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작품 번역의 새로운 지평
한국문학 작품 번역의 새로운 지평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6.05.20 11:19
  • 호수 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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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7일 전해진 뜻밖의 낭보로 문학계를 비롯한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거렸다. 소설가 한강(46)의 맨부커상 국제부문 수상은 각종 사건사고로 얼룩진 국내에 내린 단비와도 같았다. 수상작인 ‘채식주의자’의 작품성이 뛰어났지만 이번 성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29‧영국)였다.
21살부터 한국어를 배운 스미스는 21세 때까지는 모국어인 영어만 할 줄 아는 이른바 ‘모노링구얼’ (monolingual)이었다. 영국 캠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문학 수업에 참여하면서 번역자가 되기로 결심했는데 자국에 한국어 전문 번역가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고 한국어를 선택했다고 한다. 스미스는 한국어로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언어실력이 한국어 전공자보다는 부족하지만 문학에 대한 이해도가 월등히 높았고 결국 우수한 번역물을 탄생시킨 것이다. 또 그는 배수아의 ‘철수’를 번역했는데 이 작품 역시 미국 뉴욕 펜 번역문학상 후보로도 올랐다. 현재 배수아의 또다른 장편 ‘서울의 낮은 언덕들’을 영어로 옮기고 있는 스미스는 한국문학 전도사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내 문학계는 잔뜩 흥분한 상태다. 한강 외에도 김애란, 김연수, 김영하, 박민규 등 한강 못지않은 작가들이 현재 왕성히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작품도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젖어 있다.
이를 계기로 3세대 번역가를 양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채식주의자’의 번역과 해외 출간 지원을 한 대산문화재단의 곽효환 상무는 “우리의 번역은 한국인이 초벌 번역을 하고 외국인이 교정을 하던 1세대를 지나, 원어민 번역에 초점을 맞춘 2세대 끝부분에 있다”면서 “한국어와 한국문학에 밝은 외국인이 하는 ‘3세대 번역가’를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사례는 국내에서도 찾을 수 있다. 국내 최고 권위의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던 김영하와 김연수는 각각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게츠비’와 레이먼드 커버의 ‘대성당’을 번역해 독자들에게 호평을 받은바 있다. 두 작가는 해당 작가의 열렬한 독자로서 원작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작품에 담김 감동을 우리말로 매끄럽게 번역해냈다.
이와 함께 노벨문학상 등 국제 문학상 수상을 국제스포츠대회 우승과 같은 개념으로 취급하는 풍토도 바뀌어야 한다. 문학은 한 나라의 문화가 집약된 것이지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겨루는 대결의 장이 아니다. 소설 한 권을 세계의 알리는 건 그 나라의 문화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각종 지원을 통해 저변을 확대해서 유명한 작가를 발굴하고 이들의 책을 국내에서부터 먼저 읽힐 수 있는 풍토가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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