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호모 헌드레드’의 삶
행복한 ‘호모 헌드레드’의 삶
  • 신은경
  • 승인 2015.11.27 11:22
  • 호수 4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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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맞는 노인에
순 은잔 선물해오던 일본
대상자 190배 늘자 고심

‘호모 헌드레드’의 삶은
건강하고 기쁘게 지낼 때 의미

백세시대 신문에 기사나 칼럼을 쓰는 분들은 대부분 노인문제에 전문가들로 이 분야에 높은 식견을 가지고 글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경우가 좀 다르다. 비록 노인문제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곳에 칼럼을 쓰다 보니 들리는 것, 보이는 것이 이 주제와 관련된 것이고, 이전보다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100세까지 장수하는 것이 보편화된 이 시대의 인간을 지칭하는 용어로 ‘호모 헌드레드’ (homo-hundred)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실버세대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데, 특히 일본의 노인 숫자는 전체 인구의 35% 정도를 차지하고 있어 OECD 국가 중 기대수명이 가장 높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사회의 여러 가지 면에서 일본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10년 후 한국에서 그대로 생겨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작년까지 100세를 맞는 노인에게 은으로 만든 ‘사카즈키’라는 이름의 일본 전통술잔을 나라에서 선물했다. 잔 안쪽에는 축복과 장수를 의미하는 ‘고코부키’(壽)라는 한자가 새겨 있다. 모두 99.9% 순은으로 만든 잔이라고 한다.
그러나 최근 일본은 이 선물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1963년에 처음 이 제도를 시행할 때만 해도 100세 노인이 153명이었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 100세를 맞는 인구가 190배가 늘어 매년 3만 명 가까운 100세 노인이 나오고 있어서다. 제도 초기에는 약 7만원 단가의 이 선물을 나라에서 준비하는 것쯤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순 은잔을 만드는데 예산만 25억 원 정도가 들게 됐다.
일본은 고심 끝에 위원회를 결성해 의논한 결과, 제도를 없애자는 의견과 그랬다간 너무 섭섭하지 않겠느냐는 의견, 그렇다면 꼭 순 은이 아니면 어떻겠느냐, 안에는 구리·니켈·아연을 섞어 만들고 겉에만 은 도금을 하는 방안 등의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어떤 결정이든 올 해 안으로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하니 두고 볼 일이다.
순 은잔을 받든, 도금 은잔을 받든 100세를 잘 살아온 노인에게 나라가 인정하고 알아준다는 뜻이니 참 반가운 것은 분명하다. 일본에는 워낙 고령자가 많다보니, 100세에도 여전히 직장에 출근하는 샐러리맨, 강연하고 진료하는 의사선생님, 책을 내고 글을 쓰는 작가들도 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60세 이상의 노인만 고용하는 회사가 있어 칭찬을 받기도 한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나면 영원한 하늘나라가 있지만,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참으로 가치 있고 기쁜 날들이어야 그 의미가 있지 않을까? ‘호모 헌드레드’는 건강하게 오래도록 기쁨을 누리고 살 때에 그 가치가 빛나는 것이라 하겠다.
노인 나이의 정의를 65세에서 75세로 연장하자는 신노인 운동을 펼치기도 했던 히노하라 시게아키 박사의 주장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맞는 이야기이다. 요즘 누가 60세 환갑잔치를 하며, 청년 같은 70대도 곳곳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도 100세가 된 노인에게는 대통령이 ‘청려장’이라는 이름의 명아주로 만든 장수 지팡이를 준다고 한다. 우리도 10년 후쯤 이 장수 지팡이 만드는 예산이 너무 많다고 논의를 해야 하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노인이라 칭하는 나이가 몇 살이어야 하는지는 벌써부터 논란이 많다. 몇 살을 노인이라 할지, 100세 노인에게 무슨 선물을 줘야 할지도 중요하겠지만 건강하고 행복하게 존중받으며 살아갈 ‘호모 헌드레드’의 삶은 과연 어떤 것이고, 그 삶을 나라가 어떻게 만들어 줘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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