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희망은 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 관리자
  • 승인 2007.06.08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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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좋은 뉴스를 접하면 내일이라도 세상이 망할 것 같다. 하지만 생각보다 세상은 쉽게 망하지도 않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변화하며 발전해 간다. 부모를 봉양하고 효도하는 문화도 마찬가지다. 노인들이 젊었을 때와는 달리 젊은 사람들은 부양의무에 별 관심이 없다.


최근 우리나라 노인의 자살률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10년 전에 인구 10만 명당 23명이던 것이 지금은 103명이라고 한다. 10년 만에 증가치가 4배에 이르고, 증가율로만 치면 세계 최고다.


언론들이 분석하고 있는 바와 같이 노인들은 자식들에게 기대할 것이 별로 없다. 그런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뼈가 휘고 살이 닳도록 애썼는데, 미처 노후를 준비할 겨를도 없이 어느 날 사회가 휘딱 바뀌어 버렸다. 대다수의 노년세대가 이렇게 불의의 공격을 당한 것과 같은 처지다. 참으로 고약한 게임을 노인들이 하고 있는 셈이다.


본란에서 이미 수차례 주장한 바와 같이 지금 우리 사회는 노년세대가 마음 놓고 늙을 수 있는 획기적인 사회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노화가 깊어져 몸과 마음이 고단하고, 세상에 대한 섭섭함이 커지게 되면 노년세대는 두려워진다.

 

어느 날 혹 자신이 정신을 놓고 실수를 하지나 않을지 두려운 것이다. 누가 사회에 폐를 끼치고 가족에게 짐이 되는 것을 원하겠는가. 이런 두려움이 집착이 되고 비약을 하지 않도록 사회적으로 도와주어야 한다.


지금의 노년세대는 기묘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가족은 사회적 부양에 기대를 걸고, 사회는 아직 해당 가족들이 노년세대를 보살펴야 한다고 본다. 도덕적인 부담을 피할 수 있는 명분이 양쪽 모두에 있다. 일종의 과도기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노령연금 10만원이 20만원이 된다 해도 해결이 되는 문제가 아니다.


자식의 부양을 기대할 수 없게 됐으므로 이제는 재산을 물려주지 않아도 된다. 반강제적으로 재산의 3분의 1이나 혹은 5분의 1 정도는 못 물려주도록 하는 제도라도 마련해야 한다. 아무런 두려움 없이 노후를 맞고 죽음에 이를 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다. 이렇게라도 해야 사회가 일시적일망정 부모 부양에 대한 인식을 달리할 것이다.


고령화 시대는 노년세대만의 고민이 아니다. 뜻이 있는 연구자, 학자, 사회단체 사람들의 많은 관심이 있으면 한다. 국회의원, 대통령을 꿈꾸는 많은 정치인들에게도 주문한다. 그래도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으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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