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가 그립다
홍시가 그립다
  • 이호선
  • 승인 2015.09.18 13:31
  • 호수 4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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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눈이 오면 눈 맞을 새라 비가 오면 비 젖을 새라/ 험한 세상 넘어 질 새라 사랑땜에 울먹일 새라/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도 않겠다던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이 노래는 요즘 활동이 뜸한 나훈아 씨의 ‘홍시’이다. 목숨까지 내어줄 것 같은 엄마에 대해 간절한 그리움으로 부르는 아들의 노래다. 그러나 요즘 이런 노래는 한물갔다. 그리움을 노래하기는커녕, 불효자 방지법이 운운되는 시대이다. 사전증여를 마치고 나서 부모를 나몰라라 하거나, 부모 중 한쪽이 돌아가신 이후 유산 분배 과정에서 남은 부모를 모신다는 명목 하에 부모의 재산 분을 차지하고 나중에 나몰라라 하는 일명 ‘나쁜 자식 방지법’인 셈이다.
이런 얘기가 신문지면을 오르내리니 많은 부모들은 재산을 베개 밑에 넣고 죽겠노라고 선언하고 있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나쁜 자식’들로 상속 빈곤층이 되느니 차라리 입맛 다시는 자식들을 부모들이 먼저 나몰라라 하겠다는 말이다. ‘나쁜 자식’ vs ‘성난 부모’의 대결상이다.
이게 무슨 모양새인가? 도대체 왜 이런 세상이 됐는가? 현상을 중심으로 원인을 살펴보면 사회가 변해도 너무 변해서이고, 이전 사회의 선순환 구조가 끊어져 생기는 일이다. 이전사회, 즉 농경사회를 바탕으로 한 경제연속사회에서는 부모가 자식을 기르고, 장성한 자식은 부모를 섬기고, 그의 부모는 자식에게 곳간열쇠를 넘기고, 그 곳간을 열어 이가 다빠져버린 부모에게 홍시를 드렸던 것이 얼마 전이었다.
지금 이 전달구조는 끊어졌다. 아들은 더 이상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지 않으며, 떨어져 사는 부모도 자식 얼굴보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곳간 열쇠와 같은 집과 인감도장을 넘겨주니 다 팔아먹고 외국으로 ‘먹튀’(먹고 튀기)를 하고, 이런 자식을 법정에 고소해 다시 먹은 재산을 토해내라고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선순환의 구조가 끊어지고 악순환의 구조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서로를 신뢰하고 돌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물고 뜯는 이 비극은 주로 전쟁 통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해방 70주년이 지나고 6‧25전쟁도 끝나 경원선 복구가 논의되고 남북의 대화의 창이 다시 그 거미줄을 걷으려는 이 시점에 사회는 화합으로 가고 가족은 분열로 가고 있으니 이 무슨 일인가.
민족이 찢어졌다고 울었던가? 남북이 갈라졌다고 울었던가? 찢어진 민족이 만나려고 한다. 갈라진 남북이 서로 어울리려 한다. 이 와중에 가족은 찢어지려 하고 세대는 갈라지려 한다. 어머니가 주시는 언 홍시가 그립다. 그리고 언 홍시를 어머니께 드리며 노래를 부르는 아들이 그리운 세상이 됐다.
흰 양복에 흰 구두, 그리고 흰 치아가 빛나던 한시대의 스타 나훈아 씨의 노래를 아들들이 부르는 날이 오길 바래본다. 딸들이 그 노래를 부르는 날이 다시 오길 기대해본다. 선순환의 끊어진 고리는 단단한 무쇠 같은 차가운 법이 아니라 녹아져 입에 흐르는 홍시, 세대 간 심정에 있다. 홍시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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