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 있는 노인의 삶이란 애국심을 갖고 사는 거예요”
“품격 있는 노인의 삶이란 애국심을 갖고 사는 거예요”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6.01.29 11:13
  • 호수 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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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이 시대 달변의 ‘정치논객’ 김동길(89) 연세대 명예교수가 최근 이런 말을 했다. “이 나라 노인들이 정당을 하나 조직해 앞으로 다가오는 태평양 새 시대의 주역이 될 한국인을 모아 정치적 세력이 되게 하고 큰일을 노인들이 앞장서서 하자”. 그는 이어 “그 당의 이름을 노인당이라고 하면 매력이 없으니까 ‘은빛당(실버파티·Silverparty)’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1월의 끄트머리, 서울 대신동에 위치한 ‘태평양시대위원회’에서 김 명예교수를 만나 이 말의 배경과 노인의 품격 있는 삶에 대해 들었다.

노인당 창당 제시… 사회에 큰 역할해온 대한노인회 보고 정치적 영향력 절감
‘나이듦이 고맙다’ 책 펴내… 젊은 시절 몰랐던 것 깨달아 감사하다는 의미

-노인의 정치 참여… 어떤 계기에서인가.
“대한노인회가 생긴 지는 오래 됐지만 그동안은 유명무실한 단체였어요. 그런데 이 심 회장이 와서 지난 몇 년 동안 노인사회에 큰 역할을 했어요. 그이가 무슨 발언을 하면 무게감이 있어요. ‘노인도 리더십이 있고,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구나’ 라는 가능성을 본 거지요.”
-‘은빛당’이 내세우는 정치적 신념이라면.
“백선엽 장군, 김남조 시인, 영화배우 신영균 등 80세가 넘은 분들만 모이는 ‘장수클럽’에서 김형석(96) 연세대 명예교수가 스스로 38선을 넘어 탈북 월남한 노인임을 밝히며 ‘우리에게 대한민국밖에 남은 것이 또 무엇인가, 이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 나라의 내일을 걱정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어요. 참석한 노인들이 다 같은 심정이지요. 정치는 특정인만이 하나요. 1만원씩 낼 수 있는 여력이 있는 노인 100만명이 모여 정당을 만들어 능력 있는 사람을 내세워 밀어주자는 겁니다.”
-대통령 후보도 나온다는 말인가.
“대통령도 낼 수 있지요. 우리나라 노인들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 전쟁을 겪고 경제 부흥을 일으켰어요. ‘한강의 기적’이라고 하지만 그게 어디 기적인가요. 눈물과 땀의 노력이지요. 그런 노인들이 대한민국을 지키자는 말이에요.”
-노인의 사회적 책임이기도 하다.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 수상(1923 ~2015)이 자기 동지들에게 ‘사회주의하면 더 가난해지니까 자본주의를 해 경쟁을 통해 잘 사는 복지국가를 만들겠다, 만약 나하고 뜻이 다르면 이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에 가서 살라’고 부탁했어요. 있으면서 방해하면 감옥에 넣겠다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지요. 우리보다 못사는 북한을 찬양하면서 우리나라를 헐뜯고 망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견딜 수가 없어요.”
-대통령 꿈을 버리지 않은 건 아닌지.
“1990년대 초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1915~2001)이 돈은 자기가 댈 테니 저보고 대통령 후보로 나가보라고 했어요. 원내교섭을 하려면 국회의원 20명이 돼야 하는데 정 회장의 통일국민당이 전국구 의원 등을 포함해 40명이 넘자 주변에서 정 회장을 가만히 두질 않았어요. ‘인기를 봐라, 왜 김 교수를 내보내려 하나, 직접 나서라’는 말을 곧이듣고는 저와의 약속을 깼어요. 전 정치 안 해요. 뒤에서 밀어주는 것만 하지요. 국가에 대한 ‘라스트 서비스’(마지막 봉사)를 할 겁니다.”
-차기 대통령 감으로는 누가 좋을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 그는 당수가 되고 나서 우리 집에서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 ‘저는 새누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기 위해 당 대표가 된 것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가 될 만한 인물을 찾아서 세우기 위해 당 대표가 됐습니다’는 말을 했어요. 자기 자신의 출세나 영달을 위해 뛰는 정치인을 누가 존경할까요. 그런 입장에서 볼 때 김무성이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김동길 교수는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나 연희대학교 영문과를 졸업, 미국 인디애나 주 에반스빌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보스톤대학교에서 링컨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교수, 부총장을 역임했고 제14대 국회의원, 신민당 대표최고위원을 지냈다. 사단법인 ‘태평양시대위원회’ 이사장으로 있으며 강연과 저술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링컨의 일생’, ‘한국청년에게 고함’ 등 80여권의 저서가 있다. 최근 펴낸 ‘나이듦이 고맙다’(두란노)가 노인들 사이에 많이 읽히고 있다.
-미수(88세)에 책을 냈다. 나이듦이 왜 고마운가.
“나이를 먹으면 젊었을 적 몰랐던 걸 깨닫게 돼요. 그런 게 고맙다는 뜻이지요.”
-어떤 것들을 깨닫나.
