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생 충남 당진시지회장 “경로당 여자부회장 두자 분위기 좋아져… 이런 게 선진노인정책”
구자생 충남 당진시지회장 “경로당 여자부회장 두자 분위기 좋아져… 이런 게 선진노인정책”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6.06.17 11:27
  • 호수 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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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출신, 취업지원센터장 거쳐 지회장 연임… 전 경로당에 한궁 설치
심성 좋고 얼굴 고운 ‘채운아가씨’ 명맥 잇는 ‘채운할머니대회’ 개최 예정

“우리는 경로당마다 여자부회장을 뒀는데 전국에 그런 지회 없을 거유.”
충남연합회 구자생(74) 당진시지회장에게 경로당활성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지난 6월 중순, 충남 당진시 중앙로의 당진시지회장실에서 만난 구 지회장은 “남성 중심의 경로당에 여성부회장이 감초 역할을 해 경로당 분위기가 한결 좋아졌다”며 “선진노인정책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며 웃었다. 구 지회장은 또, ‘노인카드’를 만들어 회원 가입을 꺼리는 식자층 노인들을 끌어들이는데 큰 효과를 보고 있다고 했다.

-지회 건물이 무척 크다.
“군청으로 쓰던 건물이에요. 1층은 세무서가 쓰고 우리가 2,3층을 씁니다. 노인대학(70여명)도 운영하고요.”
-여성을 부회장으로 둔 배경은.
“지회장이 되고나서 경로당을 돌았어요. 회원은 여성이 많은데 정작 그들은 ‘남아서 주면 먹고 없으면 안 먹고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지요’라는 식이에요. 경로당 회장이 여성 회원에게 뭘 부탁하면 ‘왜 날 시큐(시켜요)?’하는 겁니다. 이거 안 되겠다 싶어 부회장 몫을 주었더니 본인들도 좋아하고 경로당 회장들도 ‘부를 사람’이 있어 좋다는 겁니다.”
-노인카드는 무슨 얘기인가.
“당진에 경로당이 322개이고, 15개 분회에 노인회원이 1만9000여명이에요. 회원 가입이 안 된 1만여명의 노인은 대부분 교사 등을 하다 퇴직한 ‘식자층 노인’이거나 장사로 바쁜 이들입니다. 우리가 치과·안과 등과 업무협약을 체결해 노인카드가 있으면 10% 할인해주도록 했어요. 병원에서 노인카드 있느냐고 묻고 없다고 하면 지회에 가서 만들어 오라고 보냅니다. 노인카드 만들기 위해선 회원가입이 첫째입니다. 음식점에서도 하고 있어요.”
-역시 경로당이 잘 돼야 한다.
“전 항상 이렇게 말해요. ‘미국·중국·일본에도 없다. 여러분, 경로당 아니면 어딜 갈 건가. 아무리 친한 친구 집이라도 2시간 이상 못 있는다. 이웃집 아주머니 얼굴도 못 보지만 경로당 가면 만난다. 여름에 에어컨 나와 시원하고 겨울에 뜨듯한 방 있는 데가 또 어디 있나. 쌀 7포대(1년 총 70kg)에 운영비 나오는 데가 경로당밖에 없다’ 고 해요.”
-2010년 지회장 당선 이후 연임 중이다. 업적이라면.
“전임 당진시장이 후배였어요. 제가 그이 보고 노인 괄시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일제 말기에 태어나 6·25 겪고 새마을운동 열심히 해 오늘날 잘 사는 한국을 만든 이들이다. 당신은 안 늙는 줄 아느냐’고 했더니 바로 시장 명의의 공문이 내려왔어요. 모든 행사에 가장 먼저 소개하고 상석에 앉힌다는 내용을 담은 겁니다. 이것 덕분에 당진 노인들이 대접을 받아요.”

구 지회장은 또 하나의 큰 성과로 모든 경로당에 한궁을 설치하게 된 경위를 예로 들었다. 좁은 공간에 정신집중이 잘 되는 운동이라며 당진시장에게 지원 요청을 했지만 예산 문제로 선뜻 들어주지 않았다. 구 지회장은 “도의원 한 명에게 부탁했더니 이 사람이 도비 3000만원을 내려보냈어요. 도비가 내려오면 시에선 어떡하던지 부족한 액수를 메워 사업을 해결해야 하거든요. 시에서 나머지(7000만원)를 보태 모든 경로당에 설치하게 됐지요”라며 웃었다.
구자생 지회장은 충남 당진 출신으로 30여년 공무원 생활을 했다. 서산군 음암면에서 시작해 송악면장으로 퇴직했다. 그 사이에 서무계장·문화관광계장·양정계장 등을 지냈다. 면장 시절 주민들을 대상으로 ‘송악면 사람이 참전한 6·25 전쟁수기’ 제하의 책자를 펴낸 일을 큰 보람으로 여긴다. 당진시지회 취업지원센터장(7년)을 거쳐 당진시지회장에 연임됐다.

