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편지]어떤 날의 지하철 안 풍경
[독자 편지]어떤 날의 지하철 안 풍경
  • 이미정
  • 승인 2007.06.25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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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필동(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어느 날 오후 지하철을 탔다. 아직 이른 러시아워였지만 빈자리는 없고 더러는 듬성듬성 서있는 승객도 있었다.


70대 후반이나 됐음직한 어르신 한 분이 지하철 안으로 들어와 앉을 자리를 찾느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아무도 선뜻 자리를 내 주지 않았다. 한참을 기웃거리던 어르신은 학생티를 갓 벗은 사회 초년생쯤으로 보이는 청년 앞에 서서 “어이, 젊은이 나 자리 좀 비켜줘!” 하는 것이었다.

 

느닷없는 요구에 그 청년은 멀뚱히 쳐다보았지만 쉽게 자리를 내 줄 기세는 아니었다.


“이봐, 젊은이! 좀 일어서! 이런… 젊은 사람이 나이 든 사람이 뭐라고 하면 듣는 척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니야. 안 들려!”


처음보다 말도 빨라지고 억양도 높아지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 청년은 뭐라고 대꾸를 하는 듯 하더니 시선도 피하며 아예 무시작전으로 버티는 것이었다. 그 작전에는 분위기로 보아 최소한 자율과 타율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 했다.

 

스스로 양보하는 것은 즐겁지만 윽박지르듯 하는 것은 아니라는 무언의 항변으로 보였다. 장유유서가 사회의 기본 강상(綱常)일 때는 몰라도 지금은 그게 아니기 때문이리라.


차내는 점점 붐비기 시작했으며 가벼운 소란을 일으켰던 두 승객은 어디서 어떻게 내렸는지 모르는 사이 또 어르신 한 분이 탔다. 그는 작정이나 한 듯 처음부터 모두 서 있는 승객 사이를 비집고 서 있었다. 자리에 앉았던 한 청년이 다가와 자기 자리에 앉으라고 권하는 것이었다.


그 노년은 정중히 사절하며, “아니오, 그냥 앉아 가시오. 우리는 이제 은퇴하고 그냥 소일만 하는 늙은이니 편하면 뭐하겠소. 앞으로 할 일이 많은 젊은이가 앉아야지…”하는 것이었다.

 

청년은 약간 머쓱한 표정이었지만 곧 밝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청년은 직장에서 갖고 온 듯한 서류뭉치가 손에 들려 있었고, 그 서류를 추스르며 다시 앉았던 자리로 돌아가려 했으나 그 자리는 이미 어느 날쌘 승객 차지가 돼 있었다.


지하철은 이런 일이 있었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승객들을 내리고 태우기를 반복하며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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