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감
소속감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 승인 2016.08.12 14:33
  • 호수 5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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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30대 말에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해 2년 동안 이곳저곳에서 시간강사 할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소속감이 없다는 것이었다. 강의하러 어느 대학에 가면 그냥 시간에 맞춰 강의실에 들어가고 강의 끝나면 가방 가지고 나오는 게 전부였다. 대학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강의하러 왔느냐고 반겨주는 사람 하나 없었다. 강의를 준 것만도 감지덕지한데 넉살좋게 학과장실에 가서 인사하고 차 한 잔 얻어먹을 용기가 없었다. 소속된 곳이 없으니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규범도 없었다. 나 혼자 계획하고 나 혼자 실행하는 외로운 시간이었다.
나는 40대 중반 3년 반 동안 기러기 아빠 생활을 했다. 가족 없이 혼자 지내는 시간은 정말 힘들었다. 목적 없이 방황하는 방랑객이 된 느낌이었다. 외롭고 허퉁하다는 정도를 넘어 정신적 공황 비슷한 현상들이 나타났다. 삶의 기반인 가족의 부재로 인해 소속감이 완전히 붕괴된 것 같았다.
‘에이브라함 매슬로’라는 심리학자는 “인간의 욕구는 하위단계에서 상위단계로 계층적으로 배열되어 있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이는 ‘인간욕구 5단계론’인데 밑에서부터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소속과 애정의 욕구,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를 말한다. 이 이론은 하위단계의 욕구가 충족되어지면 상위단계의 욕구가 나타나고, 욕구가 충족되는 과정에 행동을 위한 동기부여가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3번째 단계인 소속과 애정의 욕구는 가족, 친구, 조직 등 어느 곳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 그리고 구성원들과 함께 관심과 애정을 주고받고 싶은 욕구이다. 그러니까 내가 경험했던 소속감의 부재 때문에 당시에 나는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살기 위한 동기부여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시절을 보냈던 것이다.
소속감, 즉 자신이 괜찮은 조직‧단체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은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일류학교, 행복한 가정, 남부럽지 않은 직장, 좋은 취미모임 등은 만족스러운 소속감을 준다. 퇴직 후 혹은 자녀 출가 후 적절한 조직‧단체에 속해 있지 않다면 문제가 생긴다.
심리가 위축돼 방어적 태도를 가짐으로써 독불장군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외부의 자극이 없어 삶의 동기부여가 되지 않음으로 인해 퇴행적 태도와 우울 성향이 증가하게 된다. 노년기에 가족, 친구, 학습, 취미, 일 등과 관련하여 소속감이 없거나 있어도 만족스럽지 않다면 이를 개선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청‧장년기에는 그의 에너지를 주로 그 자신을 위해 쓰지만, 노년기엔 그의 에너지를 타인을 위해 쓸 때 삶의 만족감을 향상시킬 수 있다. 청‧장년기엔 업적을 만들어 내고 성공하기 위해 차가운 용기가 필요했다면, 노년기엔 나누고 베풀 따뜻한 용기가 필요하다. 베푸는 삶을 사는 것은 좋은 습관이고, 좋은 습관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시점에 결단이 필요할 수 있다. 괜찮은 조직‧단체에 소속이 되어 타인과 사회를 위해 기여하는 삶을 사는 것은 노년기 행복감을 증진시킨다.
특히 신앙을 갖는 것은 베푸는 삶을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과 함께 소속감을 갖고 교제하며, 상부상조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이다. 신앙은 인간이 무한한 능력이 있는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connectedness)을 인식해 수용적 삶을 살게 하고 삶의 만족을 증진시킨다는 것이 이미 많은 연구에 의해 입증됐다. 100세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러한 삶의 지혜를 터득해 풍요로운 노년을 누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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