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멋은 곡선과 여유다
삶의 멋은 곡선과 여유다
  • 관리자
  • 승인 2007.06.0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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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보다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아무리 산이 아름답고 강이 아름답고 바다가 아름답다 하여도 그 속에 피어난 꽃이 없고 뛰어 다니는 다람쥐가 없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과연 정말로 아름답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산과 들이 강과 바다가 아름다운 것은 바로 생명체가 그 속에 깃들어 있기 때문임은 자명하다. 따라서 생명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왜 모든 생명은 아름다운가  그 답은 너무도 간단하다. 바로 살아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항상 움직인다는 점, 제 뜻대로 움직인다는 점, 언제나 변화한다는 점, 자신과 같은 또 다른 생명체를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 한다는 점 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미학적인 측면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생명체의 모든 부위에도 절대 대칭이 없다는 점과, 어느 부위에도 절대 직선이 없고 모든 부위가 곡선으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이다. 얼핏 보아 대칭 같아도 자세히 보면 전연 그러하지 않고, 얼핏 보아 반듯한 직선 같은 구조도 자세히 살펴보면 결코 직선이지 않은 모든 생명체의 신체적 구조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직선 같으면서도 곡선이고, 대칭 같으면서도 비대칭적 구조를 갖춘 생체는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있다.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구조가 아니라 항상 새롭고 창조적인 형태적 변환을 통해 생체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고 여유를 내포하고 있다.


이런 생명의 함의는 다시금 우리가 살아가면서 추구해야 할 바를 보여 주고 있다. 바로 삶을 위해 답답하고 숨 막히는 틀에 박힌 노정이 아니라 보다 여유롭게 자유로이 살아가는 길을 택하기를 요구하고 있고, 바로 그런 것이 삶의 멋임을 가르치고 있다.


‘삶의 멋, 생명의 멋’이란 무엇인가  모든 생명체는 살아가기 위해 매일 먹고, 배설하고, 자고, 움직인다. 그러나 그런 틀에 박힌 삶을 살면서도 주위의 변화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변화하며 적응해가는 것이 생명체의 살아가는 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생체는 비슷한 대응을 하면서도 결코 똑같은 반응을 하지 않고 나름대로 독자적 행동을 보인다.


생명체는 기계적이고 화학적인 반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의지에 따라 독자적으로 움직인다는 점이 무생물과의 차이다. 이와 같이 생명체는 생김새만 여유를 갖는 것이 아니라, 행동에 있어서도 결코 획일적이지 않은 차별화를 보이면서도 큰 틀에서 비슷한 경향을 보여주는 여유를 가지고 있다.


바로 이것이 생명의 멋이고 삶의 멋이지 않을까. 따라서 생명의 아름다움은 비대칭적이고 곡선적인 바탕에서 새로운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발현되고, 그런 바탕에서 이루어진 삶은 독자적이고 차별화된 개체성에서 멋을 찾고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이런 멋을 갖추도록 해주는 필요조건은 여유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오래 산 사람들을 살펴보자. 다른 사람보다도 오래 산 사람들은 일반인들 보다 무엇인가 다른 삶을 살아오지는 않았을까  실제로 백세 넘도록 장수하신 분들을 만나 조사해 보니 어느 한 분도 평탄하게 살아온 분이 없었다.


모두 다 우리 역사의 현장에서 심한 굴곡을 견뎌냈고 가족과 지역사회에서 고난과 슬픔을 겪어낸 분들이었다. 어렵게 살아왔으면서도 이를 이겨내고 남들이 넘볼 수 없는 백세장수를 이루신 분들은 보통 사람들과 달라도 다른 점이 있을 터였다.


함안군에서 만난 조순숙(가명) 할머니는 백세가 넘으셨고 며느리는 여든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할머니는 정자나무 아래에서 동네의 예순, 일흔 되는 젊은( ) 아낙들과 막걸리 사발을 나누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저 할매 그저 허허 하고 살아”하며 평소 성격이 무사태평하다고 일러주었다.


순창군에서 만난 권일규(가명) 할아버지는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꽹과리를 만들면서 옛적 상쇠 기분을 한껏 내며 신이 나 쑥대머리 한 곡을 시원하게 불렀다.


낙천적인 성격으로 사람들에게 무엇이든 나누어 주는 걸 좋아하는 담양군의 전순자(93세·가명) 할머니는 막걸리 한잔을 걸치자 “청춘아 내 청춘아”하며 청춘가를 뽑으셨다. 그리고 “누가 제일 보고 싶으시냐 ”는 질문에 의외로 가족이 아닌 “친구들이 보고 싶어. 그런디 아무도 없어”하며 마음 아파하시는 모습을 보며 특별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곡성군에서 만난 이순경(103세·가명) 할머니는 나이를 묻자 “열아홉이야”하고 농담까지 하는 여유를 보이며, “경주 이씨여”하고 집안 자랑까지 했다.


평창군에서 만난 장옥순(99세·가명) 할머니는 나이를 묻자 “나, 백살이여”하며 자랑스럽게 대답하고 체중을 측정하기 위해 체중계에 올라가도록 하자 “올라가면 깨져!”하며 농담까지 했다. 그러면서 여성 조사 단원에게 “몇 살이여  시집가면 잘 살 것이네”하고 덕담까지 해주었다.


비록 몇가지 예만 들었지만 백세 장수인들을 만나면서 이분들의 여유로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세 초장수가 되면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어떤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당연할 터인데도 이분들은 오히려 젊은이들보다도 더한 여유로움에 농담은 물론 주변 일들에 아직도 참견하며 의사표현을 망설이지 않고 있었다.


백세가 되어서 여유가 생겼는지, 원래 이 분들이 여유로운 분들인지는 조사를 더해 봐야겠지만, 나이가 들어도 성격에 큰 변화가 없다는 노화종적관찰연구 결과에 따르면 역시 여유롭게 살아온 분들이 장수인이 되지 않았을까 


이런 분들은 일상생활을 해온 과정에서도 언제나 던져진 상황을 능동적으로 수용하면서, 직선적인 대응을 하는 대신 곡선적인 반응으로 예봉을 피하고, 상대방의 의표를 부드럽게 처리할 수 있는 비대칭적인 여유로움으로 삶을 살아 왔다.


따라서 삶의 가치는 이런 여유로움에 있으며 이는 생명의 아름다움과 삶의 멋을 이루는 바탕이 되고 있다. 이런 여유로움으로 삶에 임한 분들에게서 장수의 의미를 볼 수 있고, 실제로 백세 장수인들에게서 그런 가치와 의미를 체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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