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노인 등을 공격하는 ‘묻지마 범죄’… ‘여성혐오’ 실태 심각한 수준
여성‧노인 등을 공격하는 ‘묻지마 범죄’… ‘여성혐오’ 실태 심각한 수준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6.05.27 13:59
  • 호수 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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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20대 여성이 전혀 모르는 30대 남성이 휘두른 칼로 인해 희생당하는 사건이 일어나 국민들이 큰 충격에 빠졌다. 이번 사건은 여성혐오 현상을 담은 ‘묻지마 범죄’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취약한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경찰 조사결과, 살해혐의를 받고 있는 김 모씨는 지난 2008년부터 올해 1월까지 병원에 4번 입원해 정신분열증 치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5월 25일 부산에서도 50대 남성이 여성 행인 2명을 아무런 이유 없이 각목으로 마구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남성은 인도에서 가로수를 지지하던 각목을 뽑아 78세의 노인 여성과 22세의 젊은 여성에게 각목을 휘둘렀다. 이 남성 역시 강남역 여성 살해 피의자처럼 정신장애 전력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묻지마 범죄는 동기가 불분명하고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관계가 전혀 없이 발생하는 범죄유형이다. 범인은 심리적 극한 상황에 내몰려 자제력을 잃은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다. 범죄 대상은 불특정 다수다. 문제는 범죄의 피해자가 주로 어린이나 여자, 노인 등 힘이 약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아무런 이유나 잘못도 없이 범죄자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거지만 범죄자는 우발적으로 피해자를 선택하기도 하고 특정한 호불호 때문에 선택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범죄의 배경에는 현대인들의 ‘분노’가 있다고 분석한다. 분노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분노가 제때 풀리지 않고 쌓였다가 불시에 분출될 경우 예상치도 못한 파괴적 결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강력범죄자의 상당수가 평소 불안·강박 등에 시달리다가 한순간 분노를 억제하지 못해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이번 사건에 사회의 시선이 쏠리는 것은 여성혐오라는 살인동기 정황 때문이다. “여자들에게 무시를 당했다”는 강남역 살해사건 피의자의 진술이나 공용화장실에서 1시간 이상 여성이 들어오기를 기다려 범행한 것을 보면 여성혐오가 살인 동기라는 데 이의를 달기 힘들다.
경찰 측은 “심각한 정신분열증을 앓는 범인의 단순살인”이라며 여성혐오 범죄와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사안의 본질은 살인동기 정황보다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 폭력에 대한 불안감과 문제의식이 살인 사건을 계기로 한꺼번에 분출된 데 주목해야 한다. 실제로 강남역에는 ‘나는 우연히 살아남은 여자다’, ‘여자라는 이유로 죽고 싶지 않다’는 등의 단순 추모가 아닌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개탄이 주를 이루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경찰의 ‘단순 범죄’ 해명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들이 이번 사건을 여성 혐오 범죄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제부턴가 인터넷 공간에서는 온갖 여성 비하 표현과 혐오감을 담은 글이 크게 늘었으며, 사회에 대한 불만을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하는 풍토가 번지고 있다. 여성들에 대한 물리적 폭력도 급증 추세다. 살인‧강도‧방화‧강간 등 4대 강력범죄 피해자 중 여성의 비율은 1995년 29.9%였던 것이 2011년에는 71.2%, 2013년에는 90%를 넘어섰다.
정신질환 범죄자에 대한 체계적인 대책이 없는 것도 문제다. 우리나라의 조현병(정신분열) 진료인원은 2014년 기준 10만여명이다. 조현병 환자는 망상과 환청 같은 증세를 보이고, 충동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만큼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고 있는지, 흉기를 들고 거리를 배회하고 있지 않은지 관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폭력적인 불만을 가진 환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통제가 필요하다.
이제 더 이상 우리 사회는 묻지마 범죄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폭력과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온 여성들이 이 사건을 계기로 폭발한 것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김치녀, 된장녀, 맘충 등 여성 비하 용어가 판치고 성폭력, 데이트폭력 등 여성을 겨냥한 범죄는 심각한 수준까지 와있다.
정부는 정신병력이 있는 범죄자에 대한 치료를 의무화하는 등 ‘묻지마 범죄’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한편 여성혐오 풍토 또한 ‘강 건너 불’ 보듯이 넘어가서는 안됨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강력범죄 피해자의 90%가 여성인 현실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을 더는 방치해서는 안된다. 여성과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차별받지 않고,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정부 장기적인 대책 마련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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