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40대 세 가정, 복지공동체 일구다
귀농한 40대 세 가정, 복지공동체 일구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6.04.15 10:41
  • 호수 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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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광 ‘여민동락공동체’… 노인복지센터‧모싯잎송편공장 세워

지난 2008년 세 쌍의 부부가 전남 영광군 묘량면 영양리로 귀농한다. 강위원(46) 씨의 끈질긴 설득으로 마음을 바꾼 권혁범(43) 씨, 이영훈(40) 씨 가정이 영양리에 발을 디뎠을 때 마을은 수퍼마켓 한 곳 없는 오지였다. 젊은이들이 대부분 떠나고 노인들이 주축인 이 마을에선 라면 하나를 사려고 해도 읍내까지 나가야했다. 더군다나 유일한 교육기관인 묘량중앙초등학교도 학생부족으로 폐교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8년이 지난 2016년 4월 현재 마을은 확 달라졌다. 노인복지센터가 들어서고 이동식 수퍼가 생겨 노인들의 불편을 해소해주고 있다. 물론 초등학교도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학생 수가 늘어났다. 강 씨를 비롯한 세 쌍의 부부로부터 시작된 작은 기적이었다.
귀농부부들이 주축이 된 전남 영광군의 마을공동체인 여민동락공동체가 고령화로 스러져 가던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주목받고 있다. 마을공동체란 주민이 마을에 관한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추진하는 주민자치 공동체를 말한다.

▲ 귀농한 세 가정이 일군 여민동락공동체가 고령화 문제를 안고 있는 농촌의 발전 모델을 제시하며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노인복지센터와 함께 노인일자리를 제공하는 모싯잎송편공장을 운영하며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있다.

고령화로 활기 잃은 마을… 모싯잎송편 팔아 노인자립기반 마련
어르신 생필품 공급 위해 이동식 ‘점빵’ 운영… 통폐합 학교도 살려

활기찬 농촌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귀농한 세 부부는 먼저 영광군 내 11개 읍면 농촌복지에 대한 현황조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농촌지역 복지모델에 관한 연구와 토론을 거쳐 이들은 ‘여민동락(與民同樂) 공동체’(이하 공동체)를 꾸리기로 결정했다. 여민동락은 ‘맹자’에 나오는 말로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지역 노인의 행복한 노후에 동행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결심이 담겨 있는 말이다.

목표가 세워지자 진행이 빨라졌다. 이들은 2008년 자신들을 지지하는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여민동락노인복지센터’를 열었다. 이 복지센터에서 마을 내 100여명의 노인들에게 매일 점심과 간식을 제공하고 건강 체조와 그림그리기 등 취미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전화비 걱정 없이 타지에 사는 자녀들과 통화가 가능하도록 ‘사랑의 도깨비 전화’도 설치했다.
또 주민들 누구나 들러 담소를 나누며 차를 마실 수 있는 동락찻집도 운영하고 있다. 주민들은 찻값 대신 형편이 되는 대로 오이나 호박 등 농산물을 복지센터에 기부하면 된다. 복지센터 입구에는 10원만 내면 되는 자판기를 설치해 주민들이 부담 없이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조금을 한푼도 받지 않고 있다. 자립형 노인복지센터를 표방하며 후원으로 이 모든 복지혜택을 제공했다.
공동체는 노인복지사업을 시작하고 1년만에 진정한 복지를 위해선 노인들의 경제적 독립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노인복지센터를 이끄는 권혁범 씨는 “노인들은 아주 건강한 분, 비교적 건강하지만 품을 파는 정도의 노동이 가능한 분, 마실은 다니지만 노동은 어려운 분, 치매·중풍 등으로 아프신 분 등으로 나뉜다”면서 “비교적 건강한 분들 중에도 의외로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이 많아 이들을 위한 복지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탄생한 것이 ‘여민동락 할매손 모싯잎 송편공장’이다. 2009년 농협에서 6000만원을 대출받아 만들어진 이곳엔 현재 마을 노인 7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일부는 공장에서 떡을 만들고 나머지는 작목반을 꾸려 모싯잎과 콩 등을 생산한다.
초기엔 후원자를 대상으로 우선 판매했지만 쇼핑몰을 만들고 지역축제에 참가하면서 전국으로 판로를 확대했다. 모싯잎 송편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현재는 영광군의 특산품으로 자리잡았고 3억원의 연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들의 행보는 2011년 시작한 마을기업 ‘동락점빵’으로 이어진다. 묘량면은 하루에 버스가 3~4차례 밖에 다니지 않는다. 2010년 중반 면소재지에 있던 유일한 구멍가게마저 사라졌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물건을 사려면 군청이 있는 읍내까지 가야 할 상황에 처해졌다. 이에 공동체는 ‘이문이 없어도,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마을가게’라는 간판을 걸고 동락점빵의 운영을 시작했다.
동락점빵이 반응을 얻자 같은 상황에 놓인 다른 마을 노인들을 위해 트럭을 개조해 이동식 점빵(구멍가게의 전라도 사투리)도 운영했다. 매주 토요일마다 묘량면 마을 42곳을 돌며 노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묻고 이를 구매해 필요한 생필품을 전달하고 있다.
이와 함께 공동체는 폐교 위기에 몰린 묘량중앙초등학교를 살려내며 농어촌 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학생 수가 점점 줄면서 묘량초등학교는 2009년 통폐합대상이 된다. 이에 공동체는 젊은 학부모를 중심으로 학교 살리기에 나섰다. 외부로는 작은 학교의 장점을 널리 알리고, 내부로는 학교 운영에 참여했다. 젊은 학부모들은 교사, 학부모, 학생들이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승합차를 동원해 아이들의 등하교를 도왔고, 교육 과정을 짜는데도 머리를 맞댔다. 가야금, 바이올린, 피아노 등 다양한 방과후 학교 수업도 개설해 졸업 후엔 누구나 악기 한 개씩을 다룰 수 있도록 했다. 이들의 열정으로 학교는 2011년 12명이었던 학생수가 5년 만에 약 2배로 확대됐다.
강위원 공동체 대표는 “현재는 원주민들도 여민동락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지역 살리기에 동참하고 있다”면서 “지역주민들과 이익을 나누며 즐거움을 함께 하는 것이 진정한 농촌복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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