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답사 많이 해 후손에게 우리문화 잘 알려주면 좋지요”
“유적답사 많이 해 후손에게 우리문화 잘 알려주면 좋지요”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6.05.06 15:31
  • 호수 5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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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옛 어르신들 지팡이 끝에 있는 작은 부삽은 지혜와 경륜의 상징”
이대 총장·국가브랜드위원장 등 역임… 우리문화 세계화에 앞장

지난해 말 대한노인회 핵심노인지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인물이 있다. 바로 이배용(69)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이다. 노인지도자들은 이 원장으로부터 여자노비에게 산전산후 휴가를 부여한 세종대왕의 인간사랑·배려의 리더십을 전해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이다(백세시대 495호 보도). 이 원장이 말하는 역사 속 노인의 지혜와 경륜을 소개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언제봐도 정갈하고 엄숙한 느낌을 받는다.
“박정희 대통령의 미래비전이 우리가 산업화가 돼 물질산업이 발전해도 정신이 해이해지거나 공허해지면 안 된다는 거였어요. 그런 뜻에서 1978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을 출범시켰어요. 2005년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 전 명칭에 익숙한 것 같아요.”
-한국학의 허브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안다.
“이곳은 환경(청계산 자락)과 건물이 잘 어우러져 품격이 느껴져요. 그 중에서도 높은 품격을 보여주는 곳이 왕실도서관인 장서각이에요. 17만권의 고문헌 가운데 유네스코에 등재된 ‘동의보감’과 ‘의궤도’ 500여권이 있어요. 올해 안에 조선시대 병영생활사를 담은 ‘군영등록’을 유네스코에 등재시키려고 합니다.”
-인간수명 100세, 노인인구 1000만 시대가 눈앞이다.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백세까지 오래 산다고 좋아만 하지 말고 남은 인생을 보람되게 하려면 뭔가 유익한 일을 해야 합니다. 노인의 삶을 비유하자면 릴레이마라톤을 뛰어온 셈인데 언제 종점에 도착할 지는 아무도 몰라요. 이 길은 계속 이어진다는 릴레이정신을 가지고 후손을 위해 선조가 해온 것처럼 나는 또 어떤 길을 터줄 수 있는가, 이런 거대담론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맛있는 걸 먹고, 좋은 옷 입고, 아프지 말아야지… 자꾸 그런 것만 좇으면 초라해집니다. 나이 들면 건강이 나빠져요. 오래 썼으니 그런 것이라고 받아들여야지 건강에 집착하면 사람이 추해집니다.”
-유익한 일이라면 어떤 건가.
“봉사에요. 할 일이 없으면 잡담하고 불만만 늘어요. 그래서 노인회가 필요한 겁니다. 서로가 거울이 되는 거지요. 저렇게 하면 젊은이들에게 존경을 받지만 또 한편으로 저렇게 하면 젊은이들에게 무시 당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혼자 있는 것보다 노인회를 통해 봉사 활동을 하는 게 좋아요.”
-요즘 노인들이 소외 받는 듯하다.
“과거 노인들은 모여서 아이들을 봐줬어요. 뒷동산과 뒤뜰이 다 유치원인 셈이지요. 그 시대 노인들의 지팡이 끝엔 작은 삽이 있었어요. 노인은 억센 일은 못해요. 논을 갈 때 젊은이들이 모르는 게 있으면 ‘이걸 파봐라’ 라고 지팡이 삽으로 도와주었던 거지요. 지팡이가 노인의 몸만 지탱해주는 게 아니라 후손에게 생활의 지혜를 가르쳐주는 도구이기도 했던 겁니다. 오늘의 노인도 그렇게 한다면 소외 받지 않겠지요.”

