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세 현역의사 강재균원장,“나는 체력적으로 70대… 건강 허락할 때까지 환자 돌보겠다”
92세 현역의사 강재균원장,“나는 체력적으로 70대… 건강 허락할 때까지 환자 돌보겠다”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5.09.04 13:40
  • 호수 4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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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대부분 노인, 하루 18명 진료… 전주에서 ‘명의’로 알려져
매일 아령·벤치프레스 1시간 근력 운동 후 캔 맥주 하나 비워

“그 병원 잘 고친다고 소문났어요.”
전주시 고사동에 위치한 ‘강 이비인후과의원’ 얘기다. 부근의 식당주인은 이 말을 하며 “다들 목이 아프면 거기 가요”라고 덧붙였다. 식당주인에게 ‘의사가 92세라는 걸 알고 있느냐’고 묻자 “그렇게 나이가 많아요?”라고 반문했다.
전주에서 ‘명의’로 알려진 강재균(92) 원장은 이비인후과 계통에서 최고령 현역의사이다. 외모로는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꼿꼿한 등, 주름살이 적은 얼굴, 빠른 동작 등. 겉으로는 70대 초반으로 보였다.
강 원장은 1951년 서울대 의대 5회 졸업생이다. 동기생 83명 대부분은 유명을 달리했고 7,8명만 남았다. 그 중에서 현역은 강 원장뿐이다. 지난 9월 초, 기자와 인터뷰하는 1시간 30여분 동안 6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환자 1명 당 치료 시간은 2~3분 정도. 머리에 커다란 반사경을 쓰고 아픈 곳을 들여다보며 능숙하게 치료하는 모습에서 의술의 높은 경지와 연륜을 느꼈다.

-환자들이 많다.
“대부분 알고 지내는 분들이지요. 그들 중에 세상을 뜬 이들도 많아요. 하루에 15~18명 정도이고, 젊은 사람들은 늙은이를 좋아하지 않으니 오지 않아요.”

-의료장비가 오래돼 보인다.
“여기 장비들은 수십년 된 것들이에요. 반사경도 배터리로 빛을 내는 게 아닌 구형이고, 치료의자도 40년 이상 됐어요. 흔한 ‘오디오미터’(청력검사기) 하나 없어요. 그래도 다 하니까요.”
-손이 떨리지 않나.
“시력·청력 다 좋고 손도 떨리지 않으니 이거 할 수 있지요.”

-노인은 이비인후의 어디가 문제인가.
“가장 많은 게 이명증과 이석증이지요. 귀에서 소리가 나는 이명증은 원인이 달팽이관에 혈액순환 장애가 생겨서 그런 거고, 이석증은 돌이 떨어져 나와 생기는 거고요.”

-예방법은.
“노환이라 어쩔 수 없어요. 나이를 안 먹는 수밖에 없겠지만… 이어폰을 꼽고 큰 소리로 들으면 환갑 되기 전에 귀 다 나가요. 성대를 보호하려면 옥타브를 높이지 말고 말을 많이 하지 않아야 돼요. 여기 창하는 사람들도 오는데 성대가 다 엉망이더라고요. 질병의 50%는 저절로 낫는 병들이에요.”

-병원 갈 필요가 그만큼 없다는 말인가.
“감기 들면 왜 콧물이 나오겠어요. 바이러스 못 들어가게 하려는 겁니다. 열나는 것도 백혈구가 감기바이러스하고 싸우는 거예요. 거기에 억지로 해열제를 쓰면 더 나빠져요. 모든 약은 독이에요. 병원 가면 환자복 입혀놓고 무조건 링거병 매다는데, 아니 밥 잘 먹는데 왜 링거바늘을 꽂나요. 건강의 3대 적이 스트레스와 운동 부족, 약입니다”

-혈압 약도 나쁘다는 건가.
“혈압이 왜 높아지는가. 필요에 의해서예요. 나이 들면 혈관이 딱딱해지고 가늘어집니다. 손가락 발가락 끝까지 피를 내려 보내려고 압력을 높이는 겁니다. 요즘은 140~150mmHg만 되면 고혈압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배울 때는 90mmHg에 자기 나이를 더한 게 정상혈압이라고 했어요. 제 경우는 180mmHg가 정상혈압이지요.”

-병원에서는 혈압 약을 먹으라고 하는데.
“외국에서 실험을 했어요. 혈압이 180mmHg인 노인들을 두 부류로 나누어 한쪽은 컨트롤(약 처방)을 하고 다른 한쪽은 그대로 두었어요. 컨트롤을 하지 않은 쪽의 결과가 좋았다고 해요. 약을 먹어 혈압을 150mmHg에서 130mmHg으로 낮췄어요. 20이란 차이가 났지요. 전 세계 수천만명이 그 수치를 낮추는 만큼 약을 사먹은 겁니다. 배후에는 제약회사가 있어요.”

