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여유 없어 무대 찾지 못했던 노인들 위해 공연장 문턱 낮췄어요”
“젊은 시절 여유 없어 무대 찾지 못했던 노인들 위해 공연장 문턱 낮췄어요”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5.12.11 10:59
  • 호수 4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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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사장 고학찬

15년 미국생활… 바텐더 등 25개 직업 경험, 패션쪽에서 돈 벌어
70세 노인 40% 할인해주는 ‘노블회원제’… 온천 가던 발길 돌려

고학찬(68) ‘예술의전당’ 사장의 머릿속은 기발한 발상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노인들에게 문화 혜택을 주기 위해 ‘노블회원제’를 시작했고, 노인들도 멋진 옷을 입어야 한다며 시니어 패션쇼를 열었고, 최초로 영어 서예를 선보였다. 3년여 임기를 채우고 내년 3월 퇴임하는 고 사장을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만나 문화융성에 기울인 노력과 사연 많은 삶을 들었다.
-노블회원제를 소개한다면.
“저도 낼 모레 칠십이에요. 노년을 말 그대로 고상하고 우아하게 보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미국의 링컨센터 같은 곳에는 노인들이 많아요. 미국 노인들은 매일 베토벤·피카소를 만나지만 우리나라 노인들은 그러지를 못해요. 젊었을 적 일만 하느라 그런 곳에 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세대지요. 지하철 타고 온천에나 가고 파고다공원만 찾을 수만은 없지 않겠어요. 그분들에게 문화생활을 누릴 기회를 드리자는 마음에서 시작한 겁니다.”
-어떤 혜택이 있나.
“예술의전당 회원가입엔 회비가 있어요. 하지만 노블회원은 무료입니다. 70세 이상이면 누구나 가능해요. 과거에 어떤 직책에 계셨든, 돈이 많던 적던 묻지 않아요. 오페라 한편에 20만원,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의 경우 30만원씩 합니다. 노블회원에게 40%를 할인해드리지요. 그거 상당한 겁니다.”
예술의전당은 인문학·서예반 등 지역의 노인을 위한 아카데미를 열고 있다. 노블회원은 아카데미의 수강료도 30%의 할인 혜택을 받는다. 현재 노블회원은 약 4000명. 학교 다닐 때 음악과 연극·그림 등에 관심을 가졌던 많은 회원들이 이 ‘특별한 우대’를 활용하고 있다.
-시니어 패션쇼를 처음 선보였다고.
“제가 미국에서 패션 쪽으로 돈도 좀 벌었고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아요. 이제는 노인들도 멋 좀 부리고 살아야 해요. 백화점에 노인 옷을 파는 곳이 없어요. 젊은이들 옷은 사이즈가 안 맞아 입지를 못해요. 노인 체형에 맞는 멋진 옷들이 백화점에 걸리는 날이 오도록 쇼를 한 겁니다. 두고 보세요. 앞으로 그 분야는 ‘블루오션’(경쟁자가 없는 유망한 사업)이 될 겁니다.”

▲ 5월 9일, 시니어 패션쇼에 사회 유명인사들이 모델로 나섰다. 오른쪽부터 이동관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총장, 이 심 대한노인회장, 고학찬 사장.

지난 5월 9일, 예술의전당 신세계스퀘어 야외무대에서 고 사장을 비롯 이 심 대한노인회 회장, 이동관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총장, 이참 전 한국관광공사 사장, 탤런트 노주현·이정길 등 사회 유명 인사들이 화려한 색상의 자켓과 통 좁은 바지에 머플러와 모자를 쓰고 런웨이를 걸어 화제가 됐다.
-영어 서예 얘기는 또 무언가.
“제가 여기 와서 보니 서예박물관이 제일 한적하고 사람들 발길이 뜸해요. 젊은층은 안보이고 오로지 노인들만 조용히 다니세요. 그분들이 돌아가시면 1600년 된 문화자산이 우리도 모르게 사라질 겁니다. 서예를 부흥하려는 의도에서 서예박물관 리노베이션에 들어갔어요. 정부로부터 100억원을 지원 받았지만 우리도 건축비를 보태기 위해 기금 마련 전시회를 열었고 거기에 영어 서예를 낸 겁니다.”
-왜 영어였나.
“젊은 사람들이 서예에 관심이 없는 건 한자의 뜻을 몰라서예요. 영어는 다들 아니까 쉽게 접근할 수가 있지요. 원래 서예가 한자만이었다가 나중에 한글 서예가 나왔듯이 영어 시대에 영어 서예도 있는 게 당연하다고 봅니다.”
-무슨 말을 썼나.
“‘비긴 어게인’(Begin Again·다시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이라고 작년에 히트한 미국 영화 제목이에요. 내용이 저하고 딱 맞아요. 잘 나가던 PD가 실패해 좌절하다 우연히 만난 여성의 노래에 감동받아 그 여자와 거리 공연을 하는…. 어느 분이 500만원에 사가셨어요.”

