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부인이 차례 준비… 모국의 예절 이야기도
외국인 부인이 차례 준비… 모국의 예절 이야기도
  • 이상연 기자
  • 승인 2016.09.09 14:31
  • 호수 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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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정 30여만 가구… 그들의 추석맞이 풍경은
▲ 한가위를 맞아 30여만 가구에 달하는 다문화가정도 명절 준비에 나섰다. 사진은 우리나의 차례 예절을 배우는 다문화가족들.

울진 다문화가정 원상우씨네, 온가족이 명절 준비 도와
결혼이주여성들 송편 빚는 법, 한복 입는 법 등 배워 활용

통계청이 9월 7일 발표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다문화가정 수는 29만9000여가구로, 한국 가정 100곳 중 2곳이 다문화가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다문화가정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낯선 가정의 형태가 아니다. 다문화 인구 89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나라 다문화가정의 명절맞이 풍경은 어떨까.
경북 울진군에 사는 원상우(52)씨는 한가위만 되면 애잔한 추석이 떠오른다.
경주에서 꽤 큰 규모의 고물상과 주점을 운영하던 그는 8년 전, 고물값이 급격하게 하락해 부도를 맞았다. 모든 채무관계를 정리하고 나니 손엔 110만원만 남았다. 이후 쫓기듯 가족들과 함께 울진으로 들어와 단칸방 생활을 시작했다. 그를 바라보는 부모님과 막 태어난 아들 생각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한숨을 쉬었다.
좌절감에 빠져있던 그를 일으켜 세운 건 부인 차민정(37)씨. 태국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지 2년만에 부도라는 큰 역경을 맞았지만, 오히려 “태국에 살 땐 여기보다 더 안 좋은 집에서 살았다”며 남편을 위로했다.
원씨 부부는 부도 후 첫 추석을 맞았던 때를 기억한다. 예전에 비해 음식수가 확 줄어든 차례상을 앞에두고 원상우씨는 아버지에게 “꼭 재기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결국 고물상 사업을 통해 재기에 성공한 그는 5년 전 셋방살이에서 탈출했다. 덕분에 명절마다 집안의 장남 노릇을 다시 할 수 있게 됐다. 그는 “30여명의 가족 및 친지들을 위한 음식을 준비하고, 차례를 지낼 수 있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올 추석 준비는 부인 차민정씨가 도맡았다. 항상 함께 준비하던 시어머니가 지난해 받은 척추디스크 수술 후유증으로 거동이 힘들기 때문. 그러자 나머지 식구들이 차씨의 ‘명절증후군’ 예방에 발 벗고 나섰다.
집안의 큰 어른인 원영석(78) 어르신은 앞치마를 두르고 전을 부친다. 그 옆에서 아들인 원상우씨를 비롯해 손주 원경성군(9), 손녀 원경주양(6)도 고사리 손으로 일을 거든다. 제주인 할아버지를 특히 따른다는 손주는 ‘홍동백서’를 구분해 제사상을 차리는 수준이 됐다.
원영석 어르신은 “아이들에게 수시로 우리나라 전통과 예절을 가르친다”며 “집안에서 3대가 함께 살아서 그런지 아이들이 친척들과도 스스럼없이 잘 지낸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차민정씨의 고향인 태국의 풍습과 예절도 교육한다.
울진군에는 250여가구의 다문화가족이 산다. 이들은 9년 전, ‘울진군다문화가족회’를 조직해 서로의 성공적인 결혼생활 및 지역 정착을 돕고 있다. 이의 일환으로 매달 각급 학교를 순회하며 울진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함께 어머니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교육을 한다.
원상우씨는 울진군다문화가족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그는 “자녀들이 한 나라의 문화관만 알게 될 경우, 자칫 다른 나라의 부모를 부끄러워하거나 가볍게 여길 위험이 있다”며 “우리 집은 태국의 전통이 담긴 책을 읽어주거나, 간단한 인사는 꼭 태국어와 함께 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행정자치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사람과 결혼을 하거나, 이민 등으로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은 총 30만5000명이다. 이 중 남성은 5만1000명인 반면, 여성은 5배 가량 많은 25만4000명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전국 곳곳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결혼이주여성을 중심으로 다양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번 한가위를 앞두곤 다문화 이주민들이 한국 명절 문화를 체험하고 모국의 전통 풍습도 소개하는 행사가 열렸다.
추석을 보름 앞둔 지난 8월 23일, 경남 진주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결혼이주여성 20명을 대상으로 송편 만들기 및 전통예절 교육을 실시했다.
이날 이주여성들은 형형색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전통요리 강사로부터 딸기분말, 흑임자, 녹두 등 천연재료를 이용해 다섯 가지 색깔의 오색송편 만들기를 배운데 이어 한복 입는 법, 절하는 법 등 예절을 익혔다.
베트남 출신의 한 이주여성은 “사진으로만 보던 오색송편을 직접 만들어보니 예쁘고 맛도 좋아서 다가오는 추석에 맛있게 빚어 시부모님과 가족들에게 대접하고 싶다”고 밝혔다.
진안군다문화가족센터 관계자는 “예전에 비해 다문화가정의 조부모들이 타국의 문화를 존중하는 자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일부 가정에서는 가족간의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갈등을 빚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점차 다문화가정을 포용하는 추세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연 기자 leesy@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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