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꼰대라고 부르는 너희들에게!
우리를 꼰대라고 부르는 너희들에게!
  •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 교수
  • 승인 2016.09.23 13:34
  • 호수 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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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포 세대니, 5포 세대니 살기 어렵다 해도 젊은이 니들은 5000원이 넘는 커피들은 잘도 마시는 것 같다. 그 비싼 ‘따아’(따뜻한 아메리카노)라는 것을 줄서서 마시면서 인생을 고뇌하는 것이 20대의 고민이라지만 우리끼리는 가끔 ‘요즘 애들은 할 것 다하면서도 저런다. 우리 때는…’ 뭐 이런 말이 많아진다. 그리고 우리도 딱 여기까지만 하려고 했고, 그 뒤로 혀를 차는 일장 연설을 시작하려고 했던 것도 아닌데, 우리더러 ‘꼰대’라고?
꼰대란 말이야, 왕년에 선생님이나 아버지의 깐깐한 특성을 두루 아우르는 말이었지. 하지만 지금은 ‘꼰대’라는 말이 ‘아재’의 상대어쯤으로 사용된다며? 아재라는 말이 그나마 젊은 세대와 통하려고 썰렁한 유머라도 기꺼이 꺼내어보는 중년이상 올드보이들의 피나는 노력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더라. 그리고 꼰대는 여전히 고집불통에 소통을 하자했더니 호통을 치는 전형적인 반(反)청년 친(親)노년의 무모한 세대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단어라던데. 세상에 언제부터 이런 일이… 쯧쯧쯧!
얼마나 세월이 흘렀다고 몇 년만에 단어는 늙어 그 생명을 다하고 금세 다른 말이 돼버리는 건지. 이런 말의 변화를 보면서 어쩌면 요즘은 말이 우리네 노년보다 더 적응을 빠르게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개취존’ 이게 뭔 소린가 들어보니, ‘개인 취향 존중’이라며? 도무지 알 수 없는 조각의 말들을 늘어놓고는 알아들었다고 낄낄대는 니들을 보며, 왕년에 우리도 ‘아더매치유비졸’했다고 말하고 싶지만, 이미 외계어더라.
그리고 너희들 말로 뭐라고 낄낄대며 말하고 우리에게는 도무지 설명하지 않는 이유는 뭐냐! 정말 ‘아니꼽고, 더럽고 매쓰껍고 치사하고 유치하고 비위 상하고 졸열’하다. 물어도 대답 없으니 우리도 화가 나고, 알려주어도 대충 알려주니 우리도 열 받는다. 그러니 좋은 소리가 나갈리 만무하다.
좋다. 꼰대의 시작이 어디부터인지 따져보자. 니들이 먼저 무시했는지, 아니면 우리가 먼저 억눌렀는지 말이다. 우리도 답은 안다. 우리도 했고, 니들도 했으니 최소한 정당방위다. 빠르다고 너무 그러지 마라. 많이 살았으니 우리더러 참으라는데, 안 참으면 무조건 꼰대냐? 너희야말로 더 많이 배우고, 더 빠르고, 더 입을 씰룩대니 너희들이 좀 참아라. 왜 늙은 우리더러만 참으라고 하냐!
늙는 게 서럽다. 이미 귀밑머리가 희어가는 아들놈이 돈 좀 번다고 무시하더니, 이제는 이마에 피도 안 마른 손주 뻘 되는 놈들이 우리를 밀치고 무식하고 꽉 막혔다고 대놓고 무시한다. 우리도 할 말 많다. 입이 없어서가 아니고 단어가 부족해서도 아니고, 그저 늙으면 입 닫고 지갑 열라는 선배들 말 하나에 침묵할 뿐이다. 누가 너희더러 전쟁 겪으라냐, 누가 너희더러 월남전 갔다 오라고도 안한다. 전쟁 겪고, 월남전 갔다 와서 좀 좋은 나라 만들어 보자고 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이 혼자 뭘 할 수 있는 줄 아냐? 우리도 가족이 가자는 대로, 사회가 이끄는 대로, 국가가 제안하는 방향으로 갔을 뿐이다. 우리와 너희는 무엇이 다르냐?
너희는 엄마 말 듣다가, 선생님 말씀 듣다가, 애인 말 듣다가 상사말 듣고 그냥 살지? 젊은이들아, 우리도 너희랑 똑같이 살았다. 우리도 엄마 있고, 우리도 선생님 있고, 우리도 애인 있었고, 우리도 상사랑 한판 뜨면 멋있어 보이고 그랬다. 젊고 늙음, 그 하나로 나는 틀리고 너는 옳다고 말하지 마라. 우리도 감정 있고, 섭섭하다.
우리 보고 후지다고 말하는데, 우리는 없어서 굶기도 했지만 국수집 앞에서도 없으면 그냥 아끼고 덜 먹었다. 너희는 카드빚 내어 스파게티인가 서양국수 먹고, 그 카드 값 니들 부모가 내는 일도 허다하더구만! 우리보고 잘못된 결정을 해서 지금 이 모양이라고 하는데, 니들은 입 모아 ‘결정 장애’라며! 다른 사람이 ‘좋아요’를 선택해주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잘못되더라도 내가 선택하는 게 나은 거 아니냐?
우리더러 이렇다 저렇다 말 많은데, 못나 보이고 개떡 같아 보여도, 이게 우리의 최선이다. 우리가 쏟은 청춘의 물로 성장한 나무의 열매로 즙을 내어 니들이 주스 먹는 거잖니. 너무 그러지 마라. 늙을수록 나도 모르게 서러워지는 걸 어쩌냐. 너무 뭐라 하지 말고, 우리를 좀 봐주라. 우리도 너희를 봐주면서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명함으로 살았잖니. 우리도 섭섭하다. 그리고 화가 머리끝까지 나고… 잠깐, 이러면 꼰대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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