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권 얻기 위해 희생한 20세기 초 여성 투사들
투표권 얻기 위해 희생한 20세기 초 여성 투사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6.06.24 13:57
  • 호수 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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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프러제트’
▲ 여성 참정권을 얻기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인 20세기 초 영국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서프러제트’가 개봉했다. 차별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진한 감동을 전한다.

평범한 여성이 탄압받으면서 참정권 쟁취하는 과정 진한 감동
여성이 국가 최고지도자인 시대… 온갖 차별에 대한 저항 메시지

우리나라가 프랑스보다 3년 늦게, 스위스에 비해 23년 빨리 시행한 것이 있다. ‘여성 참정권’이다. 국내에선 남녀가 모두 1948년 직·간접적으로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인 참정권을 얻었지만 프랑스는 남성보다 100여년 늦은 1945년 도입했고, 스위스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뒤인 1971년에야 이를 시행했다. 우리나라처럼 남녀 참정권이 동시에 주어진 나라도 있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여전히 남성만이 이러한 권리를 누리고 있다. 이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영국 여성들의 참정권을 얻기 위한 치열한 사투를 그린 영화 ‘서프러제트’가 6월 22일 개봉했다. 작품은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 집단 ‘서프러제트’를 처음으로 다루며 주목받고 있다. 참정권이란 뜻의 ‘suffrage’에서 파생된 ‘서프러제트(suffragette)’는 20세기 초 영국에서 결성된 단체다. 작품은 평범한 아내이자 엄마였던 주인공 ‘모드 와츠’(캐리 멀리건 분)가 서프러제트가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12살 때부터 세탁 노동자로 살아온 모드는 한 가정의 아내와 엄마로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그의 삶이 달라진 것은 1912년 어느 날 런던 한복판에서 벌어진 서프러제트의 시위를 목격한 뒤부터다.
서프러제트는 수십 년간 여성에게도 참정권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번번히 묵살됐다. 이로 인해 이들의 시위는 점점 더 과격해졌지만 모드에게는 여전히 딴 세상 이야기였다.
우연히 런던 시내로 심부름을 나갔다가 상점에 돌을 던지는 서프러제트의 시위를 보게 된 모드는 서서히 마음의 동요를 느낀다. 그러다 모드와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서프러제트 ‘바이올렛’을 알게 되면서 그녀는 자신의 삶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된다. 앞 세대 여자들처럼 그녀는 엄마와 세탁노동자로서 가족에 헌신했지만 일련의 사건들로 조금씩 여성들이 당하는 부조리에 눈을 뜨게 되고 세상을 바꾸고자 서프러제트가 된다.
이런 그녀에게 돌아온 건 가혹한 현실이었다. 모드는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아이를 남편에게 빼앗긴 채 일방적으로 집에서 쫓겨난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모드의 시련은 계속됐다. 시위 도중 경찰에게 연행된 모드는 단식투쟁을 벌였지만 그녀가 죽어 순교자가 되는 것을 눈뜨고 볼 수 없었던 경찰은 그녀에게 강제로 음식을 먹이는 등의 가혹행위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드를 비롯한 서프러제트는 투쟁을 이어나간다. 이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하기 위해 왕이 참관하는 경마대회에 침투해 들어가기로 한다. 모드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를 왕과의 대면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지만 계획은 틀어지고 여성 참정권 쟁취는 혼돈 속으로 빠져든다.
결말이 알려진 작품은 식상할 수도 있다. 또 여성들의 이야기다 보니 페미니즘 영화로 오해받기 쉽다. 하지만 작품은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과장 없이 그려내면서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고 벅찬 감동을 준다. 여성의 참정권 운동이 극단적 페미니즘이 아닌 남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고 싶었던 인간의 투쟁이었음을 영화는 보여준 것이다.
실제 서프러제트 운동의 선봉에 섰던 인물은 에멀린 팽크허스트(1858~1928)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메릴 스트립이 분한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단역에 불과하다. 스트립이 출연한 분량은 두어 장면밖에 안 되는데 이 짧은 장면 속에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담겨 있다.
영화는 몇몇 뛰어난 지도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모드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큰 줄기를 형성해야 잘못된 방향으로 튼 물꼬를 바로 잡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독일, 브라질 등 세계 주요 국가의 최고지도자로 여성이 선출되는 시대가 왔다. 미국에서도 차기 대권 주자로 힐러리 클린턴이 앞서 나가며 여성들의 지위가 많이 상승했음을 보여준다. 여기까지만 살펴보면 서프러제트 운동이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서프러제트 운동이 차별에 저항한 것이라 해석한다면 여전히 이들의 저항정신은 유효하다. 현재도 인종 갈등, 종교 갈등이 전 세계 곳곳에서 만연해 있고 이는 차별로 이어진다.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테러의 이면에도 이러한 차별이 존재한다.
영화가 진정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여기에 있다. 모든 사람은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동등하게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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