-공무원 생활 중 기억에 남는 일은.
“문화계장 할 때 송해씨의 전국노래자랑을 당진에서 하게 됐어요. 당시 새로 부임한 당진군수(유병학)의 인사말을 제가 썼어요. 대회 당일 무대 아래서 원고 들고 있는데 이마에 땀이 보실 보실 맺히더라고요. 별 탈 없이 인사말을 마치고 내려오는 군수를 보고 ‘아이고 군수님, 잘 됐어요’ 했더니만 ‘이 사람 왜 이러느냐’고 묻는 거예요. 그 순간 부하직원의 진정성을 느꼈나 봐요. 저를 따로 불러낸 군수가 자신은 타지에서 와 잘 모르니 앞으로 잘 도와달라고 말하더라고요. 한번은 면에 근무하던 이를 제가 군청에서 일하도록 다리를 놔준 적이 있는데 그게 소문이 나 줄줄이 ‘자리 청탁’이 들어오고 덕분에 술 많이 얻어먹었지요.”
-취업지원센터 일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어려웠지요. 한번은 경비를 하겠다는 노인을 데리고 아파트를 찾아갔어요. 아파트관리소 측에서 각서를 요구하는 겁니다. 경비 일에 무슨 각서가 필요하냐고 물으니까 도둑과 다투다 맞아서 사망하면 어떡할 거냐고 되묻는 겁니다. 각서를 쓰겠다고 했더니만 본인이 아닌 아들의 각서를 받아오라는 거에요. 본인은 사망했으니 문제는 아들이란 거지요. 그렇게 힘들게 일해 당진시지회 실적이 전국 1위였어요. 타 지회에서 ‘당진오라버니’(구자생)에게 배워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상도 탔고요.”
-센터장에서 지회장이 된 것도 드문 일이다.
“지회장 선거에 저를 포함해 3명의 후보가 나섰어요. 다른 후보들은 가족까지 동원해 선거운동을 했지만 저는 일체 하지 않았어요. 대신 소견 발표 때 이런 얘기를 했어요. ‘노인회는 군의 보조금을 받아 운영된다. 면장을 해본 나는 그 돈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통로를 통해 오며 어디 길목에 지키고 섰다가 받아내야 하는지를 다 안다. 예를 하나 들겠다. 당진시지회가 여행을 가려고 버스 타고 비좁은 농로를 빠져나와 국도를 통과해 막 고속도로 입구에 들어섰다. 버스기사(전임 지회장)가 내리고 이 버스를 운전하겠다는 이가 3명이 나섰다. 한 사람은 경운기 면허밖에 없고 다른 한 사람은 있어도 오토바이 면허이다. 나는 대형면허(면장)를 갖고 있는데다 버스의 조수(취업지원센터장)를 7년간 했다. 여러분은 과연 누구에게 버스를 맡길 것인가’. 결과는 뻔했지요. 그 얘기가 당진에 전설처럼 회자됐어요. 그 후 문화원장 선거에 나선 후보가 저를 찾아와 한수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는 일도 있었어요(웃음).”
-앞으로 지회 운영 계획은.
“당진에 전해 내려오는 ‘채운아가씨’ 얘기를 바탕으로 ‘채운할머니대회’를 개최하려고 해요. 당진읍 채운리에 북창이라는 마을이 있어요. 거기 주막집에 ‘채운’이라고 심성 좋고 얼굴도 예쁜 처녀가 있었어요. 조선시대에 당진·예산·서산 등지에서 수확한 쌀을 배에 싣고 서울 마포로 들어가 도정을 해 서울사람 먹여 살리곤 했어요. 조곡을 운반하던 선원들이 그 주막집에서 술과 밥을 사먹곤 했는데 채운이란 아가씨는 인심이 좋아 밥도 수북이, 국(비지)도 가득 퍼주었다고 해요. 7,8월에 80세 이상의 자태가 반듯하고 덕망이 높은채운할머니를 뽑아 가을에 개최하는 한궁대회 날 시상하려고 해요.”

구자생 지회장의 또 다른 숙원은 전체 경로당 회장들에게 10만원씩 활동비를 지급하는 것이다. 전임 당진시장이 공개석상에서 지원 약속을 했지만 올해 예산에 잡혀 있지 않았다. 구 지회장은 “이장도 20만원 주는 형편에 경로당 회장에게 한 푼도 못 준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해마다 시청 대강당에서 경로당 회장 350여명에 시장, 국회의원, 시의장 다 참석한 가운데 총회가 열려요. 총회에서 제가 ‘당진시 노인행정 부재’라고 소리를 쳤어요. 계속 졸라대니까 그 사람들이 저만 보면 내빼려고 해요. 조만간 좋은 소식이 들리겠지요”라고 말했다.
글·사진=오현주 기자
fatboyo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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