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사람이 배낭여행 한다는 건 건강하게 산다는 증거”
“나이 든 사람이 배낭여행 한다는 건 건강하게 산다는 증거”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5.09.11 13:47
  • 호수 4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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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부부배낭여행가 김현·조동현

남편은 방송국 PD, 부인은 교사 출신… 1989년부터 165개국 다녀와
자유 누리고 금실도 좋아지는 배낭여행… 패키지보다 50%까지 저렴

지난 9월 5일, 서울시청 신청사. 노인 15명이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하늘공원’ 등 건물 내부를 구석구석 돌아본 후 밖으로 나와 북창동의 한 일식집에서 점심을 했다. 그러고 나서 부근에 있는 조선일보미술관에 들러 아마추어시니어사진가들의 전시를 둘러본 후 귀가했다. 이들은 ‘청류회’(淸流會)회원들. 매달 한차례씩 만나 미술 전시, 음악·오페라·연극 공연도 감상하고 식사도 함께 하는 문화 산책 모임이다.
20년 가까이 모임을 이끌어오는 회장은 KBS PD 출신 김현(77)씨이며 김씨의 부인 조동현(74)씨가 손발 역할을 하는 총무이다. 김씨 부부는 부부배낭여행가로 익히 알려져 있다. 지난 9월 초 부부가 기거하는 서울 가양동의 실버타운 ‘그레이스힐’에서 만났다. 기자의 질문에 부부가 교대로 답변해주었고, ‘부부 일심동체’라 화자 구분을 따로 하지 않았다.

-노인의 인문·교양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구상 시인(1919~2004)과 성천 유달영 서울대 농대 교수(1911~2004)가 만든 ‘송천아카데미’에서 고전을 공부하던 이들이 따로 ‘청류회’를 구성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어요. 많을 때는 60명을 넘었고 그 중에는 예비역 장성, 전직 은행장도 있었어요. 주로 70대이고 83세된 분도 6,7명 나오세요. 요즘은 15명 정도 모입니다.”

-20년이라면 긴 세월인데.
“송천아카데미 출신들이 비슷한 단체를 여럿 만들었지만 중간에 리더가 그만두거나 세상을 떠나면 모두 해체돼 우리만 남았어요. 살아남은 비결이라면 회칙도, 회비도 없이 그 때 그 때 필요한 경비만 거둬 공연 보고 밥 한 끼 먹는 식으로 운영하기 때문일 겁니다. 매일 5개 일간지의 문화면을 훑어보며 적당한 프로그램을 선정, 회원들에게 우편으로 알려요. 지난 8월에는 뮤지컬 ‘아리랑’을 함께 감상했습니다. 사전답사 비용, 우표 값 등은 회비에 포함되지 않아요. 봉사의 마음으로 하는 거지요.”
-부부배낭여행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직후부터 부부가 함께 배낭여행을 떠났어요. 지금까지 165개국을 다녔어요. 최근 여행은 지난 5월, 청류회 회원들과 중국 상해·항주 등지를 다녀온 거예요.”

-역시 배낭을 메고 갔는가.
“회원들 나이가 많아 배낭은 힘들어요. 일반 여행이었지요.”

-다른 여행 모임도 운영하는 걸로 아는데.
“두 사람의 이름에 공통으로 들어간 ‘현’자를 딴 ‘2Hyun’s Travel Club‘을 운영하고 있어요. TV 여행프로 ‘세상은 넓다’에 10여년 고정 출연한 적이 있는데 그 프로를 보고 우리와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분들과 만든 모임이에요. 여기엔 젊은 분들도 있어요.”

김현씨는 고려대를 나와 32년간 KBS·TBC PD를 지냈다. 주로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제1회 방송대상을 수상한 ‘라디오 재판실’, 하루 3시간씩 방송된 ‘오후의 로터리’, 운전자의 피로를 풀어주는 ‘가로수를 누비며’ 등 오늘날 60~80대의 귀에 쟁쟁히 남아 있는 프로그램들이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졌다. 여행을 좋아하던 김씨는 정년을 채우지 않고 55세 되던 해, 방송국에 사표를 내고 여행연출가로 새로운 삶을 찾았다. 이후 ‘한국여행인클럽’, ‘한국관광인클럽’ 등 여행단체의 장을 맡았다. ‘해외여행에 꼭 필요한 158가지 도움말’(1993년), ‘여보 우리도 배낭여행 떠나요’(1995년), ‘70대 인생을 재미있고 신나게 사는 이야기’(2014년) 등 10권의 저서를 혼자 또는 부인과 함께 펴냈다.
부인 조동현 씨는 서울대 사범대 영어과를 나와 서울여상에서 34년간 영어교사로 근무했다. 조씨는 탁구선수 출신 국회의원 이 에리사의 스승이다. 조씨는 “이 에리사가 운동선수라는 핑계로 수업시간에 들어오지 않아 교무실로 불러 무릎 꿇고 손드는 벌을 주었다”며 “나중에 이 선수가 ‘2.5g의 세계’라는 책에서 당시 일이 자신의 인생을 좌우한 사건이라며 잊지 못할 선생님으로 기록한 걸 보고 무척이나 고맙고 명예로운 일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왜 배낭인가.
“우선 경비 면에서 패키지여행과 비교해 3분의 2 정도 듭니다. 50% 비용으로 갔다 온 적도 있어요. 모든 일정과 방문지 등을 직접 설계해 완벽한 자유를 누릴 수 있고, 부부가 함께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화가 늘어나 금실도 좋아집니다.”

