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계약서가 필요한 세상
효도계약서가 필요한 세상
  • 한혜경
  • 승인 2015.09.11 13:40
  • 호수 4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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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세의 B씨는 지난해 봄 남편과 사별한 후 혼자 살고 있다. 그런데 평생 건강했던 B씨가 최근 들어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고 한다. 큰 병이 걸렸나 해서 병원의 진단을 받아보면 별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여기저기 아팠다. 게다가 평소 대범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집에 혼자 있으면 자꾸 눈물이 나오고 ‘이제 그만 살았으면 좋겠다’는 혼잣말이 나온다고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B씨를 우울하게 하는 건 바로 아들이었다. B씨는 아들을 상대로 재판을 할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노후자금으로 모아둔 돈을 빌려간 아들이 돈을 갚기는커녕 찾아오지도 않고, 심지어 전화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B 씨는 이렇게 말했다.
“친구들이 자식한테 돈 빌려주거나 재산을 증여하면서 ‘효도계약서’를 써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생활비로 매월 얼마를 부쳐야 하고 한 달에 한 번은 찾아와야 한다는 그런 내용을 계약서로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그때만 해도, 부모 자식 간에 효도계약서를? 그런 자식은 자식도 아니지, 큰소리 쳤는데, 막상 내가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우울할 수밖에요. 오죽하면 재판할 생각까지 하겠어요.”
법원 통계에 의하면 2001년 60건에 불과했던 ‘부양료 청구소송’이 2014년 262건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B씨의 경우처럼, 부모가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했지만 자식이 부양 의무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부모가 이미 넘겨준 재산이라도 돌려받고 싶다고 소송을 청구하는 경우였다.
이러한 사례가 늘다 보니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하는 부모들이 나중에 소송까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미리 효도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 또한 늘고 있는 것이다. 효도계약서가 있다는 말을 처음 들을 때만 해도 설마 했는데, 설마가 사람 잡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법무부는 2013년에 자식이 부양 의무를 소홀히 하는 하는 경우 이미 넘겨준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 시안을 만들어 놓고 각계 의견을 듣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9월 1일 새정치민주연합에서도 ‘불효자 방지’를 위한 민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현행 민법 556조는 부모가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하기로 약속한 경우 ‘자녀가 부모에게 범죄행위를 하거나 부양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는 증여를 해제(취소)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558조는 ‘증여를 이미 이행한 때는 취소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어서 한번 증여한 재산은 부모라도 돌려받을 수 없게 되어 있다. 법무부나 새정치민주연합이 추진하는 민법 개정안은 증여 절차가 끝나버린 재산도 돌려받을 수 있게 한다는 취지라고 한다. 효도까지 법으로 강제할 수 있을까? 아니, 꼭 그래야만 할까? 씁쓸하다. 하지만 B씨처럼 자녀 때문에 힘들어 하는 어르신을 많이 만나다 보면 이게 현실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효도계약서’에 관한 얘기가 나온 김에 계약서 작성방법에 대해서도 말해 두는 게 나을 것 같다. 계약서를 쓰는 방법은 간단하다. 아래와 같은 내용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부모 A는 아들 B에게 부동산을 증여한다. 부동산을 증여받은 아들 B는 부모에게 매월 생활비로 금 ○○만원을 증여한다.
그리고 아들 B는 부모를 매월 ○회 이상 방문하는 등 자녀의 도리를 다 해야 한다. B가 위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증여받은 부동산을 부모에게 반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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