이 된 친구가 봉사활동을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하고 나보고 봉사팀장을 맡아달라고 해서 즐겁게 수락했다.
나는 친구들이 모이는 블로그에 이런 글을 썼다. “사람이 죽을 때 후회하는 ‘3걸’이 있다. 참을 걸, 즐길 걸, 베풀 걸. 베푸는 일, 즉 봉사는 개인적으로는 인격을 도야하고 사회적으로는 공동체의식을 함양하는 의미 있는 사회활동이다. 봉사활동을 하면 활동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삶의 여러 측면에서 서로 격려하고 사기를 북돋우며,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정신적 자극을 받고, 때로는 집단심리가 작용하여 혼자서는 무력감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일을 시도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기도 한다. 사람이 이타적인 행동을 하면 뇌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신경조직이 활성화되어 치매를 예방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젊었을 때의 직장생활이 ‘제1의 경력’이라면 퇴직 이후의 봉사생활은 ‘제2의 경력’이라 부를 수 있다.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되면 자칫 무료하고 무기력해지기 쉬운 은퇴기에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삶의 목적을 새롭게 한다.
동창들의 모임은 언제나 즐거운 것이지만, 사실 모여서 옛날 얘기 하거나 신변잡기 식 대화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왕 모이는 바에 봉사활동을 통해 우정을 더욱 돈독히 하고, 우리의 재능을 가지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좋은 일을 같이 하다 보면 그동안 동창회에 잘 참여하지 않았던 친구들도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볍게 시작하더라도 오래 지속하다 보면 정말 헌신적인 봉사활동에 인생의 큰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금년 동창회 회장이 좋은 계획을 세운 것 같다. 봉사활동을 한 번 같이 해보자는 것이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의논들이 있었는데 일단은 좀 쉽게 시작해 보자. 우리 친구인 ○○○가 관장으로 있는 강서구 ○○○복지관에서 함께 봉사활동을 시작해 보기로 하자. 복지관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는데 우선 비교적 쉽게 해볼 수 있는 것을 하도록 하자.”
그동안 장애인 나들이 도우미 봉사활동을 몇 번 했고, 지금은 좀 더 장기적으로 재능기부의 성격을 갖는 봉사활동으로서 탈북자 지원 봉사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많은 수가 모이지는 않지만 순수한 봉사를 위해 시간을 내는 친구들의 따뜻한 마음이 서로에게 전달돼 그 어떤 모임보다 더 기다려지게 됐다.
강남 어느 식당은 낮에는 여자 동창회 모임으로, 밤에는 남자 동창회 모임으로 매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이런 곳은 총무가 아예 일 년치를 다 예약해 놓는다. 밥 먹고 수다 떨다 헤어지면 얼마나 인력낭비인가? 돈을 조금씩 모아 불우이웃을 돕는다든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작으나마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등 일상생활에서 봉사가 생활화된다면 친구들의 만남이 의미가 있고 우리사회가 추구하는 복지사회의 분위기도 무르익게 되지 않을까?
1990년대 초 로버트 푸트남 교수가 창안해 쓰기 시작한 이래 약 20년간 사회과학을 포함한 전 학문 영역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사회자본의 또 한 축이 우리나라의 독특한 동창문화에 적용돼 자연스럽게 구축되는 것을 제안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