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랑신부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랑신부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 승인 2016.09.30 13:40
  • 호수 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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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봤던 미국 TV 프로그램 중에 ‘Wedding Story’(결혼 이야기)라는 게 있었다. 결혼을 앞둔 커플들이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을 다룬 30분짜리 다큐멘터리인데, 그 내용이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매주 빼놓지 않고 보았다. 신랑신부가 만나게 된 사연에서부터 신혼살림에 필요한 것들을 사기 위해 희망에 부풀어 쇼핑하는 모습, 가족과 친구들이 두 사람에 관해 기억하는 이야기 등을 다채롭게 엮어나가다가 결혼식 리허설에 얽힌 재미난 장면들도 나오고, 가슴 벅찬 결혼식과 흥겨운 피로연을 끝으로 아름다운 한 쌍의 부부가 탄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결혼식 전날 신랑신부가 정식으로 결혼예복을 입고 주례 앞에서 결혼식 리허설을 하는데 혹시 실수라도 할라치면 파안대소가 터진다. 리허설이 끝나면 양가 가족과 친한 친구들이 모여 결혼사진을 찍고 떠들썩한 파티를 갖는다. 나는 이 아름다운 결혼식에 초대받은 하객이 되어 새로이 탄생하는 가정의 행복을 진정으로 축복해주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내가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내린 결론은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랑신부라는 것이었다. 이 당연한 말이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못한 측면이 많아 문제가 되고 있다. 결혼은 당사자만이 아니고 양가의 결합이기도 하기 때문에 화려하고 멋있게 치르고 싶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하고 형식적인 게 많다. 결혼식을 얼마나 성대하게 치르느냐 하는 것과 행복한 결혼생활과는 전혀 관계없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좋은 결혼식은 하객을 많이 초청하여 요란하게 치러야 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하객의 수를 따지는 결혼식은 양가의 가세를 과시하는 전시장으로 변질된 것이다. 신랑신부는 결혼식의 주인공이 아니라 어른들과 사회가 결정해 놓은 결혼식의 꼭두각시로 전락하지는 않았는지? 요즈음 작은 결혼식도 있고 신랑신부가 주도하고 양가 어른들은 그들의 계획을 승인해주는 결혼식도 많지만 여전히 허례허식적인 부분이 많이 있다.
요즈음은 호텔이나 결혼예식장에서 인물만 바꾸었지 판박이 결혼식을 하기 때문에 사실 그게 허례허식이라고 비난하기도 곤란한 측면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잘 계획하면 얼마든지 소박하지만 축복이 가득 찬 결혼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결혼청첩장은 오래 전부터 세금고지서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청첩장을 보낸 사람과 계속 유대관계를 맺으려면 축의금을 들고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때론 그저 명함이나 주고받았을 뿐인 사람으로부터 청첩장을 받으면 불쾌하기까지 하다. 눈도장 한 번 찍고, 축의금 봉투 내고, 밥이나 한 술 얻어먹고 오는 결혼식은 이젠 정말 식상하다. 물론 가끔 정말 반가운 청첩장도 있다. 그 가정과 친분이 두텁고, 특히 결혼하는 젊은이를 어릴 때부터 잘 알고 있는 경우에는 오히려 그 결혼식이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그동안 뿌려놓은 돈을 이 때 거둬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청첩장을 많이 뿌려 놓으면 하객이 많이 오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있을 것이다. 아는 사이에 청첩을 하지 않으면 상대방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결혼식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신랑신부 두 사람의 관계이다. 결혼식은 다른 배경과 사상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이 ‘매력’이라는 일시적 감정을 넘어 ‘사랑’하기로 결심하고, 그 결심을 여러 사람들 앞에서 선포하는 신성한 예식이다. 결혼을 향한 두 사람의 순수함과 진실됨 이외의 어떤 것도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결혼식이 새 가정의 탄생을 알리는 축하예식이 아니라 어른들의 체면을 살려주거나, 집안의 세를 과시하거나, 혹은 우리도 이런 결혼식을 할 수 있다는 자랑을 친구들에게 하고자 하는 생각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결혼식은 민폐가 된다. 오래 간직되는 ‘Wedding Story’는 오직 두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것이다. 가정과 사회에서 존경받는 어르신은 손자녀들의 결혼식에 대해 의미 있는 한 마디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규모보다 내용에 충실하라고.
작년 겨울 후배의 딸 이지미 양의 결혼식장 입구에 놓인 액자에 조부모가 축사 격으로 쓴 3행시가 들어 있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양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 잊지 말게 하시고, 지혜 속의 생활은 검소하게 그리고 생각은 고상하게 하여 겸손으로 타의 모범이 되게 하시며, 미소 가득한 이 가정이 많은 자손과 함께 기쁨이 넘치는 축제의 집 되게 기도합니다.” 검소하지만 훈훈하게 치러진 결혼식에서 본 조부모의 이 3행시는 인간의 아름답고 긍정적인 유산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통해 전수되어진다는 진리를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외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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