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부부 풍속도, 예와 지금
신혼부부 풍속도, 예와 지금
  • 이동순 영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15.11.13 11:11
  • 호수 49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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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께서는 아득히 흘러간 시절, 앳된 신혼부부였던 가슴 설레는 청춘의 추억이 있으시지요? 그 시절 그 광경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장면들이 하나둘이 아닐 것입니다. 마치 흑백사진 앨범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아련한 실루엣들도 많을 테지요. 돌이켜 보노라면 참 아름답고도 눈물겨운 시절이었습니다. 이제 그 과거의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가서 다시는 우리 앞에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1960년대는 일반서민의 가정에서 대개 구식결혼을 했습니다. 족두리를 머리에 얹은 새 신부와 사모관대를 늠름하게 차려입은 신랑의 모습, 그리고 초례청의 정겨운 광경들이 떠오릅니다.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예식장으로 장소가 바뀌게 되고, 드레스와 양복을 갖춰 입은 서양식 결혼풍습들이 일반화됐던 것 같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 큰 누님이 구식결혼으로 집 마당에서 초례를 올린 날 저녁, 자형이 처가 쪽 친척 되는 청장년들에게 강제로 끌려나와 거꾸로 매달린 채 발바닥을 마른 북어로 사정없이 두들겨 맞던 광경이 떠오릅니다. 고분고분한 남편을 만든다는 것이 매질의 취지라고 했는데, 비명을 지르던 자형의 모습을 보는 저의 가슴은 너무도 애가 탔습니다.
이제 이런 야릇한 풍습은 사라지고 없습니다만 예식장에서는 아직도 이따금 신랑친구들이 결혼하는 주인공을 야만적이고 가혹하게 다뤄서 하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이런 구태를 보노라면 과거의 괴기적 잔재는 아직도 여전히 남아있는 듯합니다.
오늘은 1930년대 일제식민지 후반기의 신혼부부 풍속도를 소상하게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노래 하나를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1938년 3월, 서울의 리갈레코드사에서는 고마부 작사, 유일 작곡으로 ‘미스 리갈’이란 예명을 갖고 있던 가수 장옥조가 ‘신접살이 풍경’이란 노래를 취입 발표했습니다. 전체 3절 구성으로 펼쳐지는 이 노래는 신혼부부 중 새댁의 불만과 앙탈, 투정의 화법으로 전개됩니다.
오늘은 일찍 오마 약속하시고/ 자정이 지나 한시 반인데/ 왜 인제 오세요/ 내일도 그렇게 늦게 오시면 싫어요/ 네 꼭 일찍 와요 네/ 얼른 오세요 네/ 회사에 취직할 때 월급을 타면/ 핸드백하고 파라솔하고 사주마 했지요/ 가을이 다 가도 안 사주시면 몰라요/ 네 꼭 사주세요 네/ 사다 주세요 네/ 가을에 황국단풍 곱게 물들면/ 석왕사 들러 금강산 구경 가자고 했지요/ 거짓말 하고서 안 가신다면 안되요/ 네 꼭 가주세요 네/ 같이 가세요 네
시적 화자는 신혼의 아내인데 서방님은 늘 바깥으로만 맴돕니다. 퇴근 후 일찍 귀가하지 않고 자정이 지나도록 친구나 직장동료들과 어울려 밤거리술집을 전전하고 있네요. 결혼 초에는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이것저것 원하는 것 모두 사 주겠다고 큰소리쳤는데 정작 세월이 지나자 그 약속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네요. 아마도 이것은 세상의 모든 부부들이 겪는 일상적 갈등이 아닐까 합니다.
아내는 남편의 이런 무심함에 대해 몹시 서운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서방님께 화를 내거나 거칠게 앙탈을 부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양과 애교 섞인 귀여운 말투로 콧소리까지 섞어서 간절하게 호소합니다. ‘꼭’이라든가 ‘네’라는 대목에서 그러한 사랑의 애틋함이 곡진하게 느껴집니다. 이 부분의 섬세한 감정표현은 오로지 ‘미스 리갈’ 장옥조만이 능숙하게 해낼 수 있다는 세간의 평을 받았습니다.
가수 장옥조는 1935년 10월 ‘울어도 울어도’(유영일 작사, 강구야시 작곡)를 발표하면서 리갈레코드사 전속가수가 됐습니다. 이때 나이가 18세 무렵이었는데, 장옥조는 대구에서 출생했고, 태어난 해는 1917년 전후로 추정됩니다. 부친을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했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력은 보통학교를 겨우 마쳤고, 졸업 후에는 여러 해 동안 상점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점원으로 일했습니다.
가게에서 일을 하면서도 틈만 나면 줄곧 노래를 불렀습니다. 참으로 우연한 기회에 그 상점에 들렀던 서울 콜럼비아레코드사 직원의 눈에 띄게 됐고, 그로부터 얼마 뒤 가요계에 정식으로 발탁이 된 것입니다. 리갈의 전속으로 활동할 때 회사에서는 장옥조의 눈을 안대로 가리고 안대 위에는 ‘미스 리갈’이라고 써서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시켰습니다. 일종의 상업적인 판매 전략이었는데, 이게 제대로 먹혀든 것입니다. 대중들은 미스 리갈의 안대를 벗기라고 레코드사에 항의전화를 걸며 소동을 부렸습니다. 마침내 회사에서는 안대를 풀게 하고 본명 장옥조를 밝히도록 했습니다.
노래 ‘신접살이 풍경’ 이후로 무려 80년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이 노래의 가사를 찬찬히 음미하시면서 옛날과 오늘의 신혼부부 풍속도는 서로 어떻게 동일하고 또 바뀌어졌는지 한번 비교해보고 생각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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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희태 2015-11-14 16:40:47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동순 교수, 나의 벗!
당신은 우리들 역사와 추억의 寶庫, 시간 여행선의 선장입니다.
감동스러운 이야기, 따뜻하고 품위 있는 어휘,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