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코디언 연주자 심성락 “녹음실에서 55년 연주… 악보에 최선 다하는 그곳이 행복한 무대”
아코디언 연주자 심성락 “녹음실에서 55년 연주… 악보에 최선 다하는 그곳이 행복한 무대”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6.08.26 14:04
  • 호수 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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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권혁재

수천만원 상당 악기 불타자 시민들 후원금 모아 전달… 답례 공연 때 큰절
나훈아·이미자 등 가수 10명 중 9명 반주 맡아… ‘천리타향’·‘정’ 등 작곡도

노 연주자가 평생 반려삼아 연주해온 수천만원 상당의 소중한 악기가 4월 어느 날, 한순간에 불 타버렸다. 이 소식을 접한 시민들이 ‘노장의 음악을 멈추게 해선 안된다’며 크라우드 펀딩(인터넷,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돈을 모으는 방식)으로 한달 만에 3천여만원을 모아 새 악기를 마련해주었다. 노 연주자는 그에 대한 답례의 공연을 지난 7월 3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었고 그 자리에서 후원자들에게 엎드려 큰절을 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아코디언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심성락(80) 어르신 얘기다. 그는 대한민국 가수 10명 중 9명의 노래 반주를 맡았고 연주곡만 7000곡에 달한다. 8월 말, 서울 군자동 집 부근 카페에서 만나 55년 아코디언 인생을 들었다.

-한편의 감동 드라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았다는데 처음엔 그 말이 뭔지도 몰랐어요. 그 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제가 아는 말로선 더 이상 표현을 못하겠어요.”
-갑자기 불에 타버렸다니.
“단독주택 제 방에서 불이 났어요. 위층에 있는 할머니부터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뛰어올라갔어요. 나중에야 악기 생각이 나 다시 뛰어 들어가려니까 못 들어가게 하더라고요.”
-앞으로 계속 연주할 생각인가.
“아니요. 걷기도 힘든데 악기 메고 연주하기는 더 이상 힘들어요. 4,5년 전부터 사실상 연주를 하지 않았어요. 새 악기도 케이스 그대로 제 방에 있어요. 언제 다시 꺼낼지는 저도 몰라요.”
-은퇴 후 아코디언을 많이 배우는 것 같다.
“왜 그런 쓸 데 없는 짓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나이 먹은 제가 하니까 ‘나도 하면 되겠지’ 하고 그러는가 본데 악기 연주는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에요. 제가 카레이스 한다고 대한민국 노인들 모두 카레이서 되겠다면 말이 되겠어요.”
-취미로 하는데 어떤가.
“시작은 그렇게 하지만 하다보면 욕심이 나는 법이에요. 그리고 왜들 그렇게 시끄럽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며칠 전 30여명이 배우는 자리에 초대 받아 갔더니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자기 소리만 크게 내려고 해요. 그러면 안 돼요. 처음부터 작은 소리로 연주하는 걸 배워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지요.”
-노인에게 아코디언은 치매 예방 등 정신 건강에도 좋다는데….
“그 말의 이면에는 악기 팔아먹으려는 장삿속도 있어요. 우리나라 학원 중에 제대로 가르치는 곳이 한 곳도 없어요. 선생부터 더 배워야 해요. 유럽에선 10세부터 가르쳐요. 러시아․체코 같은 나라는 학교에서, 북한은 대학교에서 가르칩니다.”
-직접 가르치진 않는지.
“절대 안 해요. 학생들에게 ‘그래 가지고 뭘 언제 하려고 하느냐, 하지 마라’고 말하면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제 오른쪽 새끼손가락 끝이 사고로 짧아 네 손가락으로만 건반을 눌러요.(위 사진) 비공식인 운지법으로 남을 가르칠 수가 없지요.”
-연주자로서의 삶은 어땠는가.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네에요. ‘후회는 없는가’라고 물으면 ‘후회한다’고 대답할 겁니다. 제가 아코디언 한 지 55년이 됐어요. 그럼 잘 하느냐, 아니에요. 지금도 제 연주에 만족하지 못해요.”

