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팔 잃고 독학으로 일궈낸 50년의 화업
한쪽 팔 잃고 독학으로 일궈낸 50년의 화업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6.05.27 14:07
  • 호수 5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주 솔거미술관 박대성 ‘솔거묵향’ 전
▲ 전쟁으로 한 팔을 잃고 독학으로 그림을 배워 한국 화단에 우뚝 선 박대성 화백의 등단 5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에서는 대표작 ‘솔거의 노래’(사진)를 비롯한 80여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1970년대 국전에서 8년 연속 입선… ‘금강설경’ 등 82점 전시
600년 된 제주 당산나무 그린 ‘제주곰솔’, ‘우공투양도’ 등 걸작

경북 청도 출신 해방둥이로 한국전쟁 때 한쪽 팔을 잃은 남자가 있다. 그가 삶의 희망으로 삼은 건 사군자를 그리는 일이었다. 고등학교 진학도 포기하고 혼자 자신만의 미술세계를 개척한 그는 1970년대 국전에서 8년 연속 입선을 하는 놀라움을 선사한다. 서울대, 홍익대 등 제도권 출신 화가들도 하기 어려운 일을 달성한 그는 1979년 중앙미술대상을 받으며 작가로서 만개한다. 올해 화업 50주년을 맞은 박대성(71) 화백 이야기다.
소산(小山) 박대성 화백의 등단 50주년을 기념하는 ‘솔거묵향’ 전이 오는 9월 25일까지 경북 경주엑스포공원 솔거미술관에서 진행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금강산을 15차례나 가서 보고 그렸다는 신작 ‘금강설경’을 비롯해 82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박 화백은 장애에 굴하지 않고 어린 나이부터 붓글씨를 쓰며 실력을 쌓았다. 정규 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본지와에 통화에서 박 화백은 “혼자서 그림을 그려 외롭긴 했지만 제도권 교육을 받았다면 개성이 담긴 그림을 그리지는 못했을 것”이라며 “한국화의 전통을 지키면서 현대적 감각을 흡수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번 전시가 이에 대한 해답”이라고 말했다.

▲ 금강산을 15번이나 다녀오고 그린 것으로 알려진 ‘금강설경’. 이외에도 전시에서는 금강산과 관련된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다.

박 화백은 중앙미술대전 대상에 이어 호암갤러리 개인전을 통해 1980년대 스타작가 반열에 오른다.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 박물관, 이스탄불 마르마라대 미술관, 베이징 중국미술관 등에서 초대전을 가지며 세계적인 명성도 얻었다.
전시에선 5개로 공간을 나눠 그의 작품세계를 펼쳐놓았다. 제1전시실에는 ‘솔거의 노래’, ‘제주곰솔’, ‘금강설경’, ‘법의’ 등 대작이 전시된다.
박 화백은 작품을 위해 한지 대신 중국 전통 종이인 옥판선지(玉板宣紙)를 사용했다. 그가 중국에서 가져와 20년 동안 보관한 종이는 한지보다 결이 고와 물기가 빨리 번지는 까닭에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 그는 마치 검무(劍舞)를 추듯 서릿발 같은 속도와 먹의 농담, 대담한 구도로 그려낸 화법을 완성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솔거의 노래’와 ‘제주곰솔’이다. ‘솔거의 노래’는 박 화백이 6세 때 큰 형님에게서 들은 솔거 이야기를 항상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가 60년이 지나 그린 작품이다. 경주 남산 근처의 박 화백 화실에서 본 풍경을 담고 있는데 사실적 묘사와 속도감 있는 붓터치가 돋보인다.
제주 한 마을의 600년 된 당산나무에서 모티브를 얻은 ‘제주곰솔’은 오랜 고민과 노력 끝에 탄생한 작품이다. 솔잎 하나하나를 그리는데 수많은 붓질이 필요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 전시를 며칠 앞두고 겨우 완성 될 만큼 작가의 내공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제2전시실에서는 경주를 담은 39개의 작품이 소개된다. 이곳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작품은 ‘우공투양도’(牛公鬪洋圖)다. 고향에서 벌어진 혈기왕성한 소들의 결투 장면을 담아낸 작품으로 눈을 부릅뜨고 온힘을 다해 뿔을 치받는 소들의 혈기가 느껴진다. 자잘한 흰 여백을 남기는 마른 붓질, 진득진득한 농묵칠, 먹번짐 효과 등을 마음껏 구사하면서 이중섭, 박수근 작품의 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박 화백의 붓질은 서예를 통해 다듬어졌다. 대범한 구성과 농묵의 강조, 섬세한 필치, 여백 활용 등은 서체 운용의 요체이기도 하다. 그는 서체를 가다듬기 위해 유명 서예가들의 서체를 모방하는 연습을 했다. 전시의 4번째 공간에서는 이런 노력을 엿볼 수 있다. 4전시실은 추사 김정희, 중국 서예가 장욱, 모택동 등의 서체를 본뜬 서예작품 등으로 꾸려졌다.
제3전시실과 제5전시실은 금강산, 베트남 하롱베이, 터키 카파도키아 등 국내외 명승지를 그린 작품 등을 소개한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