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 생활을 영위하려면
내적 생활을 영위하려면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 승인 2015.10.12 09:32
  • 호수 48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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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90세인 아버지는 과거에 무척 건강하셨다. 10여 년 전만 해도 아침산보는 거른 적이 없고 등산, 골프, 낚시를 일주일에 한 번 씩 할 정도로 건강하셨다. 한번은 속리산 문장대를 같이 올라가는데 아버지가 너무 빨리 올라가서 내가 좀 천천히 가자고 조를 정도로 튼튼하셨다. 시내에 아버지 전용 사무실을 조그맣게 마련해 놓고 친구들을 불러 모아 재미있게 지내셨다.
그런데 전립선 비대 수술을 받으시고 항문 주위에 통증이 발생한 후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 통증을 잡기 위해 안 해본 것이 없을 만큼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결국 그로 말미암아 이런저런 합병증이 생겼다. 집에서 간병인과 요양보호사의 도움으로 생활하시다가 혼자서는 화장실 출입이 어려워지면서 그렇게도 반대하시던 요양병원 입원을 허락하셨다.
벌써 1년 반이 지나갔다. 침대에 누워계시기만 하고 병원에서 주는 죽으로만 연명하고 계신다. 기분이 좀 좋은 날은 간병인의 부축을 받아 휠체어로 병원 정원을 두세 바퀴 도는 게 운동의 전부이다. 인지기능도 떨어지셔서 그렇게 총명하던 기억력도 가물가물하고, 최근에는 말하기도 힘들어 하신다. 병원 내에는 아버지와 비슷한 상태로 몇 년을 지내는 분들도 많다. 요즈음은 연명치료를 안 하는 추세이지만, 이제 스스로 식사와 호흡을 못하시게 되면 우리 형제들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나 걱정이 많이 된다.
노인복지학 전공자로 30년을 지내면서 늘 만나는 사람들이 노인들이었는데, 막상 아버지가 와상환자가 되고 이제 인생의 마지막 고비를 넘기시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니 그동안 공부했던 노년학 이론들은 무용지물인 것 같다. 활기찬 노년기를 규정하는 ‘제3의 인생기’를 지나면 질병과 장애를 특징으로 하는 ‘제4의 인생기’에 접어든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강을 혼자서 건너야 한다.
나는 최근에 출판한 ‘제3의 인생 설계: 신노년문화’에서 제3의 인생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들을 실었다. 그런데 제4의 인생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인간의 생애발달에 있어서 ‘자아’는 여러 단계를 거쳐 발달한다. 즉, 자아는 아동기에서 출발해 노년기에 이르도록 자율성-자아존중감-자아정체감-자아실현-자아통합-자아초월의 형태로 변화돼 인간을 성숙하게 만든다. 노년심리학 이론에 의하면 중‧장년기엔 자아실현, 초기 노년기는 자아통합, 그리고 후기 노년기는 자아초월의 과업을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노인은 자아실현, 자아통합, 자아초월의 과업을 충실하게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중‧장년기에 이뤄야 할 자아실현은 직장에서 생존하고 자녀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의무감 때문에 노년기로 연기된다. 초기 노년기에 이뤄야 할 자아통합은 소득과 건강의 악화, 그리고 여전히 일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현실 때문에 여유롭게 달성하기 어렵다. 후기 노년기에 이뤄야 할 자아초월은 그 전 단계에서 수행됐어야 할 자아실현과 자아통합이 미완성됐기 때문에 더욱 달성하기 요원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기 노년기인 제4의 인생을 위한 설계는 포기할 수 없다. 아마 그 설계의 요지는 ‘내적 생활’(inner life)이어야 할 것이다. 노년기를 ‘생애발달’의 한 단계에 포함시키는 이유는 노년기가 비록 신체적으로는 쇠퇴하지만 심리적․영적으로는 계속 발달돼 꽃을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꽃의 향기는 꽃을 피운 사람만이 음미할 수 있다. 세상 그 누구도 공감하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기 인생을 보내는 본인에게는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객관적으로 보면 불만족스러울 현실에 대한 자족과 감사, 나약하지만 연장되고 있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 주위에 친근한 사람과 사물이 존재한다는 안도감, 과거와 미래로 연결되는 삶의 연속성, 이전 세대와 후세대의 삶이 합류되는 연속성 상에 존재하는 나의 삶에 대한 성취감, 그리고 한 생명의 죽음은 다른 생명의 탄생의 원인이 된다는 깨달음 등이 내적 생활을 구성하는 것이 아닐까?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 최후의 순간에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말한 후 숨졌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인간이 가장 나약해진 순간에 가장 위대한 생각이 탄생되는 것일까? 인간이 자신의 힘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절대자의 힘에 완전히 자신을 맡기는 삶이 가능하다면, 그것이 아마 내적 생활의 극치가 될 것이다. 내적 생활은 종교인만이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종교인이면 좀 더 용이하게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 병문안을 가면 난 아버지 손을 꼭 잡고 “아무 염려 마세요. 마음 편히 잡수시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세요”라고 말하지만 아버지가 그 뜻을 이해하실런지 잘 모르겠다. 노인이 병들어 정신이 혼미해지기 전에 내적 생활을 잘 영위할 수 있도록 자기만의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절실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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