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타령’에 나타난 한국인의 풍경
‘꽃타령’에 나타난 한국인의 풍경
  • 이동순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
  • 승인 2016.06.17 11:15
  • 호수 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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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유월을 ‘미끈유월’이라고 한다더니 과연 세월은 빨리도 지나갑니다. 잔뜩 움켜쥐었던 세월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미꾸라지처럼 어느 틈에 저만치 달아나고 있네요. 불과 엊그제 시작한 농사일에 골몰하는 틈에 시절은 저만치 흘러가버립니다.
그러한 겨를에 온갖 꽃들은 지천으로 피어납니다. 아름답습니다.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어찌 저리도 아름다운 것인지요? 꽃도 인간도 모두 일정한 삶을 살다가 곧 소멸의 시간 속으로 들어갑니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잠시 피어나 있기 때문에 아름다울 것입니다.
인간의 삶도 그러할 것입니다. 얼마나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의미있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가에 진정한 가치가 달려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꽃밭에 나가 유월에 피는 꽃들을 바라보며 그 어여쁜 이름들을 하나씩 입으로 읊조려 봅니다. 작약, 금계국, 개망초, 등대꽃, 부레옥잠, 초롱꽃, 채송화, 엉겅퀴, 수국, 원추리, 백합, 찔레꽃, 장미, 금낭화, 개불알꽃, 패랭이꽃, 귀룽나무꽃, 꽃창포, 금잔화, 바위취꽃, 동자꽃, 비비추꽃, 도라지꽃, 자주괭이밥꽃, 벌개미취꽃, 개갓냉이꽃, 주름잎꽃, 접시꽃, 메밀꽃, 범부채꽃, 부처꽃, 노루오줌꽃, 익모초꽃…. 우리나라의 꽃 이름들은 어찌 그리도 사랑스럽고 서민적인지요? 제각기 무슨 사연을 지닌 표정들입니다. 실제로 모든 꽃에는 하나씩의 설화가 서려 있습니다.
그 설화들은 대개 슬픔에 기반하고 있지만 마침내 고난의 환경을 이겨내고 축복의 시간 속으로 함께 모여듭니다. 그러다가 문득 눈을 감고 이 계절에 잘 어울리는 노래 한 곡을 듣습니다. 그것은 바로 ‘꽃타령’입니다. 곡조는 자진모리장단으로 몹시 빠르고 격정적이며 흥겨운 가락으로 펼쳐집니다.
전래민요를 새로 다듬어서 정리했다는 이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꽃 사시오 꽃을 사시오 꽃을 사 / 사랑 사랑 사랑 사랑 / 사랑 사랑의 꽃이로구나
꽃바구니 울러 메고 꽃 팔러 나왔소 / 붉은 꽃 파란 꽃 노랗고도 하얀 꽃 / 남색 자색의 연분홍 울긋불긋 빛난 꽃 / 아롱다롱의 고운 꽃
꽃 사시오 꽃 사 꽃을 사시오 꽃을 사 /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의 꽃이로구나
노래가사 속에는 여러 꽃 이름들이 화려하게 펼쳐집니다. 그리고 그 꽃들의 빛깔과 향기, 모양과 분위기 따위를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꽃타령’과 관련해 한국인의 아름답고도 정겨운 풍경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시집간 딸이 친정 부모님 생신을 맞아 모처럼 고향집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할 때의 장면입니다.
먼 곳으로 시집간 딸은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 한번 다녀가고 싶어도 마음뿐이라 고향하늘만 넋을 놓고 바라보았을 터입니다. 아, 그런데 마침 친정집에서 부모님 회갑기별이 왔네요. 딸의 마음속은 온통 흥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반가운 상봉의 그날을 기다리며 잠조차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침내 그리웠던 고향마을 가까이로 당도한 딸은 슬그머니 장난기가 발동해서 대문으로 들어서며 큰 소리로 노래를 부릅니다. 그 노래가 바로 이 ‘꽃타령’입니다. ‘꽃 사시오/ 꽃을 사시오 꽃을 사/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의 꽃이로구나’라고 외치며 대문을 들어섭니다. 이때 부모님과 형제동기들은 모두 반가움에 겨워 버선발로 뛰어나와 눈물 뚝뚝 흘리며 서로 얼싸안고 등을 토닥여줬을 것입니다.
반가움의 눈물은 곧 기쁨의 웃음꽃으로 번져서 온 집안이 왁자지껄 밤이 이슥하도록 한바탕 잔치판으로 어우러졌을 것입니다. 친정집 늙은 부모님께 시집간 딸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귀엽고 사랑스런 한 송이 꽃입니다.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 꽃송이가 제 발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오면서 꽃타령을 구성지게 불러대니 감격도 이런 감격이 어디 있으리오. 세월은 굽이굽이 많이도 흘렀습니다. 이제는 이런 정겨운 친정나들이 광경도 볼 수 없거니와 가족 간의 살뜰하던 사랑도 예전 같지 않은 듯합니다.
모든 것을 계산하고 헤아리며 사랑의 마음까지도 계량화(計量化)되고 있는 가파른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급격한 변모 속에서 변해야 할 것과 결코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구분돼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한꺼번에 달라져버렸으니 우리가 어찌 삶의 갈피를 제대로 따라잡을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은 우리 한국인이 예전에 즐겨 불렀던 꽃타령을 나직하게 음미하며 지금 우리 곁에서 사라진 것들과 그 아쉬움에 대하여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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