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혜 종이문화재단 이사장 “어르신들 종이접기로 치매 예방하세요”
노영혜 종이문화재단 이사장 “어르신들 종이접기로 치매 예방하세요”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6.07.15 13:44
  • 호수 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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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평생 한국 종이문화 알려온 ‘전도사’… ‘종이접기’ 저서 20권 발간
가라테 따돌린 태권도처럼 ‘종이접기’가 일본말 ‘오리가미’ 누르길

“흰색의 깃발은 재단 배지에요. 99번의 공정을 거쳐 1백번 만에 우리 손에 종이가 쥐어지고, 우리나라가 백의민족이며, 종이가 흰색이란 점 등 복합적인 의미를 담았어요.”
지난 7월 초, 서울 장충동 ‘종이나라’ 건물. 노영혜(67) 종이문화재단 이사장은 상의 왼쪽 깃에 달고 있는 재단 배지를 소개했다. 노 이사장은 반평생을 우리나라 종이문화의 발전과 세계화에 바친 ‘종이문화전도사’이다. 그가 만든 교재로 전 세계 사람들이 이 시간에도 종이접기를 하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는 종이접기의 기원이며 모태인 고깔(삼신모자)을 만들어 썼고 백번을 접어 만든 ‘백합선’(부채)을 창조한 민족이자 색종이를 발명한 국가”라고 말했다. 최근 대한노인회의 경로당 북카페 사업에 동참하고 있는 노 이사장을 만나 종이문화에 바친 열정과 종이접기의 경이로운 세계에 대해 들었다.

-종이문화재단은 경로당 북카페에 어떤 지원을 하는가.
“전국의 경로당 북카페 4곳에 ‘즐겁고 행복한 시니어 장학교실’이란 종이접기 프로그램을 만들어 강사도 들어가고 교재도 넣어드렸어요.”
-경로당을 보고 느낀 점은.
“오늘날 우리나라가 경제대국의 반열에 오른 건 어르신들의 땀과 희생 덕분이잖아요. 어르신들이 시설·의료 등 환경이 좀 더 좋고 편안한 경로당에서 지내셨으면 해요.”
-노인이 종이접기를 하면 어떤 효과가 있는가.
“특별한 도구 없이도 3세대가 행복해지는 놀이예요. 생각을 하고 손끝을 사용하는 종이접기는 뇌의 신경세포를 발달시켜주고, 창조적 의지와 능력을 자극해 치매 예방이 되며 재활 및 의학적 치료에도 큰 도움을 줍니다.”
-종이접기가 노인 일자리가 될 수 있는지.
“4개월 코스의 ‘대한민국 종이접기 강사’ 자격 과정을 이수하고 자격을 취득하면 종이접기 강사가 될 수 있어요. 방과후학교 돌봄교실 교사로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지도하게 됩니다. 경로당이나 노인복지관 등에서 강사로 활동하는 분도 계세요.”
-노인 자살 원인 중 하나인 우울증에도 도움이 되겠다.
“종이접기를 잘 하게 되면 우울해질 겨를이 없어요. 캐나다의 세계적인 대뇌생리학자인 펜필드 박사는 손은 외부로 나타난 ‘뇌’라고 말했어요. 종이접기로 손을 즐겁게 쓰는 습관을 기르면 머리가 좋아져 창조적인 일을 잘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나라가 색종이를 발명한 나라라고 했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제지역사가인 미국의 다드 헌터(1883~1966)란 이가 1933년, 한·중·일 3개국의 제지현장을 돌아봤어요. 일본의 화지 제조업자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큰 종이(장판지)를 뜨는 나라를 소개 받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세검정에 있는 제지현장을 방문했다고 해요. 그가 자서전과 연구서에 ‘종이원료 자체에 색소를 넣어 색종이를 발명한 최초의 민족이며 봉투를 만들어 예절문화와 우편문화를 발전시킨 창의적인 민족’이라고 밝혔어요.”
-우리는 생활 속에서 종이를 어떻게 사용했는가.
“우리나라처럼 종이를 의식주에 많이 사용한 국가가 없습니다. 이방자 여사가 마지막으로 거처한 낙선재의 문·벽·천정·방바닥까지 모두 종이를 사용했어요. ‘갈모’는 선비들이 평소에 접어 옷섶에 넣어 다니다가 비를 만나면 꺼내 갓 위에 덮어쓰는 우장이에요. 딸이 시집갈 때 아버지의 사랑으로 접어 만든 ‘반짇고리 색실첩’은 기능과 구조가 놀라울 뿐이에요. 종이로 만든 요강은 옻나무 진액을 여러 겹 발라 새지 않고 소리가 나지 않아요. 임권택 감독님이 보시고 감탄하기도 했어요. 저희 종이나라 건물 2층에 있는 종이나라박물관에 전시해 놓았어요.”

