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기찬노년]“간병인 같은 실버커플이 좋아요”
[활기찬노년]“간병인 같은 실버커플이 좋아요”
  • 이미정
  • 승인 2007.06.16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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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부부는 어떤 사이인가요?

△적과 같은 부부


예순 아홉의 동갑내기 부부인 강모 할아버지와 한모 할머니는 호적상으로는 혼인한지 40여년이 넘었지만, 따로 산지는 7년째가 된다. 한할머니는 서울 상계동의 둘째 딸네 집에서 손녀를 돌보며 살고 강할아버지는 시골로 내려가 친구부부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산다.


노부부가 헤어져 살게 된 데는 젊은 시절 강할아버지의 바람기가 한 몫을 한다. 습관처럼 이어지는 배우자의 외도로 가슴에 멍이 든 한할머니는 “막내만 결혼시키면 원수같은 남편과 절대로 같이 살지 않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리고 7년 전 막내아들이 결혼하자 맞벌이하는 둘째 딸의 육아를 돕겠다는 이유를 들어 적과 같은 남편으로부터 탈출을 했다. 빈집에서 혼자 살던 강할아버지는 고적감을 달래기 위해 고향친구를 찾았고 그곳에서 방 한 칸을 빌려 살고 있다.


일 년에 두세 번 제사나 생일 같은 집안 행사가 있으면 큰 아들네를 가서 노부부는 잠시 해후를 한다. 하지만 원체 한할머니 가슴에 쌓인 회한이 깊어 노부부는 한 방에서도 등을 돌리고 앉아 있다.


△이방인 같은 부부


광명시의 한 연립주택 거실. 예순 중반의 할머니 서넛이 부추 빈대떡을 해서 나눠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복지관에서 단체로 영화 ‘마파도’를 관람하고 돌아와 출출해진 속을 빈대떡으로 달래고 있다. 집 주인인 양할머니가 마산 댁 김형자를 흉내 내자 좌중엔 한바탕 웃음이 출렁인다.


그때 안방 문이 살짝 열리며 박할아버지의 모습이 드러난다. 박할아버지는 왁자지껄한 거실 풍경과는 사뭇 거리를 둔 자세로 주방으로 나와 냉장고에서 물을 한잔 따라 컵에 담아들고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그 사이 거실에 있는 양할머니와 잠시 시선이 마주쳤으나 두 사람은 아는 체를 하지 않는다.


한 집에서 노부부가 함께 생활하고 있지만, 두 사람은 각자의 사생활을 즐길 뿐이다. 박할아버지, 양할머니 부부가 이방인처럼 산지는 꽤 오래 됐다. 마주대하면 의견 불일치로 낯을 붉혔던 두 사람은 언제부터인가 말을 하지 않게 되었고 그 습관이 굳어져 검은 머리가 파뿌리처럼 희어진 노년에도 데면데면하게 산다.


어떤 때는 ‘길가다 만나는, 모르는 사람과도 친절하게 말을 건네는데 왜 해로한 부부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갑자기 화해를 하자니 그것도 낯설어 습관대로 그냥 그렇게 살고 있다.


미네소타 주립 대학의 교수이며 유명한 작가인 로버트 L. 베닝가는 ‘아름다운 실버’라는 책에서 노년기에 새롭게 만들어가야 하는 관계들을 이야기하며 ‘당신 부부는 어떤 사이인가’를 묻는다.


그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면 그 누구라도 노화로 인한 질병을 피해갈 수 없다며 “늙으면 서로 간병인 같은 부부로 불편한 점을 도우며 살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친구 같은 부부, 애인 같은 부부라면 늙어감의 변수를 포함시켜 간병인 같은 부부로 살아가는 것이 어렵지 않겠지만, 적과 같은 부부, 이방인 같은 부부라면 갈등의 뿌리가 깊어 간병인 같은 부부의 모습을 기대하기 힘들다.


따라서 프리랜서 사회복지사이며 노인문제전문가로 활동하는 유 경씨는 “만일 적과 같은 부부, 이방인 같은 부부에 해당된다면 하루라도 빨리 해묵은 갈등을 해소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여러 가지 질병과 장애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은데 실질적인 간병이나 정서적인 지지에 있어 가장 도움을 줄 수 있는 누군가의 1순위는 바로 배우자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장옥경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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