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순 박사의 ‘3전 4기’ 人間승리
고창순 박사의 ‘3전 4기’ 人間승리
  • super
  • 승인 2006.08.25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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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氣센 사람이 암을 극복한다”

 

재발하는 암과 한판승부 벌이며 활기차게 생활


대장암·십이지장암·간암 치료 생활요법 충실
YS 前 대통령 주치의 … 스트레스 기분좋게 받아

 

“세 번이나 암 수술을 받고도 멀쩡하게 살아있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묻습니다.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어요?’ ‘무엇을 드셨어요?’

 

그러나 나는 눈이 번쩍 뜨일만한 특별한 비법이 있었던 게 아닙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했고 ‘암에게 기죽지 않고 즐겁게 생활하는 법’을 익혔을 뿐입니다.”

 

서울대병원 부원장, 김영삼 전 대통령의 주치의를 지냈고 가천의과학대학교 명예총장 등을 지낸 내과 전문의 고창순(74·사진) 박사. 남들은 한 번도 어렵다는데 26세를 시작으로 대장암, 십이지장암, 간암 무려 세 차례의 암 질환을 이겨내고 지금도 재발하는 암들과 기력, 담력, 체력을 바탕으로 한 기 싸움 한판승을 벌이며 활기차게 살고 있다.

 

“고혈압, 당뇨, 심장병 등의 성인병을 ‘생활습관 병’이라고 부르는데 암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암세포는 내 몸이 아닌 외계에서 어느날 ‘뚝딱’ 떨어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암세포가 생기기 이전부터 이미 내 몸 안에 함께 있던 것입니다. 일란성 쌍둥이처럼 정상세포와 암세포는 같은 태생으로 몸 안에 사이좋게 있어 왔던 거지요.”

 

고창순 박사는 사람 몸의 세포는 약 60여개 조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 세포는 DAN를 정확하게 복제하여 동일한 크기, 형태, 염색체 수, 유전 물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자신의 수를 늘여간다. 전기, 중기, 후기, 말기 등의 여러 차례 분열을 거치며 자신의 역할을 끝낸 후에는 새로 만들어진 세포에게 자리를 내주고 스스로 사멸을 한다. 이것이 정상적인 세포의 주기. 그런데 갑자기 유전자의 손상으로 이상세포가 출현하여 세포분열이 컨트롤 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든 암 유전자는 이미 가지고 있는 셈인데 ‘그것이 실제 암으로 나타나느냐, 아니냐’는 그 사람의 생활습관에 달려 있다는 게 최근 의학계의 통론입니다. 즉 생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것을 유발할 수도 누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휴식을 모르는 무절제한 생활에 술과 담배가 어우러지면 암을 키우기 쉬운데 고창순 박사는 자신이 바로 그 경험의 ‘산 증인’이라고 한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 좋아하고, 활동적이고,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어서 어려운 일본유학 생활도, 말 많고 탈 많은 부원장 자리도, 대통령 주치의도 기분 좋은 스트레스로 받아들이며 살았다는 것. 그런데 이런 스트레스도 도가 지나치면 병이 된다는 사실을 몸을 통해 확인했다는 것이다.

 

“1957년에 첫번째 암이 찾아왔어요. 스물여섯의 나이였고 일본 소화(昭和)의대에서 인턴을 하고 있었어요.” 그는 6·25 전쟁에 참전했다 제대한 후, 부산에 피난 내려와 있던 서울대 의예과에 입학했다.

 

“인턴 생활을 시작한 지 몇 달 안 되었는데 식사를 한 후 두세 시간이 지나면 배가 뒤틀리듯이 아팠어요. 처음에는 십이지장궤양인 줄 알았지요. 속이 비면 배가 쓰린 듯 아픈 것이 십이지장에 생기는 궤양의 전형적 증상이었기에. 위 X선 검사 등 자세한 진단이 필요했지만, 나는 몸을 제대로 돌볼 시간이 없었어요. 당직이 아닐 때면 다른 병원이나 연구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버느라 정신없이 바빴기에 제산제로 버틸 수밖에 없었지요.”

