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현 고양시 일산동구지회장 “노인에겐 돈보다 콩나물공장 차려주는 게 나아요”
정순현 고양시 일산동구지회장 “노인에겐 돈보다 콩나물공장 차려주는 게 나아요”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5.11.13 11:21
  • 호수 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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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현 대한노인회 고양시 일산동구지회장

인천방송국 운영, 모금회 10년 경력… 지회 후원금 모금에 도움 줘

대한노인회 245명 지회장 가운데 산수(80세)를 넘긴 지회장이 100명이다. 정순현(84) 고양시일산동구지회장도 그 중 한명이다. 정 지회장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매일 오전 9시 출근해 지역의 146개 경로당을 점검·관리한다.
예비역 대령인 정 지회장은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 북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6·25 전쟁 당시 월남해 소위 계급장을 달고 강원도 금화의 저격능선 등지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적을 물리쳐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30년 군 생활을 마친 후 인천방송국(ICN)을 10여년 운영하며 동시에 인천사회복지협의회 부회장, 인천공동모금회 부회장 등을 지냈다.
1994년 인천에서 일산으로 터전을 옮기면서 노인회와 인연을 맺었다. 일산 코오롱레이크폴리스2차 경로당 회장에 이어 지난 2월, 지회장 선거에서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다. 지난 11월 초, 일산 주엽역 부근 노인복지관 1층에 있는 지회장실에서 정 지회장과 마주 앉았다.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구국기도회에서 뵀다.
“우리 지회 경로부장이 목사예요. 저 역시 독실한 기독교신자라 같이 간 거지요. 목사님들이 성경 말씀만 하지 않고 나라 걱정도 많이 하고 해서 새삼 느낀 점이 많았어요.”
-동구지회는 신앙사업이 잘 되고 있는지.
“근처에 제가 다니는 승리교회가 있어요. 신도 수가 3000여명 되는 큰 교회인데 거기부터 결연을 맺고 회원들에게 신앙생활을 권유하려고 합니다.”
-실향민으로서 이번 이산가족상봉을 바라보는 심경이 남달랐을 텐데.
“부모님은 100세를 넘겨 이미 돌아가셨고, 누님이 한 분 계셨지만 매형과 함께 끌려갔다고 하니까 생존 가능성은 거의 없지요. 한때는 가족을 만나고 싶었지만 이제는 담담해요.”
-고향이 그립지 않나.
“은율은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마을이에요. 어릴 적 두엄 속에 홍어를 넣어 삭혀 먹던 기억이 나요. 6·25 때 고향 찾아갈 생각으로 정신없이 싸웠는데….”
-월남한 계기는.
“우리 집이 ‘이병철’ 이상 가는 부자였어요. 과수원 1만평에다가 군량미를 도정하는 정미소를 운영했거든요. 1년에 도정하고 남은 싸라기만 13가마가 나왔을 정도예요. 졸업하는 학생들을 전쟁터로 끌고 가려는 북한군 트럭을 보고 친구 둘과 마을 뒤 구월산에 숨어 있다 인천상륙작전 직후 올라온 미군과 함께 남으로 왔어요.”
-‘역사교과서 논란’을 보는 심경은 어떤가.
“말도 못하죠. 화가 나고 침을 뱉고 싶은 심정이에요. 제가 북에서 볼세비키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에요. 레닌·스탈린 같은 인물들도 배워서 잘 알지요. 700쪽 되는 역사책을 외지 못하면 졸업하기 힘들었으니까요. 어느 목사님이 그러대요. 좌편향 교수들이 검인정을 고집하는 건 거액의 저작권료를 잃지 않으려는 욕심 때문이라고요.”
-동구지회의 노인들 생활 수준이 어떤가.
“일산 동구의 전체 노인 수는 2만6000여명이고 회원은 7000명이 조금 넘어요. 안산의 지회장이 ‘지회 운영이 힘들지 않느냐’ 걱정도 해주더라고요. 동구지회에는 박사, 교수, 장군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많이 살아요. 그분들에게 경로당에 나오라고 하면 ‘내가 왜 거길 나가느냐’고 반문해요. 그러면 제가 ‘당신 혼자 사는가. 어려운 노인을 도와줄 생각을 털끝만치도 안하느냐’고 면박을 주곤 해요.”
-열악한 환경보다는 낫지 않은가.
“나름의 고민도 있어요. 우리 지역엔 기초연금 수급자도 거의 없어요. 재능나눔활동사업이나 일자리사업도 대상을 찾기 힘들 정도예요. 우리 같은 지회만 있으면 노인회 사업하기 힘들 겁니다. 제가 하려는 사업 중 하나가 독거노인 10명을 발굴해 자체적으로 지원하려는 겁니다.”
-노인복지에 대한 철학이라면.
“현재 노인들이 하루 세끼 먹는 문제는 어느 정도 국가가 지원해줍니다. 노인지도자들에겐 교육이 필요해요. 선진국 견학도 그 중 하나이지요. 저는 지역 내 업체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거기서 지원을 받아 교육을 시키려고 해요.”
-구체적으로 어떤 교육인가.
“일본은 노인복지가 잘 돼 있어요. 멀리 유럽 갈 필요가 없어요. 호주에도 가봤지만 여행비만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노인에게는 돈보다 자립이 필요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일본은 국가에서 콩나물·두부·자동차부품 등의 공장을 만들어 거기서 일하게 합니다. 그 나라는 또, 도쿄·오사카 등 3곳에 노인병원을 세워 거기서 모든 치료를 무료로 해줍니다. 우리나라 세브란스병원 같은 대형병원에서 말이지요. 유럽에도 그런 시설은 없어요.”
-모금 경력이 지회 운영에 도움이 되겠다.
“방송국 경영하며 모금회 부회장을 하면서 어디에서 돈이 나올 수 있는지 조금 알지요. 남동공단에는 기업이 많아 후원금 얻기가 수월했어요. 동구에는 기업 대신 백화점·이마트 등 유통회사들이 있어요. 그들에게 노인을 위해 돈 좀 쓰라고 해야겠지요.”
-대한노인회 발전과 관련 제언한다면.
“노인복지청이 조속히 설립돼 노인복지 창구가 일원화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예산 낭비가 줄고 집행도 쉬워집니다. 670만 노인 시대에 그에 걸맞은 청이 하나 있어야 노인들의 사기도 오르고요.”
-바로 옆이 호수공원… 최적의 환경이다.
“노인에게 이렇게 좋은 환경이 또 있을까 싶어요. 저는 매일 아침 호수공원에 나가 1시간씩 산책을 해요. 그때마다 정말 좋은 곳이라고 속으로 감탄합니다. 제가 당뇨병 없고 눈·귀·다리·허리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는 건 20년째 호수공원을 걸은 덕분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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