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영웅가문 출신 태영호 영국 주재 공사 귀순… 북 엘리트층 타격 예상
북한 영웅가문 출신 태영호 영국 주재 공사 귀순… 북 엘리트층 타격 예상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6.08.19 13:24
  • 호수 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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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국 망명 신청설이 나돌던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최근 가족과 함께 한국에 들어온 것으로 밝혀졌다. 태 공사는 북한대사관 내 서열 2위로, 지금까지 탈북한 북한 외교관 중 최고위급이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8월 17일 기자회견을 통해 “최근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태영호 공사가 부인, 자녀와 함께 대한민국에 입국했다”며 ”이들은 현재 정부의 보호 하에 있으며 유관기관은 통상적 절차에 따라서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 공사는 북한 외무성 유럽연합(EU) 담당 과장, 구주국장 대리 등을 지낸 서유럽 전문가로, 그동안 북한 체제를 서방에 홍보하는 선전 업무를 수행했다. 한 강연에서 그는 “북한에 무상 교육, 무상 주거, 무상 의료가 제공되는 것을 안다면 사람들이 북한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될 것”이라며 “서방 언론의 왜곡 보도 탓에 북한이 잘못 알려지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태 공사의 탈북 이유로는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과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자녀의 장래 문제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서구권에서 성장기를 보낸 26세 장남, 19세 차남과 딸 등 2남 1녀를 둔 태 공사가 임기가 끝나 북한으로 돌아갈 처지에 놓인 것이 그의 탈북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태 공사의 큰 아들은 영국에 거주하면서 현지 한 대학에서 공중보건경제학 학위를 받았으며, 덴마크에서 태어난 작은 아들은 현재 막 고교를 졸업한 19세로 임피리얼 칼리지 진학을 앞두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 대변인은 “북한의 핵심계층 사이에서 ‘김정은 체제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 ‘북한 체제가 이미 한계에 이르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고, 지배계층의 내부결속이 약화되고 있지 않느냐 하는 그런 판단을 해본다”고 전했다.
현재 태 공사는 경기도 시흥에 있는 탈북민 보호센터에서 탈북 경위 등에 대해 유관기관 합동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변인은 태 공사의 입국 경로에 대해 “상세한 탈북 및 입국 경로에 대해서는 관련 해당국과의 외교문제가 있다. 상세히 밝히지 못함을 양해해 주길 바란다”며 “신변 안전 문제를 감안해 정확한 가족관계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태 공사의 아버지는 김일성 전령병으로 활동한 항일 빨치산 1세대 태병렬인 것으로 알려졌다. 태병렬은 1916년생으로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김일성 국가장의위원회 위원 등을 거쳐 1997년에 사망했다. 태 공사의 형인 태형철은 당 중앙위원회 위원이면서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을 역임하고 있다.
태 공사의 부인인 오혜선 또한 북한군 총참모부 오금철 부총참모장의 일가라고 대북 소식통이 전했다. 오금철 일가는 북한에서 최고 특권층에 속하는 항일 빨치산 가문으로, 오금철은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이자 노동당 군사 부장을 지낸 오백룡의 아들이다. 오혜선은 대외무역, 외자유치, 경제특구 업무를 맡고 있는 대외경제성에서 영어 통역을 담당하던 요원으로, 홍콩 근무를 거쳐 2년 전 런던에 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북한은 외교관 중에 가장 고위급 인사인 베테랑 외교관과 항일 빨치산 가족의 일원까지 탈북했기 때문에 심리적인 충격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 4월과 5월에 중국 내 북한식당 종업원들이 집단 탈북했고, 북한 외교관 여러 명이 입국했다는 얘기가 나돌면서 북한 체제가 과거보다 점점 내부적 도전에 직면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돌고 있을 정도다.
또한 외교관 등 해외 근무자들을 비롯한 북한 엘리트층에 엄청난 심리적 혼란을 줄 것으로 예측된다. 북한 엘리트층의 탈북 도미노가 본격화하는 징후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 또한 태 공사의 망명을 계기로 비슷한 급의 엘리트 탈북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주어진 기회 구조가 달라 탈북은 하지 못하더라도 실제 제재의 효과나 영향에 대한 우려가 크게 증폭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북한 당국은 여전히 주민들의 불만을 외면하고 핵·미사일 개발에서 살길을 찾으려 한다. 이제는 그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열성적으로 체제를 옹호한 고위 외교관까지 등을 돌리는 이유부터 되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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