-어떻게 절약하는가.
“우리는 별 두 개 이하의 숙박시설만 이용하고 음식 값을 줄이기 위해 빵만으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도 많아요. 한번은 우리가 외국의 공원 의자에 앉아 마실 것 없이 빵만 먹고 있었어요.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한국 여행자가 우리 부부의 모습이 안 돼 보였는지 생수를 주고 간 적도 있어요. 파리에서는 택시비 40프랑(우리돈 6000원 정도)을 아끼려고 10년만에 부부싸움을 했을 정도로 최대한 아낍니다. 호텔까지만 택시를 타자는 말(남편)에 배낭여행 규칙에 위배된다며 끝내 버스를 고집했지요.”

-그래도 해외여행 경비는 만만치 않다.
“한번쯤 생각을 달리해볼 필요가 있어요. 한달에 10만원씩 3년만 모아보세요. 절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에요. 1년이면 120만원, 3년이면 360만원이 됩니다. 부부 두 사람이 가도 충분한 금액이에요. 처음부터 돈이 없어 못 간다고 단정 짓는 것보다 얼마나 가능성 있는 얘기인가요.”

-가장 인상 깊었던 여행은.
“역시 첫 여행이지요. 1989년 북미를 25일간 다녀왔어요. 그때 밴쿠버에서 로키산맥까지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갔어요. 점심때가 돼 동행한 사람들이 싸가지고 온 음식들을 폈고 우리도 그 옆에서 김치를 꺼내놓고 먹었어요. 여행이 끝날 무렵 현지에 사는 친구가 묻더라고요. ‘어떻게 김치를 안 먹고 오래 동안 여행을 할 수 있느냐’고요. 그 친구 말이 외국인들이 김치냄새를 싫어해 아침에는 일부러 김치를 안 먹는다는 거예요. 그제서야 큰 실수를 한 걸 깨달았어요. 그만큼 경험도 적고 외국 물정을 몰랐던 때지요.”

-노인들에게 배낭여행은 힘들 텐데.
“처음부터 배낭 메고 떠나지 마시고 패키지여행을 두 번 정도 다녀오세요. 그냥 따라만 다니지 말고 인솔자가 공항의 항공사 카운터에서 수속을 어떻게 하는가를 지켜보세요. 여행 안내서적 등으로 스스로 공부하고 준비하면서 가능한 여행 자료도 많이 수집해야 합니다. 우리 부부는 실버타운으로 이사 오면서 그동안 모은 슬라이드필름 등 여행 자료와 기념품(3000여점)을 국립중앙도서관과 부평 수도원에 있는 노인요양센터 두 곳에 모두 기증했어요.”

-그래도 나이가 들면 편한 여행을 찾는 게 인지성정이다.
“우리는 좀 달라요. 오히려 나이든 사람들이 배낭여행을 한다는 것 자체가 아직은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어요.”

-부부가 여행하면 꼭 다툰다고 하던데.
“집에서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않은 이들은 나가서도 꼭 싸웁니다. 우리도 결혼 직후 6개월 동안은 심하게 다퉜어요. 그러다 생각을 하게 됐지요. 헤어지지 않고 같이 살려면 한 사람만 양보해서는 안 된다, 서로 양보를 해야 한다는 거지요. 톱니바퀴가 돌아갈 때 톱니 하나라도 어긋나면 안 되잖아요. 오히려 해외에 나가서 부부 간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어요. 나이아가라폭포를 구경하던 중 남편이 기습적으로 입맞춤 했던 순간이 잊지 못할 달콤한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여행 중에 아픈 적은.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지만 1997년 동유럽 10개국을 떠나기 직전 (남편)다리가 골절된 적이 있어요. 회원들과 같이 가기로 약속을 해놓아 취소할 수도 없어 그대로 목발 짚고 공항을 나갔어요. 다행히 비행기서부터 현지의 버스기사까지 특별히 신경을 써주어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어요.”

-노인이 가기 좋은 배낭여행지라면.
“우리나라와 가깝고 교통 등 여행 인프라가 잘 돼 있어야 해요. 그런 점에서 일본이 좋아요. 노인들이 20일간 배낭 메고 다녀도 힘들지 않은 나라에요. 오는 10월 중순 ‘청류회’에서 일본 요나고·도토리 현으로 힐링 여행을 다녀올 겁니다.”

-앞으로 가고 싶은 나라라면.
“70대 들어서면서 배낭여행이 힘에 좀 부치지만 여전히 배낭을 메요. 미국의 텍사스와 뉴멕시코 일대를 렌터카로 돌아보고 싶어요.”

김현·조동현 씨 부부는 슬하에 형제를 두었다. 장남은 지난해 프란체스코 교황 시복식 때 사회를 맡아 진행을 보았던 김환수 신부이다. 부부는 “70대가 넘어서도 일거리가 있어 행복하고, 일거리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하기 때문에 행복하다”며 “뜨거운 열정으로 앞만 보고 달리던 젊은 날에는 황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이제는 저녁놀 중에서도 황혼이 가장 뜨겁고 눈부시다는 사실을 안다”며 웃었다. 글·사진=오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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