-현대의술은 암도 고치지 않는가.
“일본 게이오 대학의 권도 교수라고 유명한 방사선과 주임이 있어요. 그 사람 말로는 암은 절대 낫지 않는 병이란 거예요. 노인이 많이 걸리는 노인성 병이 암이에요. 암에 걸리면 방치하라고 해요. 손대면 돈 들고, 몸은 몸대로 고생한다는 이유에서지요. 암은 크게 전이 되는 암과 전이 안 되는 암, 둘로 나뉩니다. 전이가 된 암은 수술, 방사선, 항암치료, 뭐를 해도 낫지 않아요. 반대로 전이가 안 되는 암은 그대로 두면 없어져요. 수술로 암이 나았다고 하면 그건 암이 아닌 거예요.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의학자들이 다 하는 말이에요.”

-암은 조기발견하면 낫는다는데.
“권도 교수 말로는 CT촬영에서 0.5cm 크기의 암을 발견했을 때 전이가 된 암은 조기발견도 소용없다는 거지요.”

-그럼 왜 손을 쓰는 건가.
“대장암 같은 경우 대변을 못 보니까 그걸 보게 하려고 수술하는 거고, 췌장암은 통증이 심하니까 완화시키려고 하는 거랍니다.”

강 원장은 전북 김제 출신이다. 할아버지 대는 지역에서 손가락에 꼽는 갑부였으나 아버지 대에서 완전히 몰락했다고 한다. 고창에서 고등학교를 나오고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다. 부산대 의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 원장은 경제적인 안정을 위해 의대를 택했다. 의대 졸업 무렵 6·25 전쟁이 터져 강원도 화천 등 최전방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종전 후 새로 생겨난 부산대 의대에서 인턴, 레지던트를 했다. 부산대 의대·전북 도립병원에서 근무하다 40여년 전 개업해 오늘에 이르렀다.

▲ 강재균 원장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환자를 진료한다.

-왜 이비인후과였나.
“우리 때는 전문의 제도가 없었고 모두가 일반의였어요. 나중에 전문의란 게 생겼어요. 그렇지만 내과·정형외과 등 각자의 분야가 있었어요. 의료사고 위험도 적고 험한 것 안 봐도 되는 이비인후과가 좋겠다 싶었지요.”

-기억에 남는 환자라면.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는 없어요. 저 역시 젊었을 적에는 간호사 3, 4명을 두고 수술도 하고 하루 100여명의 환자를 봤어요. 동료의사 중에 의료사고로 스트레스 엄청 받는 걸 봤어요. 전 주사도 잘 놓지 않아요. 페니실린 쇼크로 생명을 잃는 일도 생기거든요”

-이비인후과 관련 질병은 어떤 변화가 있었나.
“옛날에는 축농증이 많았어요. 디프테리아에 걸린 아이들이 숨을 잘 쉬지 못해 기관지 절개 수술도 하고 그랬지요. 귀에서 고름이 나오는 중이염도 많았고, 뇌막염을 앓다가 죽은 아이도 많았어요. 생활환경이 깨끗하지 못해서 생긴 질병들이에요. 지금은 그런 환자가 거의 사라졌어요. 요즘은 비염 같은 알레르기 증상이 대부분이에요.”

-환자를 대하는 철학이라면.
“환자는 의사 말 한마디에 병이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해요. 우리 병원에도 올 필요 없는 사람이 많이 와요. ‘문트테라피’(입치료)라는 말이 있어요. 일종의 심리치료지요. 병에 대해 두려워하고 지나치게 과민해지면 더 악화됩니다. 심리적으로 안정시켜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해줍니다.”

-되돌아보면 어느 때가 가장 좋았나.
“역시 젊었을 적이 좋았지요. 20년 전만 해도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내렸어요. 그때는 심야에 15시간 이상 산을 타고 가 일출을 보는 해맞이 등산도 매년 했지요.”

-100세를 충분히 넘길 것 같다.
“95세까지만 살면 좋겠어요.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지요. 태양과 죽음은 바라볼 수 없다는 말이 있어요. 돌연사도 많잖아요. 죽음은 알 수 없는 일이에요.”

-건강관리는.
“하루세끼 식이섬유가 많은 음식 위주로 먹어요. 다른 영양제는 먹지 않고 홍삼은 주스 형태로 마시기도 해요. 퇴근해선 1시간 동안 아령·벤치프레스 등 근력운동을 합니다. 집에 운동시설을 갖추어놓았어요. 운동 후에는 갈증이 나 맥주 한 캔을 비웁니다. 매일 똑같아요.”

-장수 집안인가 보다.
“할아버지·아버지가 70대에 돌아가셨으니 장수하셨다고 볼 수 있지만 동생들이 나보다 먼저 갔으니 그렇다고 하기도 뭐하고. 생활습관에서 생기는 당뇨·고혈압 같은 병이 생기지 않도록 절제하고 바른 생활을 해왔어요.”

강재균 원장은 부인(85)과 사이에 남매를 두었다. 아들은 미국 하버드대에서 10여년 생명공학을 연구하고 귀국해 기초과학연구원으로 일할 예정이다. 사위가 경기도 오산에서 이비인후과병원을 하고 있다. 20년 전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강 원장은 “교육감·도지사 등을 지낸 유지들이 병원으로 찾아와 함께 점심식사를 하며 세상 얘기를 나누는 재미도 사는 낙의 하나”라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병원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오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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