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부대 영내에 위치… 문화의 숨통 역할 ‘톡톡’
미군부대 영내에 위치… 문화의 숨통 역할 ‘톡톡’
  • 이상연 기자
  • 승인 2016.03.11 13:44
  • 호수 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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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이 경로당 경기 동두천시 걸산동경로당
▲ 미군부대 ‘캠프 케이시’ 영내에 위치한 경기 동두천시 걸산동경로당은 마을 주민들의 문화의 장이다. 사진은 댄스스포츠 교육을 통해 배운 기술을 펼치는 어르신들. 사진=이상연 기자

소요산 자락 오지마을… 한국전쟁 후 60여년간 ‘육지속의 섬’으로 존재
경로당을 ‘행복학습관’으로 지정… 사물놀이 등 다양한 프로그램 도입
댄스스포츠‧컴퓨터‧공예교육도 진행… 터전 잃고 정착한 주민들의 활력소

6.25의 아픔을 지닌 오지마을, 그곳의 경로당이 마을 문화의 장으로 변신했다. 회원들은 재능기부까지 나서고 있어 눈길을 끈다. 경기 동두천시 걸산동경로당의 이야기다.
“신분증은 챙겨 오셨죠?” 지난 3월 8일 오전 10시, 기자와 만난 노수일 경로당 회장(75)이 건넨 첫 마디다.
걸산동 마을은 미군부대 ‘캠프 케이시’ 영내에 자리한 산골마을이다. 이곳의 방문 절차는 까다롭다. 마을은 엄연한 한국 땅이지만, 미국 영토인 미군 부대를 거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신분증을 맡기고 미군이 발급한 통행증을 받아야 한다. 그 뒤 마을 주민이 직접 방문객을 마을로 데려가는 방식이다. 걸산동 마을이 ‘육지속의 섬’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부대를 통과해 3km 가량 들어가자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소요산 능선을 따라 집들이 30~50m 간격으로 띄엄띄엄 놓였다. 걸산동경로당은 그 중심에 위치했다.
이 경로당은 2011년 ‘행복학습관’으로 재탄생했다. 경기도가 추진하는 평생학습 사업의 일환에 따른 것. 내부 구조를 변경해 교육장으로서의 틀을 갖췄다. 1층 규모의 경로당은 강의와 학습이 진행되는 복합공간, 컴퓨터·독서·상담 등이 가능한 학습준비실로 이뤄졌다.
이 공간에서 매주 월~목요일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강사와 재료 등은 동두천시 평생교육원이 지원한다.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사물놀이. 4년 간 익힌 어르신들의 ‘삼도 농악가락’은 인근 지역에 소문이 자자하다. 지난해엔 한미우호의 밤, 대한노인회 동두천시지회 노인의 날, 포천시 장자마을 행사 등에 초청돼 공연을 펼쳤다.
김종한(77) 어르신은 “지회 노인의 날 공연 땐 900여명의 관객으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며 “평생 농사만 짓고 살던 내가 그런 큰 무대에 설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회상했다.
2년째 접어든 댄스스포츠도 안정적으로 자리잡았다. 기자가 경로당을 방문한 이날도 주민들은 댄스 삼매경이었다. 8년 전 임파선 수술을 한 김종숙(67‧여)씨는 2시간의 교육을 모두 소화하는 열정을 보였다.
그의 딸인 김윤희(42)씨는 행복학습관 관장직을 맡아 어르신들의 교육을 지원한다. 어르신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참여를 권하거나 불편사항을 접수해 강사진에 전달하기도 한다. 김윤희 관장은 “우리 경로당에선 정보문화시대에 발맞춘 컴퓨터 교실, 두뇌발달을 위한 짚‧한지‧목공예 교육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어르신들이 만든 공예품 중 일부는 경로당 한편을 장식했다. 진의두(여·78) 어르신은 한지로 만든 항아리를 집에서 쌀통으로 사용하고 있다. 학습준비실엔 지식함양을 위한 서적 100여권도 비치됐다. 이 서적 역시 동두천시 평생교육원이 지원한다.
노수일 회장은 이런 경로당의 풍경이 흐뭇하다. 국가안보라는 대명제 아래 불편을 감내해온 주민들이 경로당을 통해 활력을 되찾았기 때문.
걸산동은 아직도 6.25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곳이다. 동두천시는 당시 미군에게 전체면적의 42%가 넘는 임야, 논밭, 민가 등을 공여지로 제공했다. 걸산동도 여기에 포함됐다.
홍은섭(71) 어르신은 “폭격을 피해 집을 비웠다 돌아오니 그 자리는 미군 주둔지가 돼 있었다”며 “할 수 없이 깊은 산 속으로 들어와 현재까지 살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은 주민 전용 통행증이 생겨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하지만, 70년대만 해도 걸어서 2시간여 걸려 마을 뒤편 산길을 통해 외부로 출입했다. 2004년까지는 미군부대 비상경계가 내려지면 바깥 출근은 물론 귀가도 하지 못했다.
미군부대를 지나지 않는 길도 있지만, 비포장 임도길이라 걸어서 3시간, 차로는 1시간 이상이 걸린다. 1970년 새마을운동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농지도 적은 편이다. 비탈진 언덕배기에 다랑이 논밭을 겨우 일구며 살아 왔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지낸 주민들이기에 요즘의 문화적 혜택은 더욱 달게 느껴진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며 아쉬움도 생겨났다. 현재 경로당의 규모는 마을회관, 평생학습관의 기능까지 동시에 수행하기엔 협소하다는 것.
노수일 회장은 “살림살이는 점점 늘고 있는데 창고가 가득 차 경로당 한 곳에 쌓아놓은 상태”라며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주민들이 쉴 공간도 마땅치 않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경로당 옥상에 한 층을 더 올리면 해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경로당 증축 계획은 김문수 도지사 시절 시행 직전까지 갔다. 타당성 조사를 거쳐 7000만원이라는 구체적인 견적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바뀌는 바람에 백지화 됐다.
동두천시지회 김성보 지회장은 “걸산동 주민들은 대부분 조상대대로 그 동네에 터를 잡고 살아온 마을의 터줏대감들”이라며 “앞으로 시와 상의해 경로당 구조 변경과 증축에 관한 사항을 협의 및 조율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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