제주 출신의 고학찬 사장은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TBC 동양방송 PD로 입사했다. 국내 최초로 SF 드라마 ‘손오공’을 제작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80년 언론통폐합 직후 방송국을 나와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뉴욕에서 15년여 방송활동과 사업을 하다 정리하고 귀국해 서울예대·추계예대 등 강단에 섰다. ‘윤당아트홀’ 관장(2009년)에 이어 2013년부터 예술의전당을 이끌고 있다.
-연영과 출신 PD는 생소하다.
“TBC PD 시험 볼 때 이병철 회장(1910~1987년)이 면접을 봤어요. 이 회장도 그 점을 신기하게 여기며 저에게 ‘잘 하는 게 뭐냐’고 물어요. ‘노래를 좀 한다’고 대답했더니 ‘불러보라’고 해 그 자리에 서서 ‘선구자’를 불렀어요. ‘일송정 푸른 물에~’까지 부르자 ‘됐다’고 나가라고 해 떨어진 줄 알았어요.”
-어머니 앞에서도 노래를 불렀다고.
“미국에 있다가 잠시 한국에 들렀을 때(1990년) 당시 84세였던 어머니가 치매에 걸려 3대 독자인 저를 못 알아보는 겁니다. 사흘 동안 어머니와 지내면서 기억을 되살리려 재롱도 부리고 별짓 다했지만 헛일이었어요. 그러다 미국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날,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저도 모르게 제주도 민요 ‘이야옹타령’을 불렀더니 어머니가 ‘서귀포 해녀들~’하고 따라 부르며 제 손을 꽉 잡는 겁니다. 어머니가 평소 노래를 잘 하셨어요. 지금도 돌아가시기 전에 저를 알아보신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은 왜 갔는가.
“1980년 전두환 정권 하에 언론통폐합으로 동양방송이 없어지고 직원 대부분이 KBS로 갔어요. 방송할 때마다 서울 시청 지하에 있는 계엄사에 가 허가도장을 받아야만 했던 암울한 시절이었지요. 자유롭고 넓은 세상에서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 갔던 겁니다.”
-미국에서도 방송생활을 했다고.
“당시 뉴욕에는 일본·중국 두 나라의 라디오방송은 있었지만 한국교포를 위한 방송은 없었어요. 제가 뉴욕시장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했더니 그때까지 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는 겁니다. 뉴욕 시영방송(WNYE)을 통해 매일 12시부터 2시간 동안 우리말 방송을 내보냈어요.”
-운영 자금은 어디서 구했나.
“돈이 어디 있나요. 제 처가 아나운서 출신이에요. 덕분에 월급은 나갈 일이 없었지요. 딸 셋하고 단칸방에서 살았는데 그 방에서 전화 하나 가지고 한 겁니다.”
-어떤 내용이었나.
“교포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어요.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전화를 걸어와 ‘오늘 저녁 우리 식당에 웨이터가 못 나오니까 누구 좀 와서 도와주면 좋겠다’고 하면 바로 또 다른 사람이 전화를 걸어와 ‘마침 직장을 그만두었으니 가겠다’는 식이에요. 노래를 신청하면 레코드판을 틀어주기도 했어요.”
-미국에서 패션사업을 했다는데.
“백화점 쇼윈도 앞에서 뚱뚱한 여자가 멋진 옷을 입은 늘씬한 마네킹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걸 보고 뚱뚱한 사람들을 위한 옷을 만들어 팔았어요. 브롱크스·브루클린 등지에 그런 흑인여성들이 많았어요. 당시 안 해 본 일이 없어요. 식당 지배인·바텐더 등 25가지 직업을 거쳤어요.”
-그간 쌓은 업적이라면.
“예술의전당 높은 문턱을 낮추는 일을 했어요. 연간 230만명이었던 입장객 수를 300만명으로 늘렸어요. 지방에 계신 분들이 우리 공연장에 오려면 서울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하는 불편함을 호소해 어디서든 오페라를 볼 수 있도록 공연 콘텐츠를 영상화했어요. 오페라를 15대의 영화 카메라로 찍어 백령도의 군인이 배우들의 눈물방울까지 보게끔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문화예술 과외교사’였다고.
“박 대통령과는 오랜 인연을 맺고 있지만 그건 지나친 표현이에요. 박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 나설 무렵 박 대통령이 공부하던 문화 쪽 모임에 저도 끼었어요.”
-퇴임 후에는 무얼 할 생각인가.
“예술 계통은 정년도 없고 은퇴도 보통사람보다는 늦어요. 저는 예술가는 아니지만 할 일이 많아요. 제가 제주 출신이에요. 제주에 오는 외국 관광객들이 낮에는 관광지를 찾아다니지만 저녁엔 밥 먹고 갈 데가 없어요. 그들이 우리나라에 오기 전 ‘서울·제주에서 꼭 봐야할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일도 그 중 하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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