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효와 불효의 기준이 돈이 될 수 없다
[기고]효와 불효의 기준이 돈이 될 수 없다
  • 강은규 대한노인회 천
  • 승인 2016.06.24 11:21
  • 호수 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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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을 나간 부모님에 대한 걱정으로 불안해하던, 철부지 아이 시절 이야기다. 당시 필자는 마루에 걸터앉아 동구 밖을 바라보며 부모님이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다 저 멀리서 익숙한 모습이 보이면 한 걸음에 달려 나갔다. 고작 몇 시간 못 본 것뿐이지만 마치 이산가족 상봉한 듯 반가웠고 행복했다.
추운 겨울 새벽엔 안방이 차가울까봐 몰래 부엌으로 들어가 장작을 넣기도 했다. 아버지가 일찍 나가는 날에는 신발을 아궁이에 넣어 발이 시리지 않게 했다. 서당에서 배운 교육의 영향도 있지만 효를 강조하는 당시 분위기 덕분에 자연스럽게 몸에 밴 행동이었다.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다. 현재는 모르겠지만 과거에는 그랬다. 사람이기 때문에 부모 자식 간에도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한집에서 오랫동안 살았더라도 서로 추구하는 가치관이 다른 탓에 의견 차이가 발생한다. 대부분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혹은 부모에 대한 효심으로 한쪽이 양보를 하기에 오래 걸리지 않아 화해를 한다. 하지만 최근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는 일련의 사건을 보면 이런 생각이 옳은지 의구심이 든다. 노인을 학대하는 자식이 거의 매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고 고려장이라는 흉측한 단어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얼마 전 남매가 공모를 해 아버지를 죽이고도 당당히 행동했던 사건은 특히 큰 충격을 줬다. 현재 우리 사회에 효가 존재하는 것인지 염려된다. 어쩌면 먼 훗날 우리나라에서는 ‘효’라는 것이 있었다고 적어야 할지 모른다.
이렇게 된 원인이 모두 젊은 사람들 탓은 아니다. 과거와는 달리 일자리를 구하기도 힘들고 어렵게 취직해도 정년을 보장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인 경우가 수두룩하다. 오죽했으면 노인들 사이에서 최고의 효도는 대기업에 들어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효와 불효의 기준이 돈을 많이 버냐, 적게 버냐로 나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가가 노인들에게 효도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기초연금을 비롯해 각종 복지제도를 만들어 노인들이 기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나섰다. 이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정부의 해법도 결국 돈이다. 기초연금이 생겨서 예전보다 생활의 여유가 생겼을지는 모르지만 공허함을 느끼는 노인들이 줄지 않는 것은 돈과 효가 상관없다는 뜻이 된다.
이런 답답한 현실을 해결하는 방법은 결국 효의 의미를 되살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부모자식간의 대화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노인이 되면 말이 많아지기도 하고 행동이 어린이처럼 천진난만해지기도 한다. 자식들에게도 잔소리가 늘어나게 마련이다. 먹고 살기 바쁜 자식들은 부모님의 이야기가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에 회피하게 된다. 정다운 말을 해도 듣기 싫어하고 잔소리로만 알아듣고 노망이 들었다 핀잔을 준다.
하지만 평범한 노인이라도 험난한 세상을 극복한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느껴보지 못한 인생의 지혜다. 어려움을 겪는 자식이라면 오랜 시간 부모님과 대화를 나눠라. 비록 정답은 아니어도 이전엔 생각 못했던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 이를 통해 부모님에 대한 존경심이 자연스럽게 되살아나고 효의 복원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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