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꿈
노인의 꿈
  • 이호선
  • 승인 2015.12.11 10:52
  • 호수 4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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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자매로 활동하던 가수 인순이는 솔로로 전향한 이후 ‘밤이면 밤마다’를 히트시켰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곡 이후 인순이는 부진에 부진을 기록했다. 몇 차례 트로트 앨범을 내긴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던 중 이적이라는 가수가 불렀던 ‘거위의 꿈’을 그녀의 방식으로 다시 불러 사람들의 마음의 방향을 열어주며 다시 재기했다.
거위의 꿈 가사는 이렇다.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그래요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수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
머리가 희어지는 사람들에게 꿈을 물어본 적이 있는가? 아니 거울 속에 서 있는 중년을 훌쩍 넘긴 자신에게 꿈을 물어본 적이 있는가? 살아가면서 “넌 꿈이 뭐니?”라는 질문이나 ‘장래희망’란을 채우던 일이 늘 고역이었는데, 어느덧 시간은 흐르고 세월은 지나 백발이 머리에 내려앉고는 이내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도 없고 장래희망이란 이미 다른 세대에게 해야 할 질문이 되어버렸다. 정말 노인은 꿈이 없나? 늙으면 꿈이 없나?
사실 노인은 젊은이에 비해서 꿈을 덜 꾸긴 한다. 수면과학 측면에서 보면 노인은 꿈을 꾸는 시간인 렘(REM) 수면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꿈을 꾸지 않는 건 아니다. 물론 수면을 취할 때 꿈을 덜 꾸듯 미래를 향한 꿈도 젊은이들처럼 많지는 않다. 노인이 꿈을 꾼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늙어서 꿈을 꾸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면 같은 노인들은 혀를 차고, 젊은이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식들은 있는 힘을 다해 말린다. ‘위험하다’, ‘죽을 수도 있다’, ‘의미 없다’,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 등등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늙어서 꿈을 이루는 일은 젊어서보다 훨씬 힘들다.
젊은이들에게는 ‘왜 꿈이 없느냐’, ‘꿈을 가져라’, ‘꿈을 성취해라’, ‘꿈이 미래’라고 말한다. 젊은이들에게 꿈은 가져야하고 성취해야 하는 의무사항이며, 혹여 성취하지 못하면 아쉬움과 걱정의 주제가 된다. 반면 노인이 꿈을 꾸면 ‘그 나이에 무슨 짓이냐’, ‘다 소용없다’, ‘괜한 일로 자식들 피곤하게하지 말라’, ‘노망이 났느냐’ 등 질타가 쏟아진다.
노인이 꿈을 꾸는 건 마치 노예가 투표권을 갖는 것인 양, 여성이 교육의 기회를 갖는 일인 양 금지된 일이다. 운전을 하겠다하면 살인행위라며 당장 운전대를 놓으라하고, 산악여행을 다녀오겠다면 온천이나 다녀오라고 한다. 노인의 꿈과 그 내용에는 안중에도 없고 왜 가고 싶은지, 왜 하고 싶은지 물어보지도 않는다.
이제 우리끼리라도 물어보자. 당신의 꿈은 무엇인지 물어보자. 내 아내의 꿈이 무엇인지, 내 남편의 꿈이 무엇인지 물어보자. 같이 늙어가는 내 동생의 꿈을 물어보자. 병상에 누워 한발 띄기가 어려운 김 영감님에게도 물어보자. 오랜 시간 누구도 하지 않은 질문이라 잠시 머뭇거릴 것이다.
한 번 더 물어보자. 다른 꿈이 나올 것이다. 낡고 이 빠진 그릇을 찬장에서 꺼내듯 유물 같은 꿈을 꺼낼 것이다. 꺼내놓은 꿈은 입을 통과하며 곧 노래가 될 것이다. 재기의 가수 인순이에게 그렇듯 이제 노인들의 꿈은 노인들의 재기의 노래가 될 것이다. 이제 불러보자.
“노인에게도 꿈이 있어요.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혹 때론 누군가가 뜻 모를 비웃음 내 등 뒤에 흘릴 때에도 난 참아야 했죠. 늘 걱정하듯 말하죠. 헛된 꿈은 독이라고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고. 그러나 노인에게는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고 지켜봐주길 바라요. 등 굽은 노인이 저 차갑게 서있는 노화라는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치고 그 벽을 넘고 저 하늘을 높이 나르는 것을 보길 바라요. 이 무거운 세상도 노인의 꿈을 묶을 수 없죠. 삶의 끝에서 꿈꾸는 노인은 가장 환하게 웃을 것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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