 

몇 달씩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단순한 궤양이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몸무게가 5~6㎏가량 빠지고, 옆구리에 달걀만한 혹도 만져졌다. 일단 배를 열었는데 확인한 것은 뜻밖에도 대장암. 당시는 지금하고 많이 달라서 장내시경이나 초음파, 컴퓨터 촬영 같은 진단 방법은 생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수술을 한 후 조직을 떼어 검사를 한 후에야 고 박사는 암 인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두번째 암이 찾아온 것은 1982년 봄이었어요. 웬일인지 아침을 거르고 출근했는데, 복도에서 동료이자 진단방사선과 과장을 만났어요. ‘위 X-레이 검사나 좀 해주게’ 했는데 십이지장 아래쪽에 이상이 발견됐어요. 소화가 잘 안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신물도 올라오고 피로감도 잦았지만, 모두 과음과 흡연, 과로 탓이라고만 생각했지요.”

 

고 박사는 다음날 바로 위 내시경을 해보니 십이지장 하부 ⅔ 정도에 반지모양의 암세포가 퍼져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다행인건 다른 데로 옮겨간 것은 보이지 않았다.

 

“1978년에 서울대병원 부원장으로 발탁됐어요. 그해 서울대학병원은 오래된 건물을 헐고 동양 최대 병원으로 새 출발을 할 시점이었지요. 그때 제 나이가 47세였어요. 당시로서는 평균보다 10년 정도나 빨리 부원장이 된 것이었어요. 82년까지 4년 동안 부원장 자리에 있으면서 병원 살림을 맡아했어요.”

 

한참 나이 때 방사선과, 핵의학과, 임상병리과, 재활의학과, 의공학과, 간호부, 약제부, 영양실 등 진료지원을 총괄하는 자리에 오른 고박사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며 처리해야 할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2만4천 평 건물 전체를 자동 제어하는 항온항습의 에어컨, 난방장치는 잦은 고장을 일으켰고, 갑자기 많은 양의 밥을 짓다보니 밥이 설기도 했다. 하루 10~20건이던 수술이 80~90건으로 늘어나면서 사고도 심심지 않게 일어났다.

 

“환자 진료에, 학생교육에, 제자들 논문 지도에, 저녁마다 사람들을 만나 술을 마시며 설득 작업을 벌이는 등 초인적인 능력이 필요한 기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극심한 육체적 소모와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술이 한잔 들어가면 피곤함을 잊었지요.”

 

고 박사는 알코올이 피곤에 대한 자각증상을 마비시킨 것이었다고 한다. 내심 ‘잘 버틴다’ 자부하고 있었는데, 발견된 자신을 전혀 돌보지 않는 것에 대해 몸이 반기를 든 사건이었다고 한다. 버틸 데까지 버티던 몸의 유전자가 견디다 못해 톡 부러지면서(유전자 손상) 암이 생긴다는 말이 맞았다며 ‘털털’ 웃는다.

 

“세번째 암이 찾아온 것은 1997년이었어요. 서울대학교병원 교수생활을 정년퇴직한 사흘 후였어요. ‘학교를 떠나기 전 건강검진이나 받아두자’며 검사를 받았는데 초음파 검사에서 간 오른쪽에 야구공만한 암세포가 퍼져있는 게 잡혔어요. 학교는 퇴직했지만, 대통령 주치의 임기가 남아있어서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그것이 제일 걱정이 되었어요.”

 

대장, 십이지장, 간 등의 주요장기를 잘라낸 고창순 박사는 암을 대하는 태도가 특별하다. 조기검진, 조기제거로 암을 신속하게 제거하는 한편 면역력을 극대화시켜 재발하는 암들을 제압한다는 주의. 고창순 박사는 세 종류의 암을 치료하며 항암치료는 받지 않았다. 

 

“항암치료는 케이스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옵니다. 환자에 따라, 암 유형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래서 너는 듣는다, 나는 안 듣는다 일률적으로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결국 항암치료를 받는다, 안 받는다 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되지요. 그런데 의사입장에서는 약이 있는데 해보지도 않고 그만둘 수는 없지요. 그래서 의사는 대부분 항암제를 쓰게 됩니다.”

