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의심되면 의무기록부터 확보해야
의료사고 의심되면 의무기록부터 확보해야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6.04.08 14:38
  • 호수 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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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새 의료분쟁조정 신청 건수만 5500건 육박

조정신청 해도 40%만 조정절차… 정부, 병원동의 없이 조정할 수 있게 법 개정 추진
환자, 의료진 과실 밝혀내기 어려워… 사고경위서 작성 등 의료사고 대처 철저히

의료사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어머니는 10년 전에 심장질환으로 수술을 받은 뒤 혈액이 굳지 않게 하는 약물치료를 꾸준히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3년 전 양쪽 다리 정강이에 피부질환이 생겨 피부과에서 조직을 떼어내는 검사를 받았는데, 그 뒤 오른쪽 다리가 퉁퉁 붓고 통증이 심해 다시 병원을 찾았죠. 그러자 이번엔 정형외과에서 오른쪽 다리에 문제가 생겼다고 해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며칠 뒤 어머님께서는 복강에 출혈이 생겨 결국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이는 지난해 5월경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의료사고 피해 국회 증언대회’에서 의료사고 피해자 가족인 박흥수씨가 밝힌 사연이다. 피가 굳지 않게 하는 약물치료를 받고 있던 환자를 수술하려면 의료진은 최소한 일주일 전에 약을 끊도록 했어야 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아 감염이 발생된 사고였다. 이후 CT(컴퓨터단층촬영) 검사에서도 복강출혈이 확인됐지만 의료진은 이를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
이같이 예기치 못한 의료사고가 매년 빈번하게 발생되고 있다. 지난 2012년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출범한 이후 2015년 말까지 접수된 의료분쟁 조정신청 건수가 총 5487건에 이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 전문가들은 현대 의료기술이 전문화되면서 의료진들이 자기 전공 분야를 제외한 분야의 부작용 사례를 공유하기가 어려워진 점을 이유로 꼽는다. 또 의료사고가 일어나도 병원 외부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재사고를 예방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보니 의사들이 의료사고 유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는 탓도 크다. 실제로 2000년 이후 대법원과 고등법원에서 의료소송으로 판결된 의료소송 277건을 분석한 결과, 약 30%는 예방 가능한 사건이었다.
이민호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상임감정위원은 “의사는 자기 전공만 잘 아는 기능공에 가깝다. 예를 들어 의사들이 CT 촬영 이전에 먹는 조영제로 인한 부작용 발생 비율의 수치는 알아도, 조영제와 함께 먹을 때 문제가 되는 당뇨약 등 세부적인 지식까지 얻기는 힘들다”며 “의료인이 사전에 사고에 대해 인지하기만 해도 예방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2012년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설립해 조정중재 임무를 맡기고 있지만 분명한 한계가 있다. 현행법으론 병원 동의 없이는 조정절차를 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5487건의 조정신청 중 43.2%에 해당하는 2342건만이 조정절차에 들어갔고, 3077건은 상대방의 부동의 또는 14일간 무응답으로 각하됐다. 즉, 조정신청자의 절반 이상이 병원의 부동의로 인해 조정절차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조정신청이 기각된 의료사고 피해자가 할 수 있는 다음 조치는 병원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의료소송에서 상대적으로 정보가 부족하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환자 측이 직접 의사의 과실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병원 측이 제공한 기록만으로 의료진의 과실을 밝혀내기란 쉽지 않다. 소송에 평균 2년2개월이 걸리고 비용도 1심에서만 평균 500만원 이상이 들 정도로 환자의 부담이 크지만 승소할 가능성은 낮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의료사고는 피해자가 최대한 빨리 증거를 수집하는 게 중요하지만 의료중재원에 신청했다 병원 측이 거부하면 약 한 달이라는 시간을 버리게 된다”며 “적어도 사망과 중상해가 발생한 의료사고의 경우 조정이 자동 개시되는 게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오제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지난 2014년 3월 의료소비자의 권익 보호 차원에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사망이나 중증상해 등 의료사고의 피해를 입은 당사자와 유족이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 신청을 하면 의사, 병원의 동의와 상관없이 분쟁 조정이 시작될 수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환자안전법’ 시행령 시행규칙을 입법 예고했으며, 오는 7월부터 의료사고 사례를 직접 수집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의료기관은 불가항력으로 발생한 사망, 장애 등의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정부에 보고해야 하며 이 보고는 병원장, 환자안전 전담인력, 의료인뿐 아니라 환자 자신과 보호자도 할 수 있다.

▲ 의료사고가 의심될 시에는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 신청을 하면 3~4개월 내에 의사 2명, 현직검사 1인, 의료전문변호사 1명, 소비자권익위원 1명으로 구성된 ‘5인의 감정부’가 의료과실 여부를 입증해준다.

하지만 법안이 마련됐다 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의료사고에 제 권리를 찾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손해를 입는 환자들이 속출하는 만큼 의료사고를 사전에 예방하고 대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의료사고라는 의심이 들면 증거를 수집하는 게 중요하다. 그 중 가장 빨리 확보해야 하는 자료는 바로 병원이 진단과 치료를 위해 시행한 모든 내용을 기록한 의무기록과 진료기록부 등의 사본이다. 의료법상 환자가 요구하면 해당 병원은 이를 발급할 의무가 있다. 만약 의료사고가 발생한 후 증거확보에 나서면 병원 측 과실일 경우 문서를 위·변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미리 챙기는 습관이 필요하다.
이용환 의료소송 전문 변호사는 “의무기록과 진료기록부를 발급받을 때는 보험회사 제출용이라고 하며 자료를 요구해도 된다. 관건은 얼마나 빨리 확보하느냐”라며 “간호 기록지 등 중요한 의무기록이 빠지지 않도록 정확하게 발급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또한 의료진에게 치료 과정에 대해 전반적인 설명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 의료진에게 궁금한 점을 묻고 왜 이런 치료 과정을 거쳤고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구체적으로 물어야 한다. 이 때 의료진이 말하는 내용은 녹취해야 하며, CCTV와 주변 환자 등의 진술도 확보해야 도움이 된다.
사고가 발발하게 된 이유와 과정을 자세하게 작성한 사고경위서도 반드시 작성해서 보관해야 한다. 의료 사고에 관한 사실은 환자나 보호자가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기억해내는 데 한계가 생기기 때문에 빨리 시간대별로 임상에 관한 사실을 정리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진술서는 추후 의무 기록 기재 내용의 신빙성을 다툴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만약 사고경위서가 없다면 책임자는 거짓진술을 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 변호사는 “의료사고 발생 시 병원에서 치료비를 전액 면제해준다고 하거나 소액으로 합의를 마치려는 경우도 많다”며 “하지만 섣부른 합의는 금물이다. 합의는 반드시 전문가와 상의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주의를 당부했다.
의료진에게 폭력과 폭언을 행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이는 오히려 병원 측이 형사·민사상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으로, 의료사고에 대한 대처를 모두 잘했더라도 말짱 도루묵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의료인 중 고의로 의료 사고를 내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아무리 억울하더라도 폭언이나 폭력은 자제해야 한다.
이 변호사는 “현행법상 의료사고는 손해 발생을 알게 된 지 3년, 사고가 발생한지 10년 이내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며 “이 기간을 벗어나면 보상받을 권리가 사라지기 때문에 소멸시효도 각별히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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