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인생의 ‘두 번째 유치원’에서
[기고]인생의 ‘두 번째 유치원’에서
  • 이상연 서울 노원구
  • 승인 2016.04.22 11:17
  • 호수 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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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된 어르신들의 유치원 종일반. 필자는 노인 주‧야간보호센터인 ‘실버케어센터’를 이렇게 부른다. 지난여름부터 필자는 동대문실버케어센터를 찾고 있다. 어르신들의 친구가 돼드린다는 명분이 있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스스로 위안을 얻으려는 것 같다. 돌아가신 부모님께 못해드린 효도를 대신한다는 보상심리가 작용했다고나 할까.
필자는 부모님을 잃고 나서 결혼했다. 부모님이 저승에서라도 안심할 수 있도록 잘 살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IMF 때 직장에서 퇴사한 이후 여러 사업에 실패했다. 설상가상 사기까지 당해 거액의 빚을 진 채 우울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이런 필자가 다시 일어 설 수 있었던 건 우연히 접한 스포츠댄스 덕분이었다. 텔레비전을 벗 삼다가 스포츠댄스가 우울증에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동아줄을 붙잡듯 취미로 시작했고 결국 필자의 밥줄이 됐다.
삶의 여유를 찾자 부모님께 못해 드린 효도를 실천하자고 다짐했다. 스포츠댄스와 함께 배운 마사지 등을 무기 삼아 복지관, 요양원, 데이케어센터, 경로당 등 어르신들이 계신 곳이면 어디든 찾아갔다. 재롱 삼아 춤도 춰드리고, 하기 쉬운 동작도 가르쳤다.
그러다 단골로 찾게 된 곳이 동대문 실버케어센터다. 필자는 매일 이른 아침에 센터에 도착한다. 일찍 오는 어르신을 부축해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분 한 분 의자에 앉게 하고, 간밤의 안부를 여쭈며 말동무를 해드린다.
그 다음 기초운동을 함께 한다. 숨쉬기, 가슴 펴기, 손목‧발목‧목운동 등 별로 어렵지 않은 스트레칭 동작들이다. 즐겁게 스트레칭을 하며 평소 안 쓰는 근육을 쓰면 퇴화를 늦출 수 있다. 어르신들은 팔을 스트레칭하며 필자를 향해 큰 하트를 그린다. 이에 필자도 팔을 구부려 ‘사랑해요’라고 말한다. 동생 같은 사람의 말 한 마디에 어르신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해진다.
점심시간이 되면 어르신 옆에 앉아 한 분 한 분 식사를 거든다. 어르신들은 입 근육이 약해 음식을 흘리는 분들이 많기에 턱받침도 해주고 손을 잘 못 쓰는 분은 직접 떠먹여 드린다. 식사를 마치면 화장실에 모시고 간다. 혼자 가다 넘어지면 큰일 나니까 함께 가서 칫솔에 치약을 묻혀서 양치질을 해드린다. 이때 입을 벌리는 어르신들은 꼭 아이 같다.
오후는 간단한 놀이로 시작한다. 종이상자 쌓기, 풍선‧공놀이, 그림 그리기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함께 놀아드리는 게 필자의 주요임무이다. 한번은 민요공연단이 온 일이 있는데, 신나는 민요가 흘러나오자 어르신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평소 잘 걷지 못하는 분도 일어서서 흥겹게 춤을 췄다. 필자도 함께 했다. 인생이 뭐 있겠는가. 굽이굽이 돌아가다 힘들어 주저앉으면 서로 손잡아 일으켜 세워주고 노래와 춤으로 슬픔을 지우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인생의 두 번째 유치원에서 봉사하면서 오히려 치유를 받았다. 그동안 겪은 우울증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를 일으켜 세운 어르신들이 꼭 부모님 같아 숙연해지고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더 챙겨드리고 싶다. 좋은 마음만 먹도록 웃음을 드리고 싶다. 동생 같고 아들 같은 나의 재롱을 보시고 웃음을 되찾고 삶의 활력을 얻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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