 

고 박사는 자신의 경우는 써보지 않고서는 정확하게 알 수 가 없지만, 항암제가 잘 안 듣는 유형이었고 선택의 문제에서 항암치료를 안 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그러면서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하기 위한 생활요법에 충실했다.

 

내 병은 내가 책임진다

 

“암 환자는 처음 사실을 알고 난 다음에는 며칠 동안 극도의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의 몸에 생긴 문제를 정확히 알고 객관화시킬 수 있다면 그 혼란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자신의 병에 대한 지식이 최선의 처방입니다.”

 

82년과 97년 암과 정면 대결했을 때 자신도 역시 그랬다고 한다. 의사였기 때문에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나?” 허둥대는 일은 없었지만, 다른 환자들과 똑같이 목숨을 두고 도박을 해야 했다고.

 

‘암은 그저 하나의 질병일 뿐’이라고 강조하는 고 박사. 매우 심각한 병이기는 하지만, 신의 심판도 아니고 저주도 아닌 그저 병일 따름이므로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암환자들에게 조언한다.

 

‘나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정보를 모으고 암을 이기려는 노력을 실천하면서 능동적인 환자가 돼라’고도 한다. 환자 자신이 인생 전반에 대해 확고한 자세를 갖고 있지 않으면 이리저리 휩쓸리고 기가 꺾이면서 전의(戰意)를 상실하고 말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중심이 서있지 않으면 ‘이것을 먹어야 좋다.’ ‘이렇게 하면 낫는다’는 온갖 유혹에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기 쉬운 게 암 환자들의 세계. 암에 대해 지식을 쌓아 가면 갈수록 암 선고가 꼭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어떤 태도를 취해야할지 방향도 선다고 한다.

 

자신이 세번씩이나 암에 걸린 것은 개인차 때문이었다는 고 박사. 암은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이 먹고 생활을 해도 누구는 걸리고 누구는 안 걸리는데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과 자세로 사느냐’라고. 면역력을 극대화시키는 생활의 중요성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장옥경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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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예방 생활습관 핵샘포인트   1無 2少 3多의 효과


암을 예방하고 건강을 지키는 비결은 ‘1무(無), 2소(少), 3다(多)’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일본에서 암 예방 캠페인으로 내세운 것 중의 하나.

 

1無, 즉 절대 금해야할 것은 흡연. 폐암, 위암, 식도암, 방광암 등 전체 암의 30%가 흡연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할 정도. 또 담배 속에 든 니코틴과 타르 같은 산화물질은 몸의 면역력을 떨어뜨려 전체적으로 질병에 약한 몸 상태를 만든다.

 

스트레스나 초조감에 시달릴 때 담배를 피우면서 긴장을 푼다는 사람이 많은데, 실제로는 반대.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과 인디애나대학이 6년간 공동 연구한 바에 따르면 오히려 금연에 성공한 사람이 흡연 때에 비해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2少는 술과 음식을 적게 먹으라는 것. 음식은 좀 모자란다 싶을 때 숟가락을 놓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 술은 적당량 마시면 혈액순환을 도와 ‘약’이 될 수 있지만, 많이 마시면 ‘독’이 된다.

 

3多는 운동과 휴식, 접촉을 가능한 많이 하라는 것. 힘닿는 데까지 최대한으로 몸을 움직여 운동을 하고, 또 충분히 휴식을 취하는 것이야말로 건강의 지름길. 가벼운 낮잠도 피로 회복에 도움이 되고, 1주일 중 하루는 푹 쉬어 보이지 않는 피로까지 풀어주어야 한다.

 

사람이든 사회든 가능한 많이 접촉하면서 사는 것도 건강법 중 하나. 거기에서 정신적 육체적 활력을 얻기 때문이다. 도시에 산다면 나이 들수록 지하철 역 가까이에 사는 것이 좋다. 지하철 전동차를 타기 위해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유산소 운동으로 좋다.

 

원만한 부부생활도 좋은 건강법이 될 수 있다. 평소 고 박사는 “마누라랑 자주 비벼”라고 직설적인 농담도 자주 한다. 서로 따뜻한 체온을 나누면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긴장을 완화할 수 있기 때문. 성적 자극을 받으면 엔도르핀 분비가 활발해져 숙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숙면이야말로 어떤 보약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선약 중 최고 선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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