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재산 내놓은 이준용 회장 집에 가보니…
전 재산 내놓은 이준용 회장 집에 가보니…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5.08.21 13:20
  • 호수 4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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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장엔 낡은 구두 세 켤레
거실엔 허름한 소파만 있을 뿐

악취가 진동하는 상한 음식만 보다 신선한 음식을 맛본 기분이다. 이준용(77) 대림산업 명예회장의 전 재산 기부 뉴스가 롯데그룹 형제들의 추악한 경영권 다툼의 와중에 나와 선행의 가치가 더욱 빛나 빗댄 말이다. 이 명예회장은 8월 17일,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이사장 안병훈)에 대림산업 관련 주식 등 2000억원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명예회장의 근검절약하는 생활 습관은 재계에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집은 서울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 뒤편 골목에 있는 아담한 2층집이다. 대림산업에서 워낙 튼튼하게 지은 탓인지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벽의 균열이나 곰팡이자국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외관이 깔끔하다. 기자는 수년 전 우연찮게 이 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재벌 회장의 안방과 거실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한 눈으로 살핀 기억이 난다.
마당을 가로질러 10여개의 나무계단을 올라서면 1층 현관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왼편에 신발장이 있다. 부인의 신발을 포함해 10여 켤레의 신발이 있었다. 이 명예회장의 신발은 낡았지만 깨끗하게 닦아놓은 검정구두 3켤레와 운동화, 골프화 각각 하나씩이 전부였다. 1층엔 안방과 작은방, 식당, 거실 등이 있다. 안방엔 자개장과 침대, 유리벽으로 만든 샤워실이 딸려 있다. 식당엔 대형식탁과 8개의 의자가 놓여 있다. 부엌에는 두 개의 냉장고가 있고 안에는 과일·생선 등 여염집과 비슷한 양의 음식물이 저장돼 있었다.
작은 정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거실은 8평 이내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공간이다. 중국스타일의 소파와 또 다른 헝겊소파, 피아노, 50인치 컬러TV 등이 있다. 리모컨, 돋보기가 소파 옆 탁자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고, 피아노 위에 손바닥 만한 크기의 가족사진액자가 빼곡히 진열돼 있다. 2층에는 널찍한 방과 서재가 있다. 가구들은 모두 오래됐고 화려한 외제가구는 눈에 띄지 않았다. 70대 노부부의 살림살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 명예회장은 주중에 오전 8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을 지킨다. 한 달에 3~4회 큰아들(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과 셋째아들(이해창 대림산업 부사장) 등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것 외에 외부약속을 잡지 않는다. 저녁식사 후에 TV를 보다 잠이 드는 일상생활의 반복이다. 과묵한 스타일로 집안에서도 이 명예회장의 목소리가 들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명예회장의 부인 한경진 여사는 대림미술관 관장을 지냈다. 외출했다가도 남편이 집에 들어오기 전에 먼저 귀가하는 전형적인 현모양처이다. 직접 시장에서 장을 봐오고 음식도 손수 만든다. 지난해 12월 갑작스레 세상을 떠 이 명예회장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기부 결정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 명예회장은 “집사람이 나를 추월해 먼저 갈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다”며 “아내가 떠난 직후에 기부를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명예회장의 집안은 명문가이다. 이 명예회장은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덴버대 대학원 통계학 석사를 마쳤다. 큰아버지가 우리나라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긴 고 이재형 국회의장(1914~1992)이다. 이재형 의장은 제헌의원을 포함 7선 의원이다. 이 의장의 선산은 산본에 있었다. 이 의장은 산본신도시개발 당시 토지공사의 땅 수용에 불응해 법적 소송을 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의장의 집은 이 명예회장의 집에서 걸어서 20분 내에 있다. 이 명예회장은 출근 전 운동화를 신고 큰아버지 집을 경유해 산책을 다녀오기도 한다.
이 명예회장의 기부에 대해 정의화 국회의장은 “우리 사회 모든 사람에게 울림을 주는 대사건”이라며 격찬했다. 이 명예회장처럼 앞으로도 가진 이들의 릴레이 기부가 이어져 없는 이들의 마음이라도 훈훈하게 만들어주고 사회 지도층다운 모범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특히 롯데그룹은 썩은 생선냄새 그만 풍기고 이 명예회장의 기부 정신을 본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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