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이 ‘왕자의 난’ 잊으려 만든 궁… 뒤뜰에 비원
태종이 ‘왕자의 난’ 잊으려 만든 궁… 뒤뜰에 비원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6.09.23 13:52
  • 호수 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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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궁궐을 가다 <4> 창덕궁
▲ ‘왕자의 난’ 때문에 탄생한 창덕궁은 건립 배경과 달리 자연중심적으로 지어졌고 이를 높게 평가받아 4대 궁궐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사진은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의 야경

인간보다 자연 중심으로 지어진 궁궐… 유일하게 유네스코에 등록
청기와 건물 ‘선정전’, 청동지붕 건물 ‘선향재’ 등 독특한 모습 간직

550만 관객을 모으며 화제를 모은 영화 ‘덕혜옹주’와 시청률 20%를 돌파하며 인기리에 방영중인 드라마 KBS ‘구르미 그린 달빛’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창덕궁이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가 생을 마친 낙선재는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주인공 박보검이 맡은 효명세자가 생활을 하는 창덕궁에 위치해 있다. 두 작품의 흥행으로 최근 창덕궁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궁은 ‘경복궁’이지만 조선의 정체성을 가장 많이 반영한 건 창덕궁이다. 경복궁이 웅장한 모습에 질서정연한 구조를 갖췄다면 창덕궁은 비교적 소박한 모습에 자유로운 구조를 하고 있다. 산줄기 자락에 자리잡으면서 곡선을 이룬 자연 지형에 맞게 배치된 것이다. 이로 인해 4대 궁궐 중 창덕궁만이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평화로운 모습과 달리 창덕궁 건립은 조선에 처음으로 불어 닥친 피바람에서 시작됐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세우면서 도읍을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겨 경복궁을 건립했다. 하지만 태조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태종)이 왕자의 난을 일으켰고 이를 통해 왕위에 오른 정종은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개경으로 도읍을 다시 옮겼다. 이후 정종에게 권력을 물려받은 태종이 재차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자신의 과오를 잊고 싶었는지 경복궁을 피해 그 동쪽에 창덕궁을 지었던 것이다.
창덕궁은 정문인 돈화문을 지나면서부터 여타 궁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경복궁은 광화문에서 정전인 근정전이 보이고, 창경궁도 홍화문에서 정전인 명정전이 보인다. 하지만 창덕궁은 돈화문에서 정전인 ‘인정전’이 보이지 않는다. 정문을 지나 정전까지 어로(왕이 가는 길)를 직선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창덕궁은 인위적인 조성을 막고 자연과의 조화를 위해 어로를 돌린 것이다.
인정전 동쪽 문으로 들어서면 우리나라 궁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청기와 건물 ‘선정전’(과거 임금이 공부하고 신하들과 정치를 논하던 곳)이 모습을 드러낸다. 청기와는 ‘회회청’이라는 비싼 수입 안료와 인부의 노동력이 필요해 조선시대에도 그리 많지 않았다.
선정전 바로 옆에는 조선 궁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건물이 있다. 임금 침소로 사용되다 조선 중기 편전(임금이 평상시에 거처하는 곳)으로 사용된 ‘희정당’이다. 희정당은 돌출된 건물 입구에 지붕을 갖춰 차(車)를 댈 수 있는 포치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순종이 화재로 손실된 희정당을 복원하면서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도록 개조한 것이다.
이곳을 지나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덕혜옹주와 영친왕이 살았던 ‘낙선재’가 나온다. 궁궐의 일반적인 건축양식과 달리 단청(벽‧기둥‧천장 등에 여러 색으로 그린 그림)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낙선재 오른쪽으로 1848년 헌종의 후궁인 경빈 김씨의 처소로 건립된 석복헌과 1848년 중수된 수강재가 옆으로 길게 이어지며 건물군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 건물들을 통틀어 낙선재라 부르기도 한다.
세 건물 뒤쪽으로 화초·석물·꽃담·굴뚝 등으로 꾸민 창덕궁의 진수인 아름다운 후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국내 궁궐 중 유일하게 창덕궁에만 남아있는 전통 정원이며 ‘비원’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일본과 중국 등 주변국의 궁궐 정원은 인공물이 많고, 나무와 풀 등에도 사람의 손이 많이 닿아 있다. 인간을 자연보다 중시하는 태도가 반영된 것이다. 반면 창덕궁 후원은 지형은 물론 돋아나는 풀, 나무 하나 사람의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뒀으며, 건축물도 후원 전체의 1%에 불과하다. 인간보다 자연을 더 중시하는 태도를 담은 것이다.

▲ 창덕궁 후원에 위치한 ‘애련지’ 및 ‘애련정’의 모습.

후원에는 조선의 빼어난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정자(亭子)들을 볼 수 있다. 후원에 들어가 부용지를 지나면 존덕지라는 연못에 있는 ‘존덕정’을 만날 수 있는데, 이 정자는 이중지붕의 팔각형 형태가 특징이다. 그 옆에는 한반도 모양을 닮은 연못 ‘반도지’가 있는데 그 위에는 부채꼴 형태의 독특한 정자 ‘관람정’이 자리 잡고 있다. 관람정은 부채꼴 지붕을 가진 우리나라 유일의 정자다. 후원 가장 깊은 곳 ‘옥류천’이 흐르는 곳에는 궁궐 내 유일한 초가지붕 건축물 ‘청의정’이 있다. 이 외에도 후원에는 10여개의 정자들이 곳곳에 위치하고 있다.
‘구르미 그린 달빛’으로 유명해진 후원에는 또 효명세자가 기거하던 건물들을 만날 수 있다. 먼저 낙선재와 같이 단청이 없는 것이 특징인 연경당은 순조 28년(1828년), 효명세자를 위해 세워진 건물이다. 궁궐 중 유일하게 사대부가 건물의 형식을 하고 있다. 연경당 내부를 돌아보면 청동지붕 건물이 하나 나오는데 이곳이 효명세자가 책을 있던 ‘선향재’이다. 청동 지붕 건축물은 강릉 선교장을 포함 국내에 단 2개뿐이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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