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산맥 정두수의 귀향
가요산맥 정두수의 귀향
  • 이동순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
  • 승인 2016.09.09 14:20
  • 호수 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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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에게 있어서 한 해에 고향을 생각하는 날은 겨우 세 번 가량 있는 듯합니다. 설, 추석과 어버이날이 바로 그날입니다. 올해도 어느 덧 팔월 한가위명절이 코앞에 이르러 우리들의 마음은 왠지 서두르고 종종걸음으로 바빠집니다.
이 무렵이 되면 고향이 있든 없든 돌아가야 한다는 심리적 회귀의식이 이미 마음바닥에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전국의 고속도로는 북새통을 이루고, 열정적 귀향의 모습은 예년과 다를 바 없습니다. 고향! 이 두 글자는 언제 어디서든 듣기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두 눈에서는 습기가 차오릅니다. 분명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온 곳이 고향이련만, 1970년대 이후에 태어나 자란 사람들에게 고향은 반드시 농촌이 아닌 경우가 이젠 훨씬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향까지 떠올릴 때 고향은 한국인의 마음속 저 깊은 곳에 항상 갈무리된 그립고 정든 곳이 아닐까 합니다. 그 고향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면서 현실의 어렵고 힘든 세월들을 이겨가도록 등을 토닥여줬습니다.
어느 해 봄, 산천에 진달래가 만발했던 시절에 나는 우리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작사가 정두수(鄭斗守, 1937~2016) 선생과 미리 약속이 되어 혼자 차를 몰고 경남 사천으로 바람처럼 달려간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반갑게 만나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포구의 하룻밤을 멋진 풍류로 보낸 것도 이젠 아련한 추억의 실루엣이 되고 말았네요. 그때 정두수 선생은 맏따님 다혜 씨와 손녀를 비롯해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서울에서 내려와 갯비린내 물씬 풍기는 삼천포의 어느 허름한 횟집에서 상봉의 회포를 풀었습니다.
그날 밤, 나는 정두수 선생의 숙소에서 대표곡 ‘덕수궁 돌담길’, ‘가슴 아프게’, ‘마포종점’, ‘흑산도 아가씨’, ‘과거는 흘러갔다’ 등 미리 준비한 7곡을 색소폰 연주로 들려드려서 선생을 놀라게 해드릴 계획을 갖고 있었지요. 이윽고 밤이 깊어 흥이 한창 달아올랐을 무렵 내가 자청해서 악기를 꺼내어 선생의 대표곡들을 1절씩 메들리로 연주했습니다. 선생께서는 흐뭇한 표정으로 때로는 눈을 지그시 감고, 또 때로는 깜짝 놀란 듯한 얼굴로 당신 노래를 감상하셨습니다.
나는 이날 밤 나의 서툰 연주에 대해 무척 자랑스럽고 즐거운 생각을 가집니다. 왜냐하면 정두수 선생이 바로 올해 8월13일 새벽 한가위를 앞두고 영영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실 때 이런 기쁨을 드릴 수 있었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보람이 느껴지던지요. 병원에 계실 때 여러 차례 안부전화를 나누곤 했었는데, 이렇게도 서둘러 떠나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다시 그날의 이야기입니다. 이윽고 밤이 지나 남해바다에 찬란한 아침햇살이 드리워질 때 일행은 여러 대의 자동차에 나누어 타고 선생의 고향마을로 출발했습니다. 사천에서 하동으로 가는 길가의 산천에는 온갖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봄바람에 나부꼈습니다. 선생은 내가 운전하는 차에서 춘흥을 못 이기어 자주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고향마을 어구로 들어설 때 어느 지점에서 자동차를 세우게 하더니 밖으로 나가 멀리 산중턱을 향해 정중히 허리 굽혀 절을 드리시더군요. 선영 쪽이라 먼저 귀향인사부터 올린 것이라 하셨습니다.
선생께서는 드디어 그 선영으로 아주 떠나가신 것입니다. 그날 선생께서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쓸쓸한 고향마을에서 어린 시절의 온갖 사연들을 하나씩 회고하셨는데, 그 모든 사연들이 정두수 가요시 작품세계에 보석처럼 고스란히 박혀서 반짝이며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정두수 선생은 일찍이 시인으로 출발했었고, 작사가로서의 활동은 한참 뒤인 196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습니다. 당신이 태어난 고향인 경남 하동군 고전면 성평리 일대의 주변 자연환경들이 모두 정두수 예술세계의 배경입니다.
즉 섬진강, 물새, 갈대, 진달래와 철쭉, 뭉게구름, 산과 개울, 산새들, 물레방아, 거기서 조상대대로 뿌리박고 살아오는 고향사람들의 사연 등. 이 모든 것이 정두수 가요시의 핵심을 이루는 중요 모티브들입니다. 선생의 가요시는 하나같이 농경시대와 산업화시대가 교차하던 격동의 세월 속에서 한국인이 잃어버린 것들, 특히 고향이란 가치의 중요성에 대하여 무척 애달파하고, 대중들의 정서와 절묘한 통합을 이루게 했던 것입니다. 그 통합에서 위로와 격려의 힘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정두수 작사의 가요시작품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선생이 작사한 작품만 무려 3500곡이 넘는다고 하니 ‘가요산맥’이란 별명이 반드시 과장된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모처럼 고향에 돌아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한가위를 즐기고 계시는 독자여러분! 오늘은 ‘물레방아 도는데’(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 나훈아 노래)를 합창으로 한번 크게 불러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돌담길 돌아서며 또 한 번 보고/ 징검다리 건너갈 때 뒤돌아보며/ 서울로 떠나간 사람/ 천리타향 멀리 가더니/ 새 봄이 오기 전에 잊어버렸나/ 고향의 물레방아 오늘도 돌아가는데/ 두 손을 마주잡고 아쉬워하며/ 골목길을 돌아설 때 손을 흔들며/ 서울로 떠나간 사람/ 천리타향 멀리 가더니/ 가을이 다가도록 소식도 없네/ 고향의 물레방아 오늘도 돌아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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