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 일상 영상에 담아내다 친구 됐어요”
“어르신들 일상 영상에 담아내다 친구 됐어요”
  • 이상연 기자
  • 승인 2015.10.12 09:54
  • 호수 48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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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고 학생들, 스마트폰 다큐영화 제작
▲ 경기 시흥고 RCY 동아리 학생들이 스마트폰으로 마을 어르신들의 다큐영화를 제작해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은 학생과 어르신이 함께 영화제작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며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

35분짜리 영화에 4개 에피소드… 11월 학교축제 때 상영하기로
지난해 펴낸 어르신 자서전 ‘인생보따리’가 토대… 내년엔 사진전

고등학생들이 마을 어르신들을 주인공으로 한 스마트폰 다큐영화를 제작해 화제다. 주인공은 14명의 시흥고등학교 RCY(청소년적십자) 동아리 학생들. 올 여름동안 목감복지관 소속 어르신들과 1대1로 짝을 지어 직접 촬영한 영상들이 영화에 담겨 있다.
영화 제목은 ‘김 할머니와 고딩 김 감독의 마을은 영화다’이다. 어르신들을 ‘김 할머니’, 학생들은 ‘김 감독’으로 통칭한 제목이다. 어르신들은 배우, 학생들은 감독이 된 셈이다. 영상 촬영법은 전문 감독으로부터 지도 받았다.
35분 길이의 영화는 총 4개의 에피소드(토막 이야기)로 구성됐다.
첫 번째 에피소드 ‘어르신들의 하루는 어떤가요?’에는 여름을 나는 어르신들의 일상이 나온다. 두 번째 ‘짝궁아, 산책가자’에는 어르신과 학생이 함께 관내 명소로 나들이를 떠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세 번째 ‘두런두런 어르신 이야기’에서는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보는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다. 마지막 에피소드에는 어르신들의 영상을 촬영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지난 9월 24일에는 목감복지관에서 영화 시사회가 열리기도 했다.
영화는 지난해 10월 제작된 어르신들의 자서전 ‘인생보따리’의 내용이 토대가 됐다. 이는 목감복지관이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해당 자서전 제작에도 시흥고 학생들이 참여했다. 이번 다큐영화 제작은 자서전 프로그램의 연장선이었다.
영화 제작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프로그램 시간이 아닌 경우에도 학생들과 어르신들은 간헐적으로 만나며 친밀감을 가졌다. 한 학생의 경우 복지관과 집의 거리가 먼 어르신의 편의를 위해 차량지원을 요청할 정도로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초기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어려움이 발생하기도 했다. 다큐영화 제작에 참여한 학생들은 대부분 자서전 제작에 참여하지 않은 탓에 어르신들과 친분이 없어 수줍음을 많이 탔다는 후문이다.
정예은 목감복지관 사회복지사는 “처음엔 학생들이 수줍음이 많아 난감했지만 몇 차례의 만남 후엔 서로 안부를 묻고,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며 “영상을 촬영할 당시에는 오히려 학생들이 어르신들에게 먼저 다가갔다”고 설명했다.

▲ 프로그램 종료 후 실시된 기념사진 촬영에서 어르신들과 학생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조준우 기자

지난 10월 7일 목감복지관에 영화의 ‘배우’와 ‘감독’들이 한데 모였다. 영화제작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는 자리였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배우’들은 모두 홀몸어르신들이다. 관절염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경우가 많아 타인과의 만남이 쉽지 않다. 이런 가운데 만나게 된 손자뻘 ‘감독’들은 더없이 반가운 존재이다.
김순복 어르신과 짝궁인 박준성 군이 안부 인사를 나눴다. 평소 수줍음이 많던 박 군과 김 어르신은 친해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다. 프로그램이 끝나가는 요즘에서야 겨우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됐다. “준성아, 우리 집에 꼭 한번 놀러오렴.” 김 어르신의 요청에 박 군은 “예, 꼭 찾아뵐게요”라며 활짝 웃었다.
박영순 어르신은 집 근처 교통이 불편해 한 시간을 걸어 복지관을 찾았다. 이런 수고를 감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최혜인 양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박 어르신이 올 여름동안 잃어버린 부친의 산소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그만 병이 나버렸다. 그 때문에 영화 촬영을 위한 만남도 단 한차례밖에 가지지 못했다. 대신 박 어르신의 사정을 알게 된 최 양은 수시로 안부를 물으며 위로를 해줬다.
박 어르신의 휴대전화엔 최 양과 찍은 사진이 가득했다. 이날도 두 사람은 어깨동무를 하고 다정하게 사진을 찍었다. 또 한 장의 ‘추억’이 저장됐다.
반가운 인사 후 그간의 일을 회상하며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진행됐다. 어르신들은 짝꿍과 함께 하트, 카메라, 서로의 얼굴 등을 그렸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인연을 이어갈 것을 다짐했다.
정예은 복지사는 “이 프로그램으로 어르신들과 학생들의 인연은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진행된 자서전 프로그램은 어르신들의 ‘과거’, 다큐영화 제작 프로그램은 ‘현재’를 바라보기 위해 실시됐다. 내년엔 사진을 통해 어르신들의 ‘미래’를 상상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 프로그램 역시 시흥고 학생들과 함께한다.
류태현 시흥고 교사는 “우리 학생들과 어르신들과의 만남이 사회에 1·3세대 화합을 위한 좋은 사례를 제시했다고 본다”며 “오는 11월 20일 열리는 학교 축제에서 학생들이 제작한 영화를 상영할 예정인데, 이날 어르신들을 초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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