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용두동 남부경로당 ‘충·효·예’ 교실에 가보니
대전 용두동 남부경로당 ‘충·효·예’ 교실에 가보니
  • 이상연 기자
  • 승인 2016.08.19 10:50
  • 호수 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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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엔 경로당 어르신이 동네 아이들의 ‘훈장님’

지난 8월 10일 오전 10시 30분, 대전 중구 용두동 주택가에 자리한 남부경로당 2층에서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들렸다. 여름방학을 맞아 경로당에서 진행하는 ‘충·효·예 교실’에 참가한 초등학생들이었다. 방학을 맞아 뛰어놀기 바쁠 아이들이 경로당에서 선풍기 바람에 의지해 ‘찜통더위’를 이겨내며 알찬 방학을 보내고 있었다.

▲ 중구 용두동 남부경로당에서 조성환 훈장(오른쪽 두 번째)의 지도를 받고 있는 서대전 초등학교 학생들.

예절·한자 등 교육… 퇴직 교원, 효지도자 등 자격증 보유 어르신 많아
대전시, 경로당 등 15곳서 초·중생들 가르쳐… 자치구는 예산 지원

대전시는 여름·겨울 방학마다 5개 자치구 별로 경로당·노인회관 등에서 충·효·예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구별로 2~3곳씩 총 15곳에서 3∼4주에 걸쳐 300여명의 초·중학생이 교육을 받는다. 교실 운영에 필요한 기본 교육 교재는 대전시가 제작해 배부하고, 자치구에서는 예산을 지원한다.
남부경로당은 7월 25일부터 8월 17일까지 서대전 초등학교 학생 10여명을 대상으로 월~금요일 오전 2시간씩 수업을 했다. 기자가 방문한 이날은 무더위에 더해 휴가시즌까지 겹쳐 결석한 어린이가 많았지만 수업 분위기는 진지했다.
“공수, 배례(윗사람에게 머리를 조아려 예를 갖추는 것).” 떠들썩한 분위기를 잠재우는 조성환 ‘훈장’(77)의 구령이 들렸다. 곧 수업이 시작한다는 의미였다. 이윽고, 아이들은 익숙하게 배꼽 위에 가지런히 양손을 올리고 허리를 숙였다. 조성환 훈장은 “인사를 할 때는 상대방에게 최선을 다해 예의를 갖춘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며 바른 인사법에 대해 강조했다.
충·효·예 교실 지도는 한자 전문지도사, 효지도사 등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나 퇴직 교원 등 경력과 경험이 풍부한 마을 어르신들이 지도를 맡는다. 동네 어르신은 ‘훈장’ 선생님이 되고, 경로당은 ‘서당’ 역할을 하는 셈이다.
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조성환 어르신은 퇴직 후 예절지도사(1급) 등 자격증을 취득하며 10년 넘게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쳐 왔다. 그가 처음 교육을 시작했을 때 만난 이용호(20)군은 벌써 대학생이 됐다. 이 군은 아직도 그를 “훈장님”이라고 부르며 따른단다.
그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수업을 통해 아이들의 언행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낄 때. 이번 여름엔 우진성(8)군이 그 대상이 됐다. 장난끼 넘치는 우 군은 초기엔 수업 중간에도 교실을 활보하고 다닐 정도로 통제가 힘든 아이였다. 하지만 8월 들어서면서 수업 중엔 누구보다 집중력 있는 학생으로 거듭났다.
인사 후 아이들이 교재를 꺼내 ‘사자소학’ 교우 편의 한 구절을 큰 소리로 읽었다.
“불택이교(不擇而交)하면 반유해지(反有害之)니라. 친구를 가려서 사귀지 아니하면, 도리어 해가된다.” 훈장님의 설명에 아이들의 표정이 금세 진지해졌다.
김서혁(8)군은 한자들을 읊으며 교재에 또박또박 적어나갔다. 김 군은 “한자를 배우는 게 어려울 줄 알았지만, 훈장님의 설명을 들으며 뜻을 생각해가는 과정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은 그간 배운 내용을 실천한 사례를 발표했다.
1학년 때부터 이 교육에 참여한 박채영(9)양은 “부모님께 절을 올려봤다”며 양 손을 포개 절 하는 시늉을 했다.
박 양과 함께 온 김은숙(64·조모)씨는 “어른에게 인사하고 절하는 법부터 충과 효의 의미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이 배우고 알게 되는 것이 많은 교육 같다”며 “그래서 이런 무더위에도 매일 마다 아이를 경로당에 데려다 주고 있다”고 말했다.
2시간 가까운 수업 후, 주항림 남부경로당 총무가 아이들에게 시원한 음료수를 건넸다. 얼마 남지 않은 수료식 후, 아이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면서 “겨울방학에 또 경로당에서 보자”고 후일을 기약했다.
조성환 훈장은 “요즘엔 집안에서 밥상머리 교육이 이뤄지지 않다보니 아이들이 기본적인 예절은 물론 인성 교육까지 부족한 경우가 많다”며 “충효예 교실을 통해 기본예절은 물론 효행심, 협동심, 책임감,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및 소통 등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글·사진=이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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