▲ 종이나라박물관에 전시 중인 종이로 만든 요강.

노 이사장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에게 종이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영혼을 이어주고 인간과 신을 연결해주는 매개체였다. 좋은 한지를 생산하고 잘 팔려나가기를 기원하는 한지고사, 경조사 때 만드는 종이꽃, 토속신앙의 고깔, 제사 때 쓰는 지방 등이 그것이다.
노 이사장은 “이렇게 유구한 종이문화 전통에도 불구하고 현재 일본의 ‘오리가미’(종이접기란 의미)가 더 많이 알려져 있다”며 “태권도가 가라테와의 경쟁에서 이겨 올림픽 종목으로 선정돼 한국이 태권도의 종주국으로 인식되듯이 우리나라의 종이접기도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종이접기의 원조 대우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역사 자료 발굴과 고증을 통해 우리가 종이문화와 종이접기를 일본에 전파했다는 사실을 하루 빨리 밝혀내야지요. 지금 이 시간에도 역사학자, 서지학자, 샤머니즘 전문가들이 연구를 하고 있어요.”
-우리 종이접기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2년 전 경기도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열린 수학 분야 국제콘퍼런스인 ‘브리지스 콘퍼런스’에 우리 종이접기 작품을 전시했어요. 30여개국, 3000여명의 수학자·과학자·건축가 등이 참석해 종이작품을 보고 한결같이 ‘놀랍다’, ‘환상적’이라고 호평했어요.”

노 이사장이 이 일을 시작한 계기는 일본 동경의 한 백화점 이벤트 홀에서 열린 ‘전국순회종이접기전시’를 보게 되면서였다. 종이접기 체험교실에서 가족, 친지들이 종이개구리 멀리뛰기, 종이로켓 높이 날리기 등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그곳에서 종이접기 작품의 예술성을 발견한 노 이사장은 귀국 후 종이문화 관련 자료를 살펴보다가 한국이 우수한 종이문화의 나라이며 종주국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종이문화유산을 이어가고 재창조해 대한민국의 종이접기문화를 새로운 한류로 세계 곳곳에 전파하는 역할을 맡아 하고 있다.

▲ 종이나라박물관에 전시 중인 조선시대 우장 ‘갈모’. 왼쪽은 접은 상태이다.

1977년 색종이 전문회사인 ‘종이나라’를 설립해 지금까지 총 20여종의 저서와 600여종의 종이접기 책을 발간했다. 한국종이접기협회(1987), 종이문화예술아카데미(1988), 종이나라박물관(1999), 종이문화재단(2005), 세계종이접기연합(2010) 등을 설립했다. 국내(130개)와 해외(40여개)에 교육원과 지부를 두었다.
-보람이라면.
“작년 4월, 필리핀에서 ‘대한민국 종이접기문화 세계화 한마당’을 했어요. 한국전쟁에 참전한 필리핀 용사의 가족들과 현지 사람들에게 종이접기강사 자격증을 전달하자 그들이 ‘페이퍼 폴딩’(Paper Folding)도 아니고, ‘오리가미’도 아닌 ‘종이접기 조이, 조이!’라고 소리칠 때 감동과 보람을 느꼈어요.”
-‘조이’는 무슨 뜻인가.
“저희 수업과 세미나에서 ‘조이’라는 구호를 외쳐요. 우리나라는 닥나무(楮)로 종이를 만들었어요. 종이의 옛말이 ‘저이’, ‘조이’에요. 지금도 경상도 지역에서는 ‘조이’라고 해요. 영어로 즐겁다는 뜻의 ‘조이(joy)’도 되고요. 우리 종이문화 우수성과 종이접기의 기쁨을 세계인에게 알리자는 뜻을 담았어요.”
한반도 평화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고깔 8000만개를 접어 모으는 ‘고깔 축제’를 매년 열고 있다는 노영혜 이사장은 “어르신들이 통일의 염원을 모아 고깔을 많이 접어주시고 조이, 조이를 많이 외쳐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글·사진=오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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