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곳한 팔이며 앵도알 같은 젖꼭지가 그대로 보기는 아까운…
봉곳한 팔이며 앵도알 같은 젖꼭지가 그대로 보기는 아까운…
  • 글=이효석 그림=이두호 화백
  • 승인 2016.09.23 13:40
  • 호수 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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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장편소설 화분 <3>

부엌 옆으로 거의 두 평 가량이나 차지하고 창으로는 이웃집 붉은 지붕과 먼 산을 바라볼 수 있는 목욕실이 자매에게는 집안에서도 즐거운 곳의 하나였다. 기쁠 때에는 물론이어니와 슬플 때에나 노여운 때에도 그 속에 뛰어들어 시간을 보내노라면 마음이 풀려 버리는 그 맛을 그들같이 즐겨하는 사람도 드물 듯하다. 죽을 것이 옥녀여서 목욕물을 끓이는 것이 부엌일 중에서도 가장 큰 시중이었다. 이틀도리로 데우는 것이나 세란들의 요구에 따라서는 아닌 때 금시에라도 물을 대고 불을 지펴야 하고 바깥주인 현마가 올 때에는 부랴부랴 또 한바탕 난리가 난다. 불이나 안들일 때에는 아궁 앞에 웅크리고 앉아서 서리우는 연기로 눈물을 흘려가며 그런 고생은 없으나 주인들이 하고 난 끝의 목욕물이 차례 올 것을 생각하면 불평도 없어지고 세란들의 목욕하는 자태를 창으로 엿보는 것도 즐거운 것의 하나였다.
지금도 옥녀는 한가한 틈을 타서 잠깐 부엌일을 멈추고 철벅거리는 미란의 자태를 창밖에 서서 물끄러미 들여다보면서 그 고운 살결을 탐내고 있는 것이다. 보얗게 서리운 안개 속에 움직이는 처녀의 자태는 배춧단 같이 멀쑥하면서도 물고기같이 퍼들퍼들하다. 봉곳한 팔이며 앵도알 같은 젖꼭지가 그대로 보기는 아까운, 뛰어들어가서 만져라도 보고 싶은 것이다. 자기가 만약 사내라면 그 흰 다리를 독수리같이 물어뜯고야 말 것, 망간 북새들을 친 찔레나무 아래 뱀이 마음 있던 짐승이라면 그 고운 팔다리를 그대로 두지는 않았을 것을 생각하면서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귀중한 보물같이 싫어지지 않는다.
미란이 나간 후에 뒤를 이어 세란의 몸이 나타나는 것이 보였다. 같은 모습이기는 하나 팽팽한 처녀의 몸과는 달라 함박꽃같이 활짝 피어난 허벅진 한 송이다. 목욕실 안이 꽉 차며 금시에 서리었던 김이 젖어드는 듯도 하다. 무슨 복을 가지면 사람이 저렇게도 곱게 태어날 수 있을까——황홀한 정신으로 확실히 꿈속에 잠겨 있을 때에 세란의 목소리가 창밖으로 새어 나왔다.
“아니 이게 무슨 물이야. 물감을 풀었니.”
옥녀는 냉큼 일어서서 창께로 가까이 갔다. 손을 대기 전에 창은 안에서 열렸다.
“목욕물이 아니라 온통 오미자 화채니 어떻게 된 노릇이야. 좀 들어와봐요.”
영문을 몰라 옥녀는 사이문을 열고 목욕실에 뛰어올랐다. 흰 대리석 목욕통 안의 물이 짜장 오미자 화채인양 불그스름하게 물들어 있다. 자옥하게 서리었던 물김이 말끔하게 거둔 후이라 흰 도가니 안에 고인 물이 유리잔 안의 술과도 같이 깨끗하고 선명한 빛깔을 띠이고 있지 않은가.
“수돗물이 망령을 피웠나요.”
옥녀는 사실 곡절을 몰라 주인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다.
“대체 무슨 조화야. 수돗물두 성하구 물감두 안 풀었다면.”
“지금 망간 작은아씨가 다녀 나갔을 뿐인데요.”
“작은아씨가 별안간 살을 베었단 말이냐.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세란은 말을 그치자 자기의 던진 그 한마디가 도로 귀로 흘러 들면서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솟아올랐다.
“——아니 이게 그래 피야. 끔찍두 해라.”
옥녀를 더 족칠 것 없이 급하게 목욕실을 나가 버리더니 방에서 미란과의 말소리가 수군수군 들린다. 희롱하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간간이 높게 흘러온다. 미란은 허약한 기력에 벌써 자리에 누운 듯 대답하는 소리만이 들릴까 말까 하다.
“오미자 화채가 아니구 그러니 이게 모두…….”
옥녀는 목욕물을 한 움큼씩 움켜서는 손가락 사이로 흘리면서 미란의 몸의 다달이 정해논 날수를 속으로 따져 보았다. 조금 일찍 온 듯하나 아마도 뱀에게 놀란 탓인 듯하다. 뱀의 독이 무서운 것을 깨달으며 그 화채 물 속에 그대로 뛰어들까 어쩔까를 생각하려니 별안간 부끄럼이 왈칵 오면서 옥녀는 고개를 숙여 버렸다.
“망칙해라.”
방에서는 자매의 목소리가 자별스럽게도 은은히 흘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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