“공자 말씀에 나이 40은 불혹이고 50이면 지천명이라고 했어요.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하늘에서 불러 갈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아는 나이지요. 60은 ‘귀 이’자에 ‘순할 순’자를 씁니다. 젊었을 적에는 저 잘난 맛에 살지만 그 나이가 되면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뜻이에요. 공자는 73세까지 살아서 70까지만 말했는데 마지막이 가장 중요해요. 70이면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라,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
“유가의 5복이 뭔지 알지요? 첫째가 수, 천수를 누린다고, 둘째가 부, 재물이에요. 세 번째가 강녕, 건강한 몸과 마음의 평화입니다. 네 번째가 유호덕, 덕 있는 삶을 살며 남에게 존경 받는 인물이 되는 것이고 마지막이 고종명(考終命), 목숨이 끝나는 걸 생각한다는 겁니다. 느닷없이 죽음을 당하는 건 불행이라는 말이에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죽음은 인간을 종교적으로 만듭니다. 죽음이 없으면 종교도 없어요. 죽음을 경험한 이도, 아는 이도 없어요. 죽음을 이길 건 사랑밖에 없어요. 종교가 필요 없다는 사람은 사후에 갈 데가 없어요. 실존주의 철학으로 젊은이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가 죽기 직전 병실의 벽을 긁으며 ‘난 여기서 어디를 가나’ 그랬어요. 실존주의는 무신론이에요. 갈 데가 없는 겁니다.”
-각자의 인생에서 무엇을 남겨야 할까.
“바하나 베토벤 같은 음악가가 되어 음악을 후세에 남겨줄 수도 있고 고흐나 피카소 같은 화가가 돼 명작을 후세에 남길 수는 있지만 작곡가가 되고 화가가 되고 시인이 되는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다 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나요. 대학자, 대정치가도 특별한 DNA를 타고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참새가 황새처럼 걸으면 다리가 찢어진다는 속담이 있어요. 26년만 살고 피곤하고 병들어 세상을 떠난 영국시인 존 키이츠(John Keats)의 비명에 ‘자기 이름을 물 위에 적은 한 사나이, 여기 누워있다’고 썼어요. 우리가 남기고 갈 수 있는 것은 거짓 없는 하루하루를 살면서 이웃을 사랑하려고 힘쓰는 그런 평범한 삶밖에는 남기고 갈 것이 없다고 봐요.”
-품격 있는 노인의 삶은 어떤 건가.
“오늘 이 시대를 살면서 조국에 대한 애국심을 가져야 해요. 그런 정신 못가지면 쓸모가 없지요. 국제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에 희망을 안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아요. 미국에 붙을까, 중국에 붙을까 이따위 소리나 하고 있고…. 앞에서 언급한 ‘은빛당’에서 한국의 입장 등을 내놓고 그것에 대해 한국 사회 전체가 문제로 삼는 분위기가 돼야 합니다.”
-오늘날 노인의 존재감이 없다.
“고독하거나 생활이 어려운 이들이 많아요. ‘은빛당’이 정치적으로 그런 문제를 다루어야 해요. 노인이 노인답게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평생 독신이다.
“우리집에 위로 형님이 계셨는데 태평양전쟁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했어요. 그래 자연히 제가 외아들이 됐지요. 남자는 어머니에 대한 애착심이 있어요. 우리 어머니가 ‘너 장가 안가면 죽어도 눈을 못 감아’ 그랬으면 갔을 지도 모르지만 그런 말씀 한마디도 않고 ‘나도 손자 손녀 안아보고 싶지만 네 인생이니까 알아서 해라’ 그러셨어요. 연세대에 나갈 때 박정희 대통령 비판하면 바로 정보부에 끌려갔어요. 장준하(전 국회의원·1918~1975)하고 가깝게 지냈어요. 그이가 끌려가서는 가족 걱정을 많이 했어요. 저는 부양가족이 없으니까 내 걱정만 하면 돼요. 한 시대 살면서 독신은 나의 초이스(선택)예요.”
-평생 좋아했던 여자는 있었는지.
“좋아하는 여자가 왜 없었겠나요. 누구와 가깝다고 하는 건 자기 삶을 영위하고 있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요.”
-저서 ‘나이듦…’을 보면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소중한 듯한데.
“우리 어머니가 제게 쏟아준 사랑이 세월이 갈수록 제 가슴에서 더욱 빛을 발휘하곤 해요. 어머니는 삯바느질, 떡장수, 하숙 치는 일 등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형제는 물론 누님(김옥길 전 이화여대 총장·1921~1990)까지 여학교에 보냈어요. 남들이 딸은 공장에 보내라고 하면 어머니는 ‘누구는 돈을 쌓아놓고 공부시킵니까’ 그러셨던 분이세요.”
-정보부를 안방 드나들 듯 하는 아들 때문에 걱정이 컸겠다.
“정보부에 며칠 끌려갔다가 풀려나온 날 밤, 연세대 총장이 우리 집을 찾아와 (아드님이) ‘고생해서 어떡하나’라고 위로하자 어머니가 뭐라고 그랬는지 아세요? ‘남자가 그렇게 고생 좀 해봐야지요’. 어머니가 그러니까 제가 있단 말입니다.”
-노인에게 권할 만한 책이라면.
“하버드대 출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가 지은 ‘월든’이 좋아요.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월든이라는 조용한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숲속 생활을 하는 내용이에요. 거기 두 번인가 가보기도 했어요. 그이가 또 재밌는 점이 한 여자를 두고 동생과 같이 사랑했는데 동생에게 양보하고 자기는 글을 쓰는 생활을 했다는 겁니다.”
-TV 종편 프로 ‘낭만논객’에도 출연하고 있다.
“출연자인 김동건 아나운서와 가수 조영남, 제 나이를 합치면 230세가 넘는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시작할 때 예정했던 대로 2월 초에 100회로 끝나요. 그 프로에서 시를 외우며 기억력이 나빠지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대한노인회 고문이기도 한 김동길 명예교수는 “노인은 생각을 하는 것도 좋다, 정리를 해보고 글을 많이 쓰라고 권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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