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기찬 노년생활] 힘겨운 노년 “쇼생크 같은 생활, 하소연 는다”
[활기찬 노년생활] 힘겨운 노년 “쇼생크 같은 생활, 하소연 는다”
  • 정재수
  • 승인 2007.07.07 1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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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사업자금 대주자 형제들 다툰 후 등돌려
혼자사는 아들 술취하면 폭력 일삼아 골머리


“벌써 석 달 째야. 육남매나 되는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여든의 홍모할머니는 해질녘이면 2층 다가구 주택의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담장 너머를 바라다보는 게 일이다. 지병이 있어 오늘 오전에도 병원에 다녀오며 의사로부터 안정을 취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이제나 저제나 자식들이 찾아들까, 밖에 나와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청승 떤다고 올 애들이 아니야.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들어와.”

그런 할머니를 보며 방안에 있던 할아버지가 소리를 버럭 지른다.

지난 봄, 노부부는 자식들과 대판 싸웠다. 표면에 드러난 문제는 돈 문제. 마흔이 다 되도록 결혼도 못하고 막노동을 하며 전국 각지를 떠도는 막내가 안 되어 장롱 속 쌈지 돈을 털어 주었다. 그걸 다른 형제들이 알게 된 것이다.

막내는 홍할머니의 아킬레스건이었다. 이상하게도 하는 일마다 꼬여 제 앞 가름을 하지 못했다. 일이 터질 때마다 손을 벌리는 막내를 어쩌지 못해 홍할머니는 늘 가슴을 졸였고, 다른 자식들은 막내라고 보호해서 키운 게 화근이라며 할머니를 공격했다. 막내 문제는 결국 큰 싸움으로 번졌고 자식들은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신다 해도 죽어도 안 오겠다” 선언하며 집을 떠났다.

“그래도 설마 저희들이 죽어도 안 오겠나 했어. 오늘 오려 나 내일 오려 나 계단에 나와 기다린 게 이제까진데 설마 여름 가기 전엔 오겠지.”

홍할머니는 병고(苦)에, 고독고까지 더해 노년이 의미가 없다며 쓸쓸한 표정을 짓는다.

오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다가구 주택의 반 지하 혼자 사는 여든 둘의 남모할머니에겐 이 정도는 약과. 혼자 살지만, 호적이 아들 집으로 올라 있어 남할머니는 국가로부터 경제적인 보호도 받지 못한다. 며느리가 함께 살기 싫다고 해서 하는 수 없이 아들이 월셋방을 얻어 어머니를 이곳으로 이주시켰다.

한 달에 한번 아들이 찾아와 돈 몇 푼 쥐어 주면 그걸 가지고 월세 내고 혼자 식사를 해결하고 생활비를 댄다. 어떨 때는 아들이 깜박 잊고 오지 않으면 손에 돈 한 푼 없어 어떤 때는 겨우 밥만 해서 간장을 찍어 먹을 때도 있다. 비참하지만, 목숨이 붙어 있으니 어쩌겠냐고 한숨을 짓는다.

한 집에 산다고 사정이 낫냐 하면 그건 아니다. 일흔 넷의 강모할머니는 매일 사는 게 지옥이라고 한다. 이혼하고 혼자 사는 아들이 저녁이면 술에 취해 들어와, 하루가 멀다 하고 폭언과 폭력을 휘둘러 정신이 온전히 붙어 있기가 어려운 지경이라고 한다. “저승신이 있으면 하루라도 빨리 데려갔으면 좋겠다”는 게 강할머니의 소원.

노년의 삶이 회색빛으로 고통스럽다는 노인들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전국 18개 노인학대예방센터에 접수된 학대 신고 사례는 모두 2274건으로 전년보다 11.6% 증가했다. 노인학대의 원인으로는 가해자·피해자 갈등이 31.3%로 가장 많았고 가족 갈등이 뒤를 이었으며 자녀 간 갈등, 재산 갈등, 경제적 어려움도 주요 이유.

까리따스 노인학대 상담센터와 한국재가노인복지협의회가 노인학대 상담전화(1588-9222)에 접수된 노인 학대 유형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언어·심리적 학대가 전체 접수건수의 34.9%를 기록했다.

노인에 대한 폭행 등 신체적 학대는 25.1%였고, 장기간 밥을 주지 않거나 노부모 부양을 거부하는 등의 방임형 학대는 24.1%, 경제적 학대는 14.3%이었다. 가해자는 아들이 44.1%로 가장 많았고 며느리는 26.1%로 뒤를 이었다. 딸은 13.5%, 배우자 4.2%, 사위 3.0%, 손자 1.9% 순.

전문가들은 평균수명의 증가로 20년 이상 노년기를 보내야 하는 상황에서 노인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사회적 차원의 접근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리빙 윌(Living Will), 웰 다잉에 관심 갖는 노년층이 늘고 있다!

장옥경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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