▲ 사진=구성조

심성락 어르신은 일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1년까지 다녔다. 해방 후 부산 광복동의 악기점에서 처음 아코디언을 접했다. 독학으로 아코디언을 배워 부산KBS 전속악단에서 연주생활을 했다. 음악교육을 정식으로 받지 않았다. 한 번 들은 곡을 외워 연주할 수 있는 비결은 ‘집념’이 강해서라고 한다. 2009년 아코디언 대표곡을 모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란 CD를 냈다. ‘바람의 노래’란 풀무를 이용해 소리를 내는 아코디언으로 연주한 곡을 의미한다. ‘봄날은 간다’, ‘효자동 이발사’ 등 영화 삽입곡도 연주했다. 작곡도 했다. 이상열의 ‘천리타향’, 최정자의 ‘등대불 하소연’, 박일남의 ‘정’ 등이다.
-반주해준 가수 중 노래실력이 뛰어난 가수라면.
“남자가수로는 나훈아, 여자는 이미자․주현미․장윤정 등이에요.”
-기억에 남는 무대는.
“저는 무대보다는 녹음실에서 주로 연주를 했어요. 그 말을 듣고 어느 기자가 양지 보다는 음지에서 일을 했다고 그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부아가 치밀었어요. 뭘 모르고 하는 소리에요. 누가 보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지만 악보에 최선을 다하는 그 자리가 양지이고 그곳에서의 연주가 행복합니다.”

심성락 어르신은 2011년 6월 26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심성락 헌정공연-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가장 잊지 못할 무대였다고 말했다. 가수 최백호․주현미․장사익 등 유명가수들이 그의 음악인생을 기리기 위해 준비한 무대였다. “내가 음악을 그만두겠다고 하니까 동료후배들이 자리를 마련한 건데 누가 시킨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난 참 행복한 사람이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악사’란 말은 어떻게 나오게 됐나.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조용한 시간에 감상할 수 있는 음악을 저에게 녹음해 달라고 해 보내드린 일이 있어요.”
-박정희 대통령 노래에 반주도 했다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생신 때 일이에요. 원래는 대통령이 시화호 행사 관계로 그날 참석 안하는 걸로 됐다가 중간에 갑자기 오셨어요. 저는 악사 몇 명과 반주를 하고 있었어요. 술잔이 돌고 참석자들이 대통령에게 ‘노래 한곡 하시라’고 권하자 저에게 다가와 ‘짝사랑’(고복수)을 부르겠다고 했어요. 음이 높아 보통 사람들이 부르기 힘든 노래에요.”

심성락 어르신은 첫음을 남자와 여자의 중간쯤 되는 B플랫으로 시작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이 ‘F마이너로 하라’고 했다. 너무 낮은 음이다. ‘저음의 가수’ 문주란도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심 어르신이 “그건 너무 낮아요”라고 말하자 대통령은 “괜찮아”라고 대답했다.
-정말 괜찮았나.
“(당시 학생이었던)박근혜가 피아노를 치면 같이 노래하고 박 대통령 본인도 교편을 잡았던 관계로 ‘키를 아는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에 키를 아는 대통령이 어디 있어요. 그런데 정말 노래가 되더라고요. 노래 첫마디가 ‘아~으악새’라고 시작하는데 사실 첫음은 안 들려도 상관없어요․ 그 노래를 F마이너로 시작한 건 박정희 대통령밖에 없어요.”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오르간 선생이었다고.
“그건 잘못 알려진 거예요. 총리 공관에 오르간이 있어 제가 그곳에서 연주를 했지만요. 그분도 상당한 수준인데 제가 가르치긴요. JP가 농담 삼아 지인들에게 저를 띄워주느라고 ‘우리 선생’이라고 말한 겁니다.”
심성락 어르신의 본명은 심임섭이다. ‘소리로 여러 사람을 즐겁게 해주라’는 의미에서 도레미레코드사 사장이 지어준 것이다.
글=오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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