이배용 원장의 경력은 다양하고 이채롭다. 이화여대 13대 총장, 대통령직속국가브랜드위원회 2대 위원장,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회장, 한국대학교교육협의회 15대 회장 등을 역임했다. 이 원장은 어느 자리에 있든지 우리문화의 세계화를 추진했다. 이대 총장 시절 세계의 대학들과 교류를 갖고 학생들을 내보내고 받아들였다. 국가브랜드 위원장 시절 해외교포들을 대상으로 우리 역사 강연도 많이 했다. 이 원장의 강연은 역사 속 위대한 인물의 인간적인 면과 애국심을 관통하는 스토리텔링이어서 듣는 이에게 큰 울림과 공감을 준다.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국립암센터 이사 경력도 있다. 역사학자로서 어울리지 않는데.
“제가 대법원 정책자문도 했어요. 어떤 분야나 사람이 중심이니까 인문학을 하는 저를 필요로 하는 거지요. 의술에 앞서 인술이고 법도 사람을 재단하는 거잖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제가 여성으로는 최초로 대학 총장들의 협의체 회장을 맡았어요. 지방도시의 호텔에서 세미나를 하면 끝나는 즉시 서울로 돌아와 굳이 먼 곳에서 행사를 갖는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세미나 마지막 날 유적답사를 시작했어요. 제주도 같으면 추사 김정희 유배지, 하멜 표류지 등을 다녔지요. 그러자 제주도를 수십번 와도 그런 감동은 처음이라는 반응들이었어요. 제 호가 ‘동소’입니다. 그분들이 ‘동소문화사랑모임’을 만들어 지금껏 모이고 있어요. 또 총장, 교육감, 학부모 교장 등으로 구성된 교육협의체를 만들어 사회생활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인성교육을 연구하기도 했어요.”
-브랜드 위원장으로서 어떤 일들을 했는지.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일에 힘썼어요. 국가의 브랜드란 국가의 품격을 말합니다. 우리나라 브랜드가 좀 떨어진 게 사실이에요. 국가브랜드 순위에서 일본은 5위인데 반해 한국은 20위권 밖인 이유가 한국 사람은 친절하지 않고 웃지를 않아서라고 해요. 이 자리를 빌어 어르신들이 너그럽고 인자한 미소를 좀 더 많이 지어달라고 부탁드립니다.”
-역사를 공부하게 된 계기는.
“제가 외우는 기억력만은 특출난 편이예요. 어릴 적 위인전을 읽고 나서 할머니에게 얘기를 들려주었더니 아주 재밌어 하세요.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교사가 ‘너는 암기 잘 하고 얘기도 잘 하니 후에 국사선생이 되라’고 하셨어요. 그때부터 역사 속에서 나라 생각을 하게 됐지요.”
-삶의 철학은 무언가.
“진정성과 긍정입니다. 진정성을 다하면 상대가 알아줍니다. 거기서 중요한 건 사랑이지요. 역지사지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하면 진정성이 통합니다. 그리고 ‘나는 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이순신 장군은 ‘저에게는 배가 12척밖에 없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배가 12척이나 있습니다’라고 했어요. 36년간 나라를 빼앗긴 걸 두고 짓밟혔다고 좌절하지 말고 되찾았다는 사실에 자존심을 갖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실제 경험한 긍정의 힘은 어떤 것이었나.
“제 경우 시집살이가 대단했어요.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집안일을 할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그러다 유교집안의 맏며느리가 됐어요. 해가 뜨자마자, 해가 지기 전에 마루에 차려놓은 시아버지 위패에 음식을 올리는 일을 다 했어요. 그때 만약 ‘신학문을 공부했고 기독교를 믿는데 내가 왜 이걸 해야 하나’ 하고 따르지 않았다면 가정의 불화가 생겼겠지요. 이 집으로 시집와 수백년 내려온 관습을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했어요. 그랬더니 시어머니도 제가 새벽에, 밤늦게 공부하는 걸 인정하고 도와주시더라고요. 바로 긍정의 힘이지요.”
-노인이 읽을 만한 책을 소개해 달라.
“제가 저자로 참여한 ‘브랜드코리아’(나남출판·2012년)를 비롯해 세종대왕에 관한 책들을 읽기를 권합니다. 그 책에도 세종에 대해 썼지만 그분의 인간사랑, 민족문화를 융성시킨 창의력 등을 폭넓게 배울 수 있습니다. 세종은 ‘80세 이상 되면 남녀, 신분을 불문하고 평등하다’며 노인들을 궁에 불러 술과 고기를 대접했던 위대한 지도자였어요.”

이배용 원장은 마지막으로 노인들이 유적답사를 자주해 우리문화를 많이 알고 후손에게 전해주기를 희망했다. 이 원장은 “선정릉을 단순히 지하철 역사로만 알지만 그곳엔 조선 9대 성종 임금과 정현왕후 윤씨의 능이 있고 한등성이를 넘으면 중종의 능이 있다”며 “5월15일 ‘스승의 날’이자 세종대왕 탄생일에 꼭 여주의 영릉(세종대왕 능)을 찾아 참배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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