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좀비’ 나타난다면… 국민 잘 지켜줄까?
한국에 ‘좀비’ 나타난다면… 국민 잘 지켜줄까?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6.07.22 14:21
  • 호수 5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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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화제작 ‘부산행’ 개봉
▲ 올해 칸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면서 화제를 모았던 영화 ‘부산행’이 개봉했다. 외국 영화의 인기 캐릭터인 좀비를 한국 현실에 맞게 적용하고 인간의 이기심과 재난관리에 대한 통찰을 담으면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극중 주인공들이 좀비와 맞서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

최후 보루 부산 향해 열차로 도망치는 사람들 다룬 재난영화
이기심과 재난관리에 대한 통찰… 극단적 공포와 통쾌감 선사

서양에선 ‘살아 있는 시체’를 좀비(Zombie)라고 부른다. 서아프리카 지역의 부두교(Voodoo)에서 뱀처럼 생긴 신을 가리키는 말로, 신을 뜻하는 콩고어 ‘은잠비’(nzambi)에서 나온 말이다. 이후 비유적으로 반쯤 죽은 것 같은 무기력한 사람을 일컫는 말로 쓰이던 이 말은 1968년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을 통해 사람을 물면 물린 사람도 괴물이 되는 캐릭터로 정착됐다. 만약 이 좀비가 실제로 우리나라에도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영화 ‘부산행’은 이런 질문에서 시작된다.
좀비를 피해 부산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처절한 사투기를 그린 영화 ‘부산행’이 7월 20일 개봉했다. 칸 영화제 공식 초청작으로 화제를 모은 이번 작품은 한 생물회사에서 개발 중이던 물질이 유출돼 서울을 중심으로 좀비가 생겨나면서 시작된다.
작품의 핵심인물은 증권사 펀드매니저인 석우(공 유 분). 잘 나가는 증권인으로 남부럽지 않은 재력을 가진 그는 일로 바쁜 탓에 딸인 ‘수안’에게 소홀했다. 이혼을 종용하며 부산으로 떠난 아내 대신 딸을 성심성의껏 돌보려했지만 생일날 이미 가진 선물을 또 하는 실수를 범한다. 이에 서운함을 느낀 수안은 엄마가 보고 싶다며 부산에 가자고 조른다.
딸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던 석우는 부산행 KTX에 함께 탑승한다. 하지만 그가 탄 열차에 큰 상처를 입은 의문의 여고생이 출발 직전 올라탄다. 열차가 플랫폼을 떠난 순간 수안은 차창 너머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무는 의뭉스런 광경을 목격한다. 같은 시각 경련을 일으키며 바닥에 쓰러졌던 여고생의 눈빛이 회색으로 변하며 객차 내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물기 시작한다. 좀비 바이러스가 열차뿐만 아니라 서울, 천안, 대전 등으로 삽시간에 퍼져나간 것.
열차 안 생존자도 얼마 남지 않은 위기 상황에서 석우는 함께 열차에 찬 상화(마동석 분)와 임신한 그의 아내 성경(정유미 분)과 함께 위기를 극복해 나간다. 부산을 향해 나아가던 열차마저도 동대구역에서 가로막히고 결국 이들은 좀비떼를 피해 아직 운행이 가능한 ‘부산행’ 열차를 찾는 모험을 시작한다.
이 작품은 국내 상업영화에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좀비를 전면에 내세우며 주목받고 있다. 목적을 가지고 특정한 사람에게만 해를 가하는 한국 귀신과 피를 빨기 위해 사람에게 덤벼드는 서양 흡혈귀와 달리 좀비는 눈앞에 살아 있는 사람에게 무차별적으로 달려든다. 좀비 캐릭터가 전 세계 공포‧재난 영화의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언제 어디서든 갑자기 튀어나와 마치 스크린을 뚫고 나올 듯한 좀비의 위세는 관객들에게 심한 공포심을 유발한다. 이번 작품에서도 대전역 대합실 유리문을 깨고 좀비가 후다닥 몰려오는 장면 등 곳곳에서 좀비 캐릭터를 활용해 관객들을 긴장케 했다.
좀비에 대항하는 배우들의 액션도 볼거리다. 외국영화들이 대부분 총을 이용해 좀비를 공격하는 반면 이번 작품은 총기 청정국인 한국의 배경과 열차라는 제한된 공간 탓에 맨몸액션을 선보인다. 여기서 빛을 발하는 것이 배우 마동석의 연기다. 우람한 근육으로 프로레슬러를 연상케 하는 그가 미친 듯이 달려드는 좀비를 한명씩 힘으로 제압하는 장면은 긴장감 때문에 움츠렸던 관객들에게 통쾌함을 제공한다. 딸을 위해 사력을 다하는 공 유의 부성애 액션도 빛을 발한다.
가장 주목할 장면은 동대구역에서 열차 갈아타기에 성공한 이들을 향해 수백명의 좀비가 달려드는 장면이다. 달리는 열차를 좀비들이 하나씩 붙잡아 군집을 이루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큰 공포감을 준다.
오락성 좀비 영화로 치부할 수 있지만 작품의 진짜 메시지는 사회 비판에 있다. 작품은 세월호 사건, 메르스 사태 등 최근 몇 년 사이 일어난 대형 국가재난에 대응하는 정부의 자세를 비판하고 있다. 극중 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로 서울역을 비롯한 서울 시내 전역은 아수라장이 되지만 정부는 언론을 통해 잘 대응을 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세월호 사건 초기 전원구조에 성공했다는 성급한 발표와 메르스 사태 때 정부의 안일한 대응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도 의미심장하다. 영화 초반 석우는 자신과 딸의 안전을 위해 감염되지 않은 상화와 성경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도 열차 칸을 봉쇄하려 했다. 석우와 함께 이기심을 잘 보여주는 캐릭터가 중견배우 김의성이 연기한 ‘용석’이다. 용석은 시종일관 혼자만 살기 위해 행동한다. 옆에 있던 생존자를 좀비에게 내어주면서까지 살려고 한다.
이 작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애가 험난한 사회의 등불임을 암시한다. 용석과 달리 석우는 부산이 가까워질수록 서서히 변해간다. 사랑하는 딸 수안을 위한 그의 마지막 선택은 관객을 뭉클하게 한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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