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 세계랭킹 1위의 딜레마
유도 세계랭킹 1위의 딜레마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6.08.12 14:46
  • 호수 5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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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 랭커들에 장단점 노출돼 패인으로 작용하기도

올림픽 경기를 일부러 찾아서 보는 편은 아니다. TV 채널을 돌리다가 경기 장면이 나와도 무관심하게 채널을 돌린다. 그러나 유도․육상은 예외다. 두 종목은 우리 선수의 경기가 아니더라도 끝까지 지켜본다. 특히 우사인 볼트의 100m 육상 종목은 놓치지 않으려고 경기 날짜까지 체크한다.
지난 8월 8일 밤, 유도의 안창림(73kg)․김잔디(57kg) 선수가 어이없게 패하는 순간을 보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선수 각각 세계랭킹 1, 2위라는데 그보다 랭킹 순위가 훨씬 뒤처진 선수들에게 맥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세계랭킹 1위인 안창림은 세계랭킹 18위인 벨기에 선수에게, 세계랭킹 2위 김잔디는 세계랭킹 11위인 브라질 선수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것도 준결승이나 결승전이 아닌 16강에서였다. 더욱이 김잔디는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금메달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했고, 이 신문은 기사 제목을 ‘김잔디가 금잔디로’ 라고 붙여놓아 금메달은 따 논 당상이란 허황된 기대감을 불어넣기까지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뒤늦게 알아보니 얼마든지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세계랭킹은 그야말로 ‘허당’이었다. 세계랭킹은 국제대회에서 거둔 성적에 따른 포인트로 결정된다.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면 900점, 마스터스 700점, 그랜드슬램 500점, 아시아선수권 400점, 그랑프리 300점이다. 큰 대회일수록 포인트가 많이 걸려 있다. 남자 66kg급 안바울은 3030점으로 세계 랭킹 2위 다바도르즈 투무르쿨렉(몽골․2480점)에 550점 앞선다. 지난해 아스타나 세계선수권, 월드마스터스, 아부다비 그랜드슬램, 올해 뒤셀도르프 그랑프리까지 싹쓸이했기 때문이다. 60kg급 김원진도 2330점으로 2위 오르칸 사파로프(아제르바이잔․2040점)보다 290점 높다.
그런데 문제는 하위 랭커라고 실력이 마냥 떨어진다고 볼 수 없다. 남자 73kg급 금메달리스트 오노가 대표적이다. 오노는 포인트가 1554점으로 안창림(2658점)보다 1000점 이상 낮아 랭킹 포인트만 놓고 보면 결승진출은 고사하고 8강이나 4강에서 탈락할 실력이다. 오노는 최근 출전한 국제대회가 단 2개뿐이다. 2015년 세계선수권, 올해 뒤셀도르프 그랑프리다. 결과는 모두 우승. 실력과 상관없이 출전대회가 부족해 포인트가 낮을 수밖에 없었고 세계랭킹도 4위로 처졌다. 일본 유도팀은 올림픽 1년 전에는 부상을 방지하려고 작은 대회에는 참가하지 않는다. 세계랭킹만 믿다가는 발등 찍힌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안창림이 과거 2번이나 이겼던 벨기에 선수에게 패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세계랭킹 1위’이다. 잦은 대회 출전으로 인해 정보 노출의 부작용이 컸다. 주특기 등 장단점이 노출됐다는 얘기다. 안창림의 주특기는 업어치기이다. 벨기에 선수는 이에 대비해 접기 싸움에서부터 소매를 내주지 않았다.
재일교포 3세인 안창림은 수려한 인물에 다부지고 탄력적인 몸이 유도와 잘 어울린다. 그의 할아버지는 일제강점 말기 가족을 이끌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안창림의 아버지는 가라테 도장을 운영하다 그만두고 지금은 접골사로 있다. 아버지는 아들이 경기에 패하자 아들을 만나지 않고 일본으로 되돌아갔다. 안창림은 한국 국적이지만 유도를 하는 데는 걸림돌이 됐다. 유도 명문 쓰쿠바대학 재학 중 국적이 한국이라는 이유로 큰 규모의 대회출전에 제약을 받곤 했다. 안창림에게 패한 선수가 선발전에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2011년 고3 시절 재일교포 대표로 전국체전에 참가하기 위해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당시 상대 한국인 코치가 “야, 저 반 쪽바리 이겨버려”라는 말을 듣고 깊은 상처를 받기도 했다. 안창림은 쓰쿠바대학의 계속된 귀화요청을 거절하고 2014년 홀로 한국에 건너와 용인대에 입학했고 9개월 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나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한국 대표가 돼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싶다’고 쓰기도 했다.
4년 후 일본 도쿄올림픽에서 안창림이 리우올림픽의 악몽을 딛고 일어나 초등학교 때의 꿈을 이루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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