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들이여 ‘차 차 차’ 하세요
은퇴자들이여 ‘차 차 차’ 하세요
  • 신은경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16.07.01 11:04
  • 호수 5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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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엔 정년을 맞아 이 달에 은퇴하시는 두 분의 임원과 식사를 같이 했다. 한 분은 20여년 교사생활을 하시다가 청소년 기관에 와서 16년을 또 봉직하셨고, 또 한 분은 공무원생활을 오래 하시다가 직장생활의 마지막 6년을 이곳에서 아름답게 장식하셨다. 은퇴 후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막상 은퇴하는 마음이 어떤지 참으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사람이 평생 해온 일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하는 말의 내용은 모두 아름답다. 즐거웠던 기억과 감사한 것들뿐이다. 물론 부족하고 아쉬운 점도 없진 않았겠지만, 그것이 후회라고 느껴지진 않았다. 그동안 자신의 일에 파묻혀 가족들을 희생하게만 했던 것 같아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아내를 위해서 시간을 낼 것이고, 건강을 위해 규칙적인 생활을 꿈꾸고, 자녀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어떻게 좋은 부모로 살아나가야 할 것인가를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삶을 충실하게 살아온 사람의 겸손한 고백이었고, 그동안 열정을 바쳐 온 자신의 일에 대한 존경심과 애틋함이 배어 있었다. 아쉽고 서운한 마음에 딱히 적절한 말을 하지 못하던 나는 엉뚱하게도 최근에 들었던 우스개 이야기를 하나 전하고 말았다.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은퇴한 남편이 있었다. 그동안 자신의 일에만 몰두한 나머지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이제는 은퇴도 했으니 아내와 시간을 좀 많이 보내야겠다고 큰 결심을 했다. 그래서 함께 밥을 먹고, 산에도 올랐다. 가능하면 친구들을 만날 때도 부부동반으로 만났고, 영화구경도 같이 다녔다.
그렇게 봉사하며 지내기를 몇 달쯤 됐을 때, 어느 날 아내가 심각한 얼굴로 마주 앉아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남편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단다. 그러자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 이제 그만 혼자 놀 수 없을까?”
은퇴한 남편을 돌보느라 아내는 그동안 안하던 세 끼 밥을 손수 짓고, 동창회도 몇 번 빠져야 했다. 예전 같으면 남편 출근 후, 자신이 날마다 출근하다시피 가던 동네 목욕탕도 마음 놓고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회사에서 지시하던 버릇대로, 이것저것 살림살이를 지적하는 남편의 말이 귀에 거슬렸고, 가끔 냉장고를 열고 한참을 훑어보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 마음이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고 했다.
물론 좀 과장된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리 일리 없는 이야기도 아닌 듯하다. 은퇴를 하는 가장은 이제 평생 동안 하지 못했던 아내에 대한 봉사, 그리고 자식에 대한 좋은 아빠역할을 한꺼번에 할 태세를 갖추고 의기양양 집으로 돌아온다. 이런 과다한 봉사에 익숙하지 않은 아내와 자녀들은 새로운 생활이 어색하고 불편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 좋은 마무리를 하고 은퇴하는 분들께 버릇없는 이야기로 들렸을지도 모르지만 가족 구성원 누구라도 은퇴했다고 너무 긴장하거나 비장한 각오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은퇴했다고 꼭 아내와 많은 시간을 반드시 보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동안 못했던 평생의 봉사를 다 해야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아내나 자녀도 마찬가지다. 각각 지금까지 해온 대로 서로 너무 긴장하지 말고 유연하게 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집집마다 사정이 다르고 인생에 정답은 없기 때문이다. 오늘 은퇴하시는 두 분과 이런 구호를 함께 외쳤으면 좋겠다. 차차차!
차차차는 ‘challenge’, ‘chance’, ‘change’의 앞 글자를 딴 구호로서, 도전(challenge)하면 기회(chance)가 생기고 삶의 변화(change)가 온다는 뜻이다. 은퇴는 곧 새로운 시작이니, 무엇이라도 도전해 새로운 기회를 맞고 삶의 멋진 변